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th Gappepr 박용준
총 8개월의 갭이어
퇴사 후 네팔을 위해 사막마라톤 완주
안녕하세요. ‘네팔을 위해 사막을 달린 청년’ 박용준이라고 합니다. 평범한 공공기관 직원이던 저는 2015년 여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후, 지금까지 약 8개월 간 갭이어를 보내고 있습니다. 갭이어 동안 #I’M GOING TO NEPAL 이라는 소셜펀딩 프로젝트를 기획 및 운영하면서, 네팔 지진 피해 지원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칠레 ‘아타카마 크로싱(Atacama Crossing’ 사막마라톤 을 완주했습니다.
“서른 살을 앞두고 감행한 ‘퇴사’라는 모험”
저는 어릴 적부터 ‘모범생’이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고, 괜찮은 대학교에 갔고,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며 흔히 말하는 좋은 ‘스펙’을 쌓았죠. 덕분에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원하는 회사에 합격도 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느끼며, 직장 생활 역시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했어요.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노력’과는 별개로, 보여주기 위주의 업무 관행, 비효율적 절차, 각종 허례허식과 장시간 노동이 당연시 되는 한국 특유의 직장생활은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자정까지 붙잡고 있는 날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열심히 살아왔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삶에 대한 혼란과 우울함. 야근만큼 했던 수많은 고민들. 힘들게 들어 온 직장이었던 만큼, 퇴사는 제게 정말 큰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다 3년 차였던 작년 여름, 용기를 내었습니다. 잠시 쉼표를 찍고 다른 미래를 그려보겠노라고 말이죠.
사실 퇴사할 때 무엇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지쳐있었고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요. 다만 30대가 되기 전, 평생 살면서 후회 없을 그런 멋진 도전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네팔을 사랑한 청년, 네팔을 위해 달리기로 결심하다”
작년 4월, 규모 7.8의 대지진이 네팔을 강타했던 것 기억하시나요? 저는 2010년에 해외봉사단으로 네팔에서 10개월 간 활동한 적이 있었습니다.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도착한 네팔. 그곳에서 '비제이(Vijay)'란 이름으로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고아원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 그렇기에 지진 사태는 네팔을 제 2의 고향으로 생각해왔던 제게 있어 참 가슴 아픈 비극이었습니다.
퇴사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까요, 네팔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사막마라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2015년 10월,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아타카마 크로싱(Atacama Crossing)’이 개최된다는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 본 것입니다. 사막에서 외부의 지원 없이 250km를 완주해야 하는 울트라마라톤. 사실 제가 오래 전부터 꿈꿔왔던 도전 중 하나였습니다. 그 때 문득 든 생각. “네팔을 위해 극한의 사막마라톤에 도전하고, 완주를 응원하는 후원금을 모아 지진 피해를 위해 기부하자!” 바로 ‘네팔을 위해 사막을 달리는 청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소셜펀딩 프로젝트 #I’M GOING TO NEPAL의 탄생”
2015년 7월 말, 작은 아이디어는 능력 있는 친구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점차 발전해나갔습니다. 기획, 컨텐츠, 홍보 등에 조예가 있는 전 직장 동료들과 아예 팀을 꾸려, 저 개인의 사막마라톤 도전과 ‘네팔 지진피해 지원 후원금’을 어떤 방식으로 연결할지 함께 의논하고 고민했지요. 실제 네팔 후원금을 모으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지만, 그보다 앞서 돈을 어떤 용도로 어디에 기부할 것인지도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적합한 기부처 겸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퇴사 전 실력을 발휘해서 제안서를 작성하고, 동료들의 피드백을 받으며 수정을 거듭한 후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질만한 국내 사회적 기업 및 NGO 등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네팔에서 공정무역 커피 사업을 펼치고 있는 ‘공정무역 아름다운커피’가 저희 뜻에 동참하면서 <#I’M GOING TO NEPAL>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름다운커피’가 자체 인프라를 이용해 펀딩을 맡아주기로 하고, 저는 모인 후원금을 네팔 커피 생산지인 ‘신두팔촉(Shindupalchok)’의 지진 피해 농가에 기부하기로 한 것입니다. 후원 리워드(reward)로 네팔 공정무역 커피를 제공하는 등, 단순 기부에 그치지 않고 후원해주신 분들께 ‘네팔산 커피’도 알려 지속가능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좋았습니다. 실무를 담당하시는 간사님들이 제 스토리와 하고자 하는 가치에 대해서도 이해를 잘 하고 계셨죠. 곧이어 페이스북 페이지(www.facebook.com/imgoing2nepal)이 열리고 홍보가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평소 네팔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던 많은 분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홍보에 나서주기도 하였습니다. 오래 알고 지낸 친한 네팔 동생이자 <비정상회담>, <내친구의집은어디인가?> 등 방송으로 유명해진 수잔 샤키야(Sujan Shakya)가 합류해서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배우 오드리 햅번의 아들이자 오드리햅번재단의 회장인 숀 햅번(Sean Hepburn) 님, 대세 개그우먼 이국주 님, 아름다운커피 홍보대사인 뮤지컬 배우 김호영 님, 가수 조정민 님 등이 직접 응원해주셨습니다.
