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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th Gappepr 김예은
한복에 대한 열정과 간절함으로 버틴 6년간의 갭이어
로드한복 디자인 및 로드한복옌 브랜드 운영
# 한복에 대한 열정과 간절함이 만들어 낸 6년
저는 현재 한복을 모티브로 한 현대 의상을 디자인하는 로드한복 디자이너 겸 로드한복옌 브랜드를 운영 중입니다. 지금과 같은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많은 과정이 필요했지만 하나의 목표, 한복에 대한 열정과 간절함으로 그 과정을 지나 왔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여러분이 기대하시는 갭이어와는 상이하게 다르지만 저에게도 유사한 과정이 있어 그 부분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대학교 4년의 시간과 수원 칠보중에서 근무한 2년의 시간, 총 6년간의 시간이 갭이어라고 볼 수 있을 듯 하네요. 그 6년의 시간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로드한복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살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6년의 긴 시간을 갖게 된 계기는 위에서도 말씀 드렸다시피 하나의 목표, 한복에 대한 열정과 간절함이었습니다.
제게 있어서 갭이어와 같은 시기였던 대학교 4년의 시간과 중학교 근무 2년을 위한 시간의 준비과정은 사실 크게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앞으로 전망이 좋은 분야라는 교회 목사님의 추천으로 큰 고민 없이 사회복지학부에 진학했고(대학 입학원서 접수 시에 이 곳 하나만 지원을 했으니 얼마나 고민이 없었는지는 알겠지요^^;) 가서 공부를 하다 보니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다 어떤 계기였는지도 모르게 중학교 때 푹 빠졌었던 한복이 떠올랐고, 한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당시 대학교 1학년이었기 때문에 한복을 배울 수 있는 대학교로 재진학을 계획했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고등학교 자퇴 후 또래보다 1년 일찍 대학에 입학하여 다시 대학교를 진학한다 하더라도 늦는 것이 아닌 내 또래들과 입학하는 것이 되기에 더욱 재진학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 부모님의 반대, 더 커진 로드한복에 대한 소망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아버님께서 ‘어떻게 하나의 학문을 1년도 채 공부해보지 않고 맞는다 안 맞는다 판단을 할 수 있느냐, 네가 4년의 공부를 마치고도 한복이 너무 하고 싶다면 그 때 다시 학교를 가던, 유학을 가던 반대하지 않겠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어머니께서는 ‘한복이 얼마나 좁고 힘든 길인지 아느냐. 정말 한복이 하고 싶다면 사회복지학부를 졸업 후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하고,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는 교직이수를 해라. 이 조건에 충족하면 한복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셨어요. 혹시나 한복 일이 잘 되지 않더라도 먹고 살 길을 마련해두라는 말씀이셨죠.
당시 제가 다니던 사회복지학부는 설립 초 가정복지학과로 시작하여 저희 학번을 마지막으로 교직이수 과정이 남아있었거든요.
이를 위해 대학교 4년 동안 학점 관리에 최선을 다했고 교직 이수 4명에 들 수 있게 되었죠. 그렇다고 대학을 다니는 동안 한복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드는 것은 아니었어요. 항상 머릿속을 맴돌았고 때론 시간이 아깝다는 시간도 들었고 조급해지기도 했죠. 그래서 용돈을 아껴서 문화센터에서 한복 만들기를 배웠습니다. 수강료와 재료비를 충당하려면 용돈이 턱없이 부족하여 대학교 2학년때부터는 졸업할 때까지 알바를 한번도 쉰 적이 없는 것 같네요. 학교 매점 캐셔, 치과 새벽 청소, 과외, 복지관 방과 후 수업, 각 종 단기 알바들 심지어 부산 최초 여자 키다리 행사 알바까지...
하루라도 빨리 졸업하고 한복을 하고 싶은 마음에 조기졸업을 준비했으나 교직이수를 위한 교육봉사 시간이 채워지지 않아 결국 4학년 2학기가 붕 뜨고 말았어요. 학점은 다 채웠고 졸업시험까지 전년도에 선배들과 치르고 통과하여 구지 학교를 다닐 이유가 없으나 교육 봉사 학점 때문에 졸업이 안되는거죠.
그래서 4학년 여름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청담동 소재의 한복집에 취직을 했습니다. 사실 2학기에 해외인턴을 가기로 되어있었어요.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합격하여 해외인턴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한복 디자이너 분의 조언에 따라 한복집에 취직을 해야겠다 마음 먹었고 부모님의 반대에도 해외인턴 계획을 취소했습니다. 또 너무나도 감사하게 비전공자인 저를 합격시켜주신 한복집이 있어 그 길로 바로 서울로 올라왔지요. 6월부터 약 7개월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정말 행복하게 일했어요. 월급은 턱없이 적었지만 가게 근처에 고시텔을 얻어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2-3시간 먼저 나가 시키지도 않은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며 한복 속에 파묻혀 있다는 즐거움과 행복을 만끽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2월에 예정되어 있는 사회복지사 시험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사실 제가 오랫동안 꿈꿔온 한복은 일상에서 편하게 입는 일상복화 된 한복이었어요. 지금 제가 디자인하고 있는 로드한복과 같은 것들이죠. 하지만 제가 일한 곳에서는 혼수복이나 특별한 날 입는 말 그대로 전통의상이었고 일을 하면 할수록 내가 꿈꾸는 한복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강해졌습니다. 물론 혼자 고시텔에서 생활하며 심신이 지쳐있기도 했어요. 결국 저는 이런저런 이유로 한복집을 나와 한달 여간 사회 복지사 1급 시험을 준비하여 합격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죠.
