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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을 딛고 일어난 발레리나 그녀의 갭이어 이야기 -고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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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th Gapper 고아라
11개월의 갭이어
전공인 발레를 잠시 멈추고 몽골 등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보낸 갭이어





  계기


    #1. “ 저 ‘귀머거리’는 정말 꿈꾸는 대로 이루어질 사람이다 ”

‘발레’라는 예술에 ‘청각장애’라는 요소를 결합시킨 것을 상상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저와 발레의 접점이 생기기 시작한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참 애매해요. 아주 어릴 때부터 발레를 해왔고, 우산모양의 옷을 입고 발끝으로 추는 발레가 그땐 그렇게 재미있었어요. 그러나 고난이도의 훈련을 요하는 ‘진짜’ 발레를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잊고 있었던 제 장애도 함께 인지하기 시작했어요. 

춤 추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청력의 ‘결핍’ 때문이었죠. 그러다가 중학교 때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발레학교에 다녀온 이후 발레에 대한 열정을 다시금 느끼게 됐어요. 그 모든 과정을 겪는 동안 제 주변의 사람들은 저를 보며 “고아라는 정말 꿈꾸는 대로 이루어질 사람이다.”라며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스토리’가 있었거든요.



 

 

    #2. 삐뚤어짐, 그리고 어떤 다른 시작

많은 이들이 그러하겠지만 저에게도 꿈이 있었죠. 
핑크빛 토슈즈를 신고 스포트라이트를 차지하기 위해 예술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20년이 넘는 세월을 무대 위에서 보냈어요. 하지만 춤 하나를 바라보며 쉬지 않고 달리다보니 꿈을 이루기 위해 포기해야 했던 부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춤을 추기 위해서라면 남들이 누릴 수 있는 부분도 포기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저였고, 그것을 당연한 인생의 목표라 여기며 철모를 적 받아왔던 교육 그대로 신념과 자부심, 그리고 비장함까지 간직하며 살아야 한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편협한 열정만 가득 차 있던 저에게도 어김없이 슬럼프는 찾아왔어요.


 


성실하게 춤 하나만을 바라보고 보냈던 학부 과정은 이게 과연 내가 원하던 대학 생활이었는지에 대한 회의감으로 끝나게 되었어요. 그 후 대학원에 다니던 중에는 슈퍼모델 선발대회에 도전하기도 했고, 월드미스유니버시티 그리고 미스데프코리아 우승을 거쳐 한국대표로 미스데프월드(체코)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의 꿈은 몸을 뒤틀고 자리를 바꿔 끔찍한 사람으로 변했어요. 다가가려고 하는 곳마다 모두 무너졌고, 고쳐보려고 하면 할수록 더 어긋나기만 하는 그런 사람으로 취급받았죠.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심장의 압통과 가벼운 공황장애를 느끼면서도 저는 논문을 쓰고 있었어요. 게다가 예술의 발전보다는 피라미드 구조의 시스템을 고수하겠다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아무런 동기도 찾지 못한 채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 부어야 했죠.

또한 빡빡했던 스케줄은 저에게 성장보다는 ‘소모’일 뿐이었고, 무대 위의 보상인 빛나는 갈채를 수 없이 받아 왔음에도 그동안 진정으로 무대에서 즐거웠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을 때, 저의 학교생활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혼’이라는 것을 놔두고 버티고 있던 어느 날 몽골친구의 손짓 하나에 계획에도 없던 저의 ‘갭이어’는 시작됐어요.
 






  갭이어 이야기
 

    #1. 몽골에서의 3주

어릴 적 나의 우상이던 스타를 만나러 가듯 요동치는 가슴을 쓰다듬으며 2,000km를 날아 바람과 초원의 나라에 머무르게 됐어요. 말끔히 포장된 한국의 도로와 매캐한 연기에 익숙해있던 저에게 광활한 초원 위의 레이스는 현대화된 도시의 문명을 잊게 했어요. 광활한 초원은 마구 달리고 싶은 질주본능을 일으켰지만 막상 제 육체는 미약했고 공간은 한 없이 크기만 했죠.
 

초원은 무한 차선의 길이 되고,
내가 지나가고 내 차가 지나간 길은 새로운 길이 되는 것이리라.
그리고 자신만의 지나간 새로운 길을 만들게 되리라.


앞이 창창하다는 말, 이럴 때 쓰는 거 아니었나 싶어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인 오프로드가 느리고 불편했지만 인간적이며, 따뜻하고, 진했습니다. 사실 ‘몽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대륙의 반 이상을 정복해도 경영에는 무지했던 칭기즈 칸이 지배했던 제국과 고려와의 관계, 드넓은 초원과 그를 감싸고 있는 푸른 하늘, 그리고 황량한 사막이었어요. 부끄럽지만 몽골에 대해서는 그 이상은 생각이 나질 않았어요. 그것이 제가 생각하고 있는, 제 눈에 비친 몽골의 전부였죠.