“생애 첫 사막마라톤 완주를 위한 지옥훈련을 시작하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프로젝트가 진행하는 동안, 저는 본격적인 마라톤 및 체력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는 꽤 오랫동안 러닝을 해왔고, 직장을 다닐 때도 없는 시간을 쪼개 스트레스 관리 차 꾸준히 운동을 해왔어요. 하지만 태어나서 250km라는 엄청난 거리를 뛰어본 적은 물론 없었기 때문에,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준비해 나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거의 매일 최소 10-20km씩은 달렸습니다. 달리기가 너무나 지루하고 힘들 때는 싸이클을 타거나 헬스장에서 근력 운동을 했고요. 마라톤이 도로가 아닌 사막 위를 달리고 언덕을 오르내리기 때문에, 일부러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뛰고 산을 탔습니다. 매일 아침, 점심, 저녁 3번씩 운동을 하고, 8월의 무덥고 습한 날씨에 야외에서 2시간씩 달리는 것은 정말 힘들어요.
하지만 마음은 가장 편했습니다. 제가 연습하는 이 1분 1초, 달리는 걸음 하나하나가 네팔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미소가 지어졌거든요. 저 개인의 꿈은 물론, 제 2의 고향 네팔을 도울 수 있다는 마음에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던 것 같습니다. 분명한 목표를 위해 하루하루 땀 흘리다보니, 직장 스트레스로 잃은 지 오래였던 긍정적인 삶의 에너지가 불타올랐습니다. 그렇게 8월 한 달간 최소 300km를 달렸습니다.
“직장인 갭퍼로서, 전액 자비로 부담한 사막마라톤 참가비”
사막마라톤에 참가하려면 꽤 많은 비용이 듭니다. 400만원에 달하는 대회 참가비와 200만원의 남미 왕복 항공권은 기본으로 들지요. 주최 측에서 요구하는 각종 장비들까지 새로 구입하려면 100만원 이상 들고, 남미에서도 가장 물가가 비싼 칠레의 현지 체류비도 생각해야 합니다. 저야 원래 마라톤과 등산을 하는 사람이라 장비를 전부 살 필요는 없었고, 항공권 역시 마일리지를 써서 저렴하게 했지만, 그래도 상당한 비용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사실 저 개인에 대한 펀딩도 생각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도 아니고, 직장 생활 2년 동안 그래도 아끼면서 차곡차곡 모아 둔 돈도 꽤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원래 저 개인의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으로 시작했던 프로젝트였기에, 참가비까지 펀딩 받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래서 도전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스스로 부담했습니다.
“네팔과 함께 달린 250km ‘아타카마 크로싱’ 도전기”
모든 준비를 마친 10월 초, 저는 대회 개최지인 칠레 산페드로데아타카마(San Pedro de Atacama)에 입성했습니다. 그곳에서 장비 검사 및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후 다음날 아침 시작되는 대회를 위해 미리 준비된 버스를 타고 아타카마 사막으로 들어갔고, 그날 밤 처음으로 사막의 밤을 보냈습니다. 모두가 첫 레이스를 위해 텐트로 들어간 밤, 모닥불 앞에서 하염없이 서 있던 게 생각나네요. 퇴사부터 이곳 남미 사막까지 온 그간의 시간들을 생각하며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좀 당황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사막의 밤은 한국의 겨울만큼이나 춥더군요.
