#스물여덟, 마침내 지구를 걷다
열 살의 나 자신에게 약속했던 제 모습을 실현하기 위해서 여행을 시작했어요.
지금이 아니면,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손에 쥔 걸 놓기 쉽지 않겠단 위기감도 들었구요.
이렇게 안정적으로 평탄한 길을 걷다가, 적당히 잘 결혼해서 예쁜 아이 기르면서 잘 늙어 죽을 것 같은 거예요.
그건, 제가 살고 싶은 삶의 방향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어요.
아이들이 예쁘고 맑게 자라나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었지만, 어째 저만 가만히 멈춰있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너무 이른 때에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는 반성과 함께, 아이들에게 꿈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가 부끄러워졌어요.
그래서 숙고하고, 결정하고, 실행했어요.
떠나 보니, 역시 한 번 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두다
저는 3년차 초등학교 교사였어요.
그래서 월급을 받으면서 저축을 했고, 비싼 옷이나 가방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서, 통장에 자연스럽게 돈이 모아졌어요.
그렇게 모은 돈과 퇴직금을 합해서 여행 비용이 마련됐구요. 학생 신분이 아니라서 돌아온 뒤의 여유자금도 있어야 했기 때문에, 여행 중에도 카우치서핑이나 블라블라카같은 다양한 형태의 절약을 통해서 최대한 비용을 줄였어요.
비용보다는 직장을 그만두기까지의 과정이 힘들었어요.
고민을 시작한 지 일년이 지나서야, 부모님과 학생들, 동료 선생님과 장감선생님께 말씀 드릴 용기가 생겼어요,
"인생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반대와 설득, 긴 대화의 과정 끝에 학교를 그만두었고, 짧은 한 달 여의 준비 끝에 세계여행을 실현하게 됐어요.
일단 멕시코행 편도티켓을 끊고, 카우치서핑을 구해 호스트와 계속 친분을 쌓았어요. 친한 친구 및 지인분들의 도움과 협찬으로 다양한 여행물품들을 마련했고, 준비한 내역들을 페이스북 페이지(www.facebook.com/travellerssunny )에 정리하면서, 많은 응원을 받고 힘을 내서 여행을 떠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떠나지 못할 이유가 더 많아지기 전에'
‘갭이어가 낭비가 아닐까’하는 불안이 가장 두려웠던 것 같아요.
시간 낭비, 돈 낭비, 젊음 낭비.
갭이어가 아니라면 지금 손에 쥔 것 만으로도 괜찮게 잘 살 것 같은, 그런 생각들이요.
주위 분들도 그런 걱정과 우려들 많이 해주셨거든요.
그런데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건 꽤나 간단했어요.
저는, 3년 후의 제 모습을 떠올려봤어요. 그랬더니 여전히 여행을 떠나지 못한 것, 그때 그만두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제 용기를 덮어버린 이유들을 원망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거에요. 정말 싫은 모습이죠.
어떤 선택을 해도 아쉬움은 있겠지만, 그 아쉬움이 가장 적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잖아요.
3년 후, 5년 후에는 손에서 놓아야할 것들도 더욱 커질 테구요.
결국, ‘떠나지 못할 이유가 더 많아지기 전에’ 지금,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지금은 제가 너무 기특해요.
3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그럴 것 같아요.
#갭이어 여행기
여행을 했어요. 어릴 때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내 발에 형광펜을 칠해서 지구를 걸어다니면, 우주에서 내 발자국이 보이겠다. 반짝반짝 정말 예쁘겠다.”
맨 처음엔 내가 살던 곳과 가장 먼 곳으로 가보고 싶었어요. 멀어서 아예 알지 못하고 죽었을지 모를 그곳, 남미로요.
그래서 멕시코에서 시작했고, 과테말라와 쿠바를 거쳐 남미로 내려갔어요.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고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하고싶어 하는 공부의 마력을 마음 꽉차게 실감했어요.
콜롬비아에서 시작해,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와 브라질까지 6개월이라는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면서, 많은 삶을 보았고, 느꼈고, 맛보았어요.
유럽에 가는 것보다 남미를 떠나는 게 아쉬운 아이러니한 마음으로, 서유럽과 동유럽을 지나 아프리카로 내려갔어요.
모로코와 이집트, 에티오피아와 케냐의 모두 다른 아프리카를 만났고, 여행 중 만난 친구와 재회하기 위해 마지막 행선지인 아시아로 갔어요.
태국과 라오스, 베트남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연말을 가족들과 보낸 뒤, 지금은 갭이어의 마무리를 짓기 위해, 인도에 와있어요. 순간처럼 지나간 것 같은데, 467일, 꽤나 긴 시간동안 꽉찬 삶을 살았네요.
#갭이어 중 내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
인천공항 게이트가 닫히는 그 순간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배웅 나온 엄마 얼굴이 안보이면서, 갑자기 일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너무 크게 느껴졌거든요.
일단 직장을 그만뒀으니 일년 이상이라고 못을 박고, 친구와 지인들에게 협찬도 잔뜩 받고 나왔는데, 너무 무서운 거에요.