# 아이들과 행복했던 교사 일, 그러나 사그라들지않는 한복에 대한 열망
그리고 다시 한복을 하려하니 여러모로 고민이 되었어요. 한복을 배우기 위해 대학을 진학하기보다는 실제 필드가 더욱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럼 취직을 해야 하는데 일반 한복집은 일반적인 혼수 한복 위주일테고, 그렇다고 내가 원하는 의상을 당장 시작하기에는 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고민을 하다 초등학교에서 근무 중이신 고모의 권유로 보유하고 있는 교직 자격증 2급으로 중등 교사에 지원하게 되었어요. 고모의 말씀인즉 ‘교사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도 비교적 많고, 월급도 나오니 네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준비기간으로 좋지 않겠느냐.’ 였죠.
그렇게 저는 수원 칠보중학교에 기술가정과 기간제 교사로 취직을 하게 됩니다. 생각보다 교사 일은 제가 너무나도 잘 맞았어요. 딱 제 적성에 맞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생활하는 것은 상상 이상의 큰 기쁨이었죠.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한복에 대한 열정 역시 제 맘 속에서 사그라들지 않았어요. 교사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한복에 대해 혼자 공부하고 강의나 강연 등을 들으러 다니며, 또 혼자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꿈을 키웠습니다.
# 드디어 나만의 한복 브랜드를 내다!
그렇게 2015년 로드한복옌 브랜드를 내기에 이르죠. 사실 탄탄한 계획을 기반으로 브랜드를 만든 건 아니에요. 제가 만든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들에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고, 또 때로는 구매를 원하는 분들이 있어 하나둘 판매를 하다 보니 규모가 점점 커지고, 점점 욕심이 생기고 그렇게 하다 보니 무언가에 이끌리 듯 여기까지 왔네요.
저에게 갭이어는 저 혼자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부모님의 요구와 바람,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해드리고자 했던 마음, 고모의 권유 등으로 순간순간의 선택들로 이어져 온 기간이었어요. 그 긴 시간 동안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뚜렷하고 정확한 목표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 불안, 두려움, 낮아진 자존감을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시간들
사실 제게 가장 큰 두려움은 ‘다른 사람들에게 뒤쳐지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엉뚱한 학문을 공부하고, 내 꿈과 전혀 무관한 자격증을 따고, 내 꿈과 전혀 상관 없는 직장에서 일을 하는 이 시간에도 그 누군가는 더 좋은 한복을 디자인하기 위해 상상도 못할 노력을 하며 그만큼 발전하고 있을텐데… 내가 그들에게 뒤쳐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제 자존감을 낮출만큼 제게 크게 다가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은 결코 저에게 헛된 시간이 아니었어요. 결국 지금 제가 디자인을 하고 또 브랜드를 운영할 수 있는 뒷받침이 그 6년의 과정에서 나온 것임을 분명히 깨닫습니다. 다만 당시의 두려웠던 저는 그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노력들을 하며 불안함을 떨쳤던 것 같아요. 내 꿈을 위한 노력들이죠. 한복과 관련 된 여러 자료도 찾아보고, 강의도 들으러 다니고, 만드는 방법도 배우고 그러면서 다시금 자존감을 회복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아마 많은 분들에게 갭이어는 주변인들과 부모님이 걱정하시는 부분으로 작용할거에요. 때문에 내가 이 시간을 갖는 것이 정말 맞는가에 대한 고민을 할 것이구요. 하지만 저는 반대였습니다. 주변인들과 부모님은 저에게 있어서 갭이어의 시간이었던 그 6년을 전적으로 지지하셨어요. 특히 교사로 일했던 2년의 시간은 가족, 친구, 심지어 처음 보는 사람까지 모두가 칭찬하고 지지했던 시간이었죠. 오히려 갭이어의 시간이 아닌 제 평생 직장으로 자리잡길 원하셨고요. 때문에 저는 갭이어의 시간에 안주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끊임 없이 해야했습니다.
특히 제가 교사로 취직이 됬다는 것을 알고는 덩실덩실 춤을 추시며 연신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의 기대를 저버린다는 것, 교사를 그만두고 한복을 할 것이라고 하면 걱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만류하는 친구들,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좋아해주고 내 수업을 재미있게 들어주는 어린 제자들, 어찌됐든 안정적으로 나오는 월급, 교사라는 직분에서 나오는 사회적인 지위 등등 여러 가지 안주할만한 상황에서 끊임 없이 제 자신에게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것 인지 묻고, 또 상기시키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진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분명해졌습니다. 제 마음이 그렇게 이야기하니까요.
# 내 꿈을 향해 나아갈 준비의 시간, 갭이어
가장 큰 차이점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 꿈을 향해 나아갈 준비 말이에요. 아직 더 많은 것이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이 마련될 수 있었던 것은 결과적으로 모두 6년간의 갭이어 기간 덕분이었습니다. 그 순간에는 나만 정체되어 있는 것 같고 심지어 도태되는 것 같은 불안감도 컸지만 그 것은 더 힘차게 달리기 위한 준비운동 기간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이야기합니다. 꿈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라고. 꿈을 위해서라면 희생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 것이 꼭 행복한 길은 아닙니다. 내가 꿈을 이루기 위해 정말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준비하는 기간은 꼭 필요합니다. 음식점 장사를 하기 위해 먼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방법부터 배우고 또 음식점을 차릴 자본이 필요한 것처럼 아주 최소한의 기본적인 준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목표가 분명하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도태되는 것 같다고 불안해하지 마세요. 제자리에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나 갭이어 기간 동안 여러분은 전력질주를 위한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짜 '나'를 만나볼 시간을 갖게 될 여러분을 항상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100인의 갭이어 추천 및 제보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덧글 및 쪽지 남겨주시거나 마케팅 담당자 최다영(choi@koreagapyear.com)에게 메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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