다음날 아침 떨리는 마음으로 칠레 아타카마 사막 한가운데 마련된 출발선에 섰습니다. 고비, 사하라와 함께 대표적인 사막마라톤 대회인 ‘아타카마 크로싱(Atacama Crossing)’은 6박 7일 동안 생존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배낭에 지고 250km를 달려야 하는 고통스러운 레이스입니다. 특히 아타카마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지구상 가장 건조한 사막으로 유명합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던 극한의 레이스”
출발신호가 울리자 다양한 국적을 가진 160여명의 선수들이 함성을 지르며 사막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저 역시 가슴에 달린 #I’M GOING TO NEPAL 패치를 바라보며, 당당하게 레이스를 시작했어요. 사막마라톤은 스테이지 레이스(stage race)로 매일 정해진 거리의 코스를 뛰는데요, 거의 매일 풀코스 마라톤(40km 내외)을 뛴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나 실제 경험한 ‘사막’ 마라톤은 일반 마라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문제는 배낭이었습니다. 각종 식량과 장비로 무거운 배낭을 메고 뛰려니, 빠른 속도로 지쳐갔습니다. 더군다나 욕심을 부린 추가간식과 남들보다 무거운 장비 때문에 제 배낭은 다른 선수들보다 3-4kg 더 무거웠고, 이 때문에 레이스 3시간 만에 양쪽 어깨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갔습니다. 결국 완주에 8시간이 넘게 걸린 첫 번째 레이스, 충격이었습니다.
두 번째 날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하천을 건넌 후, 화성을 닮은 붉은 협곡을 지나 거대한 모래언덕을 나는 듯이 뛰어내려왔습니다. 가방의 무게는 여전했지만, 몸이 적응하면서 레이스를 하는 속도는 빨라졌습니다. 비교적 짧은 거리였던 세 번째 날에는 순위를 줄이겠다는 욕심까지 생겨 조금 분발했더니 158명 중 65위로 빠르게 레이스를 마칠 수 있었답니다. 가지고 온 음식을 먹어치우면서 배낭도 조금씩 가벼워졌고, 88위, 75위에 이어 10위씩 순위가 올라가다보니 긴장도 조금 풀어지면서 레이스를 하는 재미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순위 욕심으로 흔들렸던 네 번째 레이스”
하지만 주제넘은 순위 욕심은 화를 불러오고 말았습니다. 네 번째 레이스를 60등 안으로 들어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처음부터 오버 페이스를 한 것입니다. 비록 첫 10km 구간은 예상대로 50위권으로 도착했지만, 이후 너무 빨리 지치는 바람에 도저히 뛸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만 급해지고 다리는 잘 안 움직이고. 영 기분이 좋지 않더군요.
네 번째 날의 코스는 소금 결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소금밭(salt flat)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역대 참가선수들 사이에서 통과하기가 힘들어 ‘악마의 발톱’으로 불리는 악명 높은 곳이고, 조금만 부주의할 경우 발을 접질릴 수 있는 구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음만 급했던 저는 여기서 발목을 심하게 접질리고 맙니다. 심지어 똑같은 방식으로 3번이나 말이죠. 거기다 그날따라 얼마나 햇빛이 강렬한지, 점심 무렵에 거의 4-5시간을 그늘도 없는 똑같은 풍경의 소금밭을 걷다가 약간의 일사병 증세로 머리가 어지럽고 구역질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프로젝트와 네팔을 생각하며 버텼습니다. 그리고 오후 5시가 다 되서야 결승점으로 들어왔고, 오자마자 그늘에서 한참을 누워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날까지 이미 20명에 가까운 선수들이 레이스를 포기했더군요.
“지옥 같던 롱데이(Long Day),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다섯 번째 날은 대망의 롱데이(Long Day)였습니다. 평소 레이스의 두 배에 이르는 74km를 하루에 가야하는 사막마라톤 최고의 고비였죠. 가장 힘들었던 날로 기억됩니다. 네 번째 날의 고전으로 왼쪽 발목을 포함한 몸 컨디션이 영 안 좋은 상태였기 때문이었지요. 거기다가 대회를 위해 처음 구입한 러닝화도 좀 이상했습니다, 며칠 사이에 지나치게 헐어버렸더군요. 그러다가 레이스를 시작한지 한 시간여 만에 갑자기 한쪽 러닝화 밑창 일부분이 뜯겨져 나가는 황당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악마의 발톱’ 구간이 무시무시했다는 건데요. 밑창이 없으니 양쪽 발이 불균형해지고, 가뜩이나 접질린 발목에 무리가 가면서 급격히 사기가 떨어졌습니다.
걷다 걷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레이스를 중단하고, 다른 참가선수들이 볼 수 없게 나무 그늘에 숨어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했습니다. 정말 온 몸이 아프고 힘들어서 다 포기하고 싶었거든요. 머나먼 남미까지 수백만 원의 참가비까지 내고 와서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지 회의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렇게 퍼져서 울고 있던 30분. 울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해지더라고요.