계절이 네 번 바뀌는 동안 사람들이 모두 바뀌어버릴 것 같고 저를 다 잊을 것 같다는 상상에, 인천에서 시애틀, LA를 거쳐 멕시코 과달라하라로 가는 비행시간 내내 대성통곡을 했어요.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에 있는데 다들 걱정시키면서 나가는 게 미안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그 걱정은 멕시코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싹 지워졌어요. 오히려 마음담은 연락도 자주하고, 처음 써보는 손편지엽서에 오히려 더 돈독해진 느낌도 들었어요. 일년 뒤 한국에 갔을 때, 결과적으로 달라진 건 몇 쌍의 커플들..밖에 없더라구요. 지금은,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들에 미안하지 않도록, 있는 힘껏 행복하게 놀다 와야지 라고 생각해요.
#갭이어 중 내가 행복했던 순간
제가 행복했던 순간은, 한국에만 있었다면 전혀 몰랐을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쌓아가서 새로운 인연을 만든, 그 모든 시간들이에요. 저는 여행하는 동안, 정말 많은 도움과 사랑을 받았어요.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모로코 친구 Zineb은, 스페인에 열흘간 여행 온 친구였는데요, 함께 여행하다가 집에 초대를 받아서 계획에도 없던 모로코를 여행하게 되었고, 라마단 기간임에도 배불리 먹고 자면서, 저희 집처럼 생활했어요.
부다페스트 벵*호스텔을 운영 중인 Hassan아저씨는, 혼자 여행하는 스트롱걸이 걱정된다며 부다 한복판의 비싼 한식집에서 아구찜과 육개장, 비빔밥과 막걸리를 잔뜩 사주셨어요.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버스를 간발의 차로 놓친 뒤 정신도 놓치기 직전 나타난 Beatriche언니와 마마는, 터미널에서 밤을 샐 수는 없다고 근처가 댁이라며 따뜻한 밥과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해주셨어요.
이런 이야기들을 토막토막 이야기해도, 사흘 밤낮을 새버릴 만큼 말도 안되는 것들을 받았고 나누었어요.
굴비엮듯이 떠올려지는 기억들덕분에 지금도 엄청 행복하네요, 감사합니다.
#갭이어 전과 후의 나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두려움이 줄었어요.
‘이 일이 될까, 안될까’를 걱정할 시간에 ‘어떻게 하면 이 일을 되도록 만들까’라고 생각해요. 죽어도 안될 것 같은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버스를 놓치거나 택시 파업 앞에 노숙을 하게 되는, 말 그대로 못먹고 못자고 베드버그에 물려 고통받는 동안에도 여행을 계속해나간 경험 속에서, 어쨌든, 될 일은 된다는 걸 체득했어요.
아, 또 하나 있어요. 여행 전에는 ‘지금 갑자기 전쟁이 난다면’이라는 허무맹랑한 질문을 받으면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거든요. 지금 죽기엔 이루지 못한 게 많고, 제 자신이 너무 아까웠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지금 죽게 되더라도, 제 인생에 감사하면서 눈감을 수 있을 만큼 행복해요. 이건 갭이어 전과 후,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인 것 같아요.
#지금도 여전히 여행 중
저는 지금도 여전히 여행중이에요. 인도와 파키스탄을 마지막으로, 다시 여행 같은 일상속으로 돌아가게 될 것 같아요.
여행 중에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여행이 끝나면 뭐하실 거예요?’류의 질문이었어요.
초반엔 답답한 마음도 있었어요. 내 앞에 여행으로 살아갈 일년이 당장 놓여있는데.
당장 내일 어디서 잘지, 뭘 먹을지, 뭐하고 놀지가 고민의 전부인데 그 후를 생각하라고 강요당한 기분이랄까요.
그래서, 한국 가면 세상 행복한 백수가 될 거라고 웃어넘기곤 했어요.
이제 돌아가면 어떤 일이 되었든, 여행 전보다는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제 앞에 놓여진 것 중 가장 재밌고 의미있는 일부터 골라 먹어치우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늘 그래왔던 것처럼요.
그 일이,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는 것일 수도 있고, 다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일 수도 있고, 전혀 새로운 어떤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떤 일이든 이번에도 잘해내겠지, 하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있어요.
주도적으로 이룬 일년의 성취가 계속해서 힘을 주고 있거든요. 어떻게 그려질 지는, 차근히 삶 안에서 이뤄나갈게요.
# 갭이어를 가질 사람을 위한 TIP
자리에 머물러 있든, 앞으로 나아가든, 뒤로 물러서든 간에,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다 옳아요. 겁내지 마세요.
하지만 이건 꼭 기억하시면 좋겠어요.
어떤 선택을 하든 선택은 자신의 몫이고 책임은 자신이 지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아니구요.
그러니, 그 책임을 기꺼이, 행복하게 짊어낼 수 있는 선택을 하세요.
#대한민국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
어린 시절의 나에게 당당하고, 중년의 나에게 기특하고,
무엇보다 지금의 내가 행복한 삶을 사시길,
저를 포함한 모든 청춘을 응원합니다.
100인의 갭이어 추천 및 제보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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