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th Gapper 이기송
12개월의 갭이어
산티아고 순례길, 6개월 간 네팔 청각장애학교 봉사
#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곳, 산티아고 순례길
2010년 기회를 얻어 스페인에서 잠시 공부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평소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을 가지고 지냈습니다. 현지에 있던 친구의 권유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준비과정 없이 슬리퍼에 낡은 가방 하나 짊어지고 떠났습니다. 880km가 넘는 길을 오롯이 두 발과 의지로 걸어야 했던 그 길에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힘든 걸음을 하던 그들 사이에서 나타샤를 만나게 됐습니다. 독일 태생의 그녀는 교통사고로 모든 가족을 잃고 깊은 실의에 빠졌다가 지인의 권유로 떠난 해외봉사를 통해 삶의 의지를 찾은 사람이였습니다. 가족의 기일마다 눈물로 이 길을 걷는다던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로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고 귀국 후 바로 휴학을 결심했습니다. 6개월 간의 네팔 해외봉사를 위해 6개월간 경비와 영어시험, 면접 등을 꾸준히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 네팔 청각장애학교에서의 갭이어
그리고 6개월간 네팔 카트만두에 있는 버히라바락 청각 장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봉사를 하고 왔습니다. 청각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긴 시간동안 교육해야 했기 때문에 네팔 현지에서 수화를 배워야만 했습니다. 현지의 선생님 역시 들을 수 없었기에 교육과 수다의 대부분은 수화로 이뤄졌습니다.
그들의 커뮤니티에 참여하여 이야기 나누고 함께 소풍을 떠나고 크고 작은 활동들을 같이 하다 보니 청각장애를 가진 것이 타인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아님을 그때야 알게 됐습니다. 편견을 내려두고 만난 버히라바락 학교의 학생들은 그 누구보다 반갑게 맞이해줬습니다. 멋쩍은 미소로 부족한 수화를 채워가더라도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던 학생들과 그렇게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됐습니다. 청각장애전문학교였지만 정부차원의 지원은 거의 없는 정도였습니다. 전세계의 다양한 NGO의 지원과 후원을 통해 운영되었기 때문에 세심하게 다뤄져야 할 안전과 위생 및 예체능교육 지원 등은 부족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저는 주로 유치부 및 저학년 아동들의 미술 교육과 고학년들의 체육 수업을 맡아 진행하였습니다.상대적으로 다양한 방식의 수업을 듣지 못했던 아이들에게 직접 화단을 꾸미고 함께 뛰고 즐기다 보니 빨라진 수화 실력만큼이나 아이들과의 거리감은 가까워졌습니다.
특히 2학년들을 대상으로 함께 학교의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촬영했던 UCC를 통해 학교의 친구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간 동고동락하며 단기봉사자들을 맞이하기도 하고, 우리만의 탁구장을 직접 만들어 가면서 아이들이 직접 무엇인가 해낼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 알아 낼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 갭이어를 통해 찾은 진짜 나의 행복
갭이어를 통해 바뀐 것이 있다면 행복의 구심점을 어디에 두느냐는 점입니다.
갭이어를 떠나기 전까지 주변에 많은 사람들과 이어져 있음에도 두렵고 외로운 감정이 불쑥 올라오는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로 그 허전함을 채우려고 해보기도 했고 사고 싶고 원하는 물건들은 하나씩 모와 채워 넣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채워진 행복은 휘발성이 높아 잠시나마 행복했던 마음도 이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무엇인가 비어있고 마음이 허전했던 이유는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이유의 중심이 외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타인으로 부터의 인정과 물건으로부터 오는 만족감은 스스로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스스로 내렸던 결정과 그 과정에서 발생했던 일련의 시련과 기쁨들이 주는 만족감은 그 어떤 행복했던 감정들보다 또렷하게 남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갭이어를 떠나는 청춘들에게 한마디 : 인생은 결과보다 과정
계획을 하는 사람들이 가끔 빠질 수 있는 함정 중에 하나는 결과에 집착한 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계획에서 벗어난 결과를 받아드리지 못하거나 때론 억지스럽게나마 결과로 과정의 키를 돌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은 예상치 못한 것들의 거듭되는 발견과 해결의 합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결과에서 과정을 단정 짓기 보다 과정의 합에서 결과를 찾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