가슴에 붙어 있는 <#I’M GOING TO NEPAL> 문구와 네팔 국기를 보며, 24살 어린 저를 울고 웃게 만들었던 2010년의 네팔과 네팔사람들을 기억했습니다. 베푸려고만 왔던 철없던 저에게, 조건 없는 친절과 사랑을 베푼 네팔 사람들. 언제나 친절하고 솔직하며 당당한 멋진 사람들. 외국인이 저에게 먼저 손 내밀고 아무 편견 없이 다가와 주었던, 따뜻한 미소로 나를 '비제이'라고 불러주던 그들의 순박한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네팔을 위해서, 계속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러닝화를 어떻게든 고쳐야 했어요. 그리고 납작한 돌멩이 하나를 찾아 신발 안에 넣고, 절뚝이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하늘도 저를 돕는지, 걸어가다가 다른 사람의 떨어진 밑창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선수들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더라고요.) 다행히도 그 밑창을 제 러닝화 바닥에 대고 다른 선수가 준 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게 12시쯤이었을 거예요. 가야 할 길은 끝도 없었습니다. 새하얀 소금사막, 발이 푹푹 빠지는 사구를 넘어, 무지막지하게 바람이 불어오는 평야를 걷고 또 걸었습니다. 밤이 되자 입김이 보일 정도로 금방 날씨가 추워지더군요. 그럴수록 멈추지 않고 결승점을 찾아 걸어갔습니다.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장장 17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그렇게 버텨냈습니다.
다음 날 마지막 레이스가 10km에 불과했기 때문에 실제로 롱데이만 끝나면 레이스를 거의 다 완주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너무 힘들어서 좀비 같은 몰골로 결승점을 말 한마디 없이 들어와, 텐트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졌습니다.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가 된 사막마라톤 완주”
일곱 번째 날인 10월 10일, 롱데이의 고통은 모두 잊고 이제 다 끝났다는 편한 미소로 마지막 10km 구간을 달렸습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뛰었지요. 결국 저는 총 158명 중 73등이라는 성적으로 완주에 성공했습니다. 결승선에 들어오면서 일주일간 품에 품어 땀과 먼지로 얼룩진 <#I’M GOING TO NEPAL> 배너를 당당히 흔들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네팔과 함께 사막을 달린 제 스스로가 자랑스러웠습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던 순간이었어요.
“사막마라톤 완주 후 5년 만에 다시 돌아간 네팔”
사막마라톤을 완주하고 귀국한 후, 마라톤 후유증과 여독으로 일주일 넘게 끙끙 앓았었답니다. 그러면서도 네팔 동생 수잔과 함께 ‘아름다운커피’에서 진행해주신 [당신의 커피 한 잔, 네팔을 위하여] 모금행사에 참여하여 네팔을 위한 후원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2달간의 모금이 마무리되고, 약 1,000만원에 이르는 기금이 조성되었습니다. 기금 전액은 후원 파트너사인 ‘아름다운커피’를 통해 신두팔촉의 지진 피해 농가에 전해졌어요.
그리고 12월 중순, ‘아름다운커피’의 지원으로 꿈에도 그리던 네팔을 다시 방문하게 됩니다. 2010년 봉사단 생활을 마치고 떠나온 지 5년만이었지요. ‘아름다운커피’ 한국 본사와 ‘아름다운커피네팔’(Beautiful Coffee Nepal)과 함께 한 이번 출장을 통해, 저는 저의 프로젝트가 지원한 신두팔촉 지진 피해 지역을 직접 방문하고 주민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지프차로 험난한 비포장도로를 통해 산을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는데 마을마다 왕복 2-3시간이 걸리는 꽤나 힘든 여정이었지요. 지진과 산사태로 인한 파괴의 상흔은 6개월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아문 것처럼 보였지만, 곳곳에 남아있는 무너진 집과 담벼락, 그리고 일부 주민들이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세계 각 구호기관의 천막을 보니 여전히 마음이 아팠습니다.
준비해간 네팔어 축사를 통해 저와 우리 프로젝트 소개를 하고, 환대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시골 마을 특성상 처음에는 많이들 수줍어 하셨지만, 깊지는 않지만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나이가 드신 주민 분들은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달리기를 한다’는 걸 잘 이해하지 못 하시면서도, 돌아가면서 저의 손을 잡고 고마움을 표시했지요. 강인하지만 선한 그들의 눈빛에서, 저 역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또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프로젝트 후원금을 통해 지원된 채소밭을 볼 수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을 지내는 산골마을 주민들에게 감자, 무, 컬리플라워 등의 채소들이 든든한 식량이 될 거라고 하네요. 여러분들이 모아주신 마음이 벌써 영글어가는 새하얀 컬리플라워로 피어나 지진 피해에도 꿋꿋이 삶을 이어나가시는 네팔 농민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저희들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채소밭을 소개해주시던 열정적인 모습에, 저 역시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제가 받았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제가 사랑하는 네팔을 위해 저의 재능을 활용했고 프로젝트를 통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갭이어를 보내기 전과 갭이어를 보낸 후에 달라진 점"
저는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긍정적이고 꿈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의 능력과 가능성을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열심히 하면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왔지요. 그렇게 노력해서 들어간 직장 생활에서 저는 점점 작은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꿈 꿔왔던 직장. 이곳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하면 행복해 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에 좌절감이 너무 컸어요. 아침부터 자정까지 컴퓨터 앞에서 스스로 확신 없는 업무를 하는 저의 모습은 off 스위치가 고장 난 기계 같았습니다. 사실 한국의 많은 청년들이 정해진 사회적 기대와 삶의 궤적 속에서 저와 비슷한 좌절을 겪어요. 그러나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히고, 미래의 계획과 주위의 시선 때문에 다른 대안을 생각하기 어렵지요. 저 역시 퇴사하기 약 1년 간 그러한 고민 속에서 괴로워했습니다.
나이 서른, 어려워지는 취직, 사랑하는 가족과 여자 친구에 대한 미안함... 보이지 않는 퇴사 후 미래는 정말 두려웠습니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겁니다. 틀린 건 틀린 거예요. 의미 없는 직장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퇴사를 감행할 때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더 이상 불행하고 싶지 않았고, 더 늦기 전에 잃고 있는 제 자신을 찾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갭이어를 선택했고 네팔을 위해 사막마라톤을 달렸습니다. 꽤 많은 기금을 성공적으로 모금해서, 지진으로 상처 받은 네팔 사람들에게 작지만 의미 있는 도움을 줄 수 있었어요. 작은 아이디어를 동료들과 함께 프로젝트로 기획해내고, 250km 극한의 사막마라톤을 완주하고, 이를 제 2의 고향 네팔에 기부한, ‘네팔을 위해 사막을 달린 청년 박용준’. 이제는 그런 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비록 통장 잔고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경쟁’과 ‘스펙’, ‘저녁 없는 삶’ 속에서 잃어버린 ‘자아와 자존감’을 다시 찾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력서에 남을 약 1년간의 경력 공백이 전혀 아쉽지 않습니다.
"갭이어를 계획하고 있는 대한민국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
어떤 사유로든 ‘갭이어’를 계획하시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다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정하셨으면 합니다. 사실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각자 원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상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거나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하시는 거라면 단순히 ‘스펙 쌓는 일’보다도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왜 갭이어를 가져야 하는지, 갭이어 동안 왜 이것을 해야만 하는지, 그리고 이것을 통해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명확한 목표의식과 계획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한다면, 가능한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합니다. 무작정 ‘노력’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만약 ‘여유를 가지면서 미래를 설계하겠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면, 그 계획대로 최선을 다해 ‘여유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어떤 것을 계획하시든지,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이루는데 쓰이는 갭이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가능하다면, 그것이 사회와 공익을 위해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물론 필수적인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대단한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객관적으로, 저는 현재 ‘백수’입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지금 하는 일은 의미 없어요. 그만 두고 여러분의 진짜 꿈을 찾으세요’ 라는 주제넘은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갭이어’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의존해야 하고, 거기에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지금 당장 학교고 직장이고 다 그만 두고 세계여행 하세요’ 조언하는 것은 정말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보신 분이 ‘야 이거 멋진데, 나도 사막마라톤이나 도전해봐야겠다’ 라고 생각하시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본인 자신에 대한 고통스러운 성찰과 오랜 고민 없이, 남들이 하니까 무언가 하긴 해야겠다고 해서 한다면 갭이어가 끝나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겁니다.
사막마라톤을 달리면서 가장 의지가 되는 것은, 함께 달리는 동료 선수지요. 그들은 라이벌인 동시에 가장 든든한 지원군입니다. 쉽지 않은 결정을 응원합니다. 저 역시 아직 ‘현실’이라는 레이스를 함께 하고 있는 동료로서, 여러분을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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