그러나 의외로 몽골에서는 칭기즈 칸의 유적을 만나기 힘들었어요. 기념이 될 만한 것은 거의 없었고 일찍이 몽골사람들은 이동식 주택인 게르에 살면서 자신과 관련된 어떤 유물과 유적도 남기지 않고 유목생활을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이 땅에서 문명이니 유적이니 따지는 것은 곧 헛짓이 되고, 더군다나 억지로 무언가를 남기며 기념하려는 것은 때로는 덧없는 짓이더라고요.

게르 안에는 카펫 위의 두 침대와 작은 수납장, 난로 위의 주전자, 물통과 자잘한 수저들, 그리고 가방이 전부예요. 이 모든 것이 최소한의 의식주임을 알게 된 순간 저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을 직시했고, 집착하며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쉽게 떨쳐내지 못한 자신을 온통 쥐어뜯었습니다. 쓸데없는 것들은 버리고 가뿐하게 살면 되는데 말이죠.


 


마지막 날 아침에는 수태차(우유차)를 대접받았는데, 평소에는 짭쪼름한 맛이 그날따라 콘푸로스트를 다 먹고 남은 우유처럼 달디 달았어요. 그리고 흉노, 돌궐, 러시아와 청의 지배, 사회주의혁명, 민주선거, 도시화 등 얕은 몽골의 역사적인 지식보다는 아롤과 아이락의 삭는 냄새가 가득 밴, 그리고 물이 귀한 초원을 이동하면서 아이들을 돌보며 식사를 준비하고도 눈으로 보지 못한 그 밖의 수많은 집안일을 해내는 몽골인의 평화, 안온함, 휴머니즘이 잔뜩 묻은 시간들이 몽골을 더 잘 이해하게 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샤먼’은 몽골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코드가 되었고요.


사실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시간’이란 존재는 우리가 한 시, 두 시 이렇게 임의로 정해놓고 그 시간에 맞춰 살잖아요.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놓은 분절의 체계인 시간에 쫓기며 연연하기만 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이곳에 오니 시간이 어그러지는 것 같더라고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해가 뜨고 지는구나, 그걸 몸으로 느꼈어요.

몽골의 유혹은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칭기즈 칸의 제국, 그러나 볼 것이 없는 바람과 초원뿐임에도 오히려 비움과 채움이 가득한, 밤이 되면 머리 위로 쏟아질 것만 같은 별천지는 얼마나 환상인지. 저는 꿈만 같던 그곳을 ‘몽꼴(꿈의 모습)’이라 부릅니다.


달려온 길이 지평선 끝으로 아득하게 지워지고
가야 할 길은 그 반대쪽으로 한없이 이어진다.
이것은 마치 내가 살아온 길이요 살 길의 모습이다.
 



    #2. 또 다른 만남 – 민간외교관이 되다

계획없이 가장 푸를 때의 몽골에 다녀온 이후 ‘KF한국청년대표단’의 추천을 받아 또 다시 낯선 만남을 시도하게 돼요. 그렇게 주목할 만한 것도 없던 저였지만 어쨌든 주목적이 ‘교류’인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민간외교관으로서 중국엘 가게 되었죠. 참고로 이 프로그램은 비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이 함께 참여하는 것인데, 이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 같은 ‘사람’으로서 공감대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거든요.

탁한 흰색 톤의 분필 같은 강하지 않은 색깔, 아주 오래된 바닥의 돌. 골목 여기저기를 다니다 보면 질감이 두드러진 벽들과 건물이 유난히 많았는데 그곳이 항저우(항주)에요.


‘길’은 광장으로 향하고, 다시 길은 ‘방향’을 만든다.
그 방향으로 가면 또 다른 길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눈물이 이 프로그램에 미리 예고되어 있었다는 점이에요. 위대한 것 앞에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할 말을 잃게 되는 법이죠. 사실 청각장애인인 저는 비장애인 사회에서 자라다가 불과 2년 전 청각장애인 사회에 발을 들이게 되어서 수화를 잘 몰랐었거든요. 그러던 중 이번 만남에서 청각장애인의 언어인 수화로 만든 노래가 저를 침묵하고, 울게 만들었어요. 

위대하게도 모든 손끝 하나하나에 소리와 선율을 담았으며, 그것이 그들에게는 ‘음악’이었거든요. 이 소리 없는 음악의 위로는, 그것이 말을 쓰지 않는 점에서, 아니 말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참으로 깊었습니다. 또한 조장으로써 최선을 다하려는 제 모습에 스스로 위로를 받기도 했고, 부족하기만 한 저를 받아주고 응원해준 소중한 사람들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여러 모로 감사함을 느꼈어요. 서로가 조금씩 부족해서 서로가 조금씩 채운 시간이었죠. 완벽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그 이후 저는 중국을 품고, 사람도 품게 되었습니다.
 


 



    #3. 사막 위의 이름뿐인 멘토

사막에도 나무를 심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저는 중국과 사람을 품은 이후 본 프로그램을 주관하고 있는 미래숲(한중청소년문화협회)에 멘토로서 다시 한 번 더 중국에 가게 됐어요. 그러나 멘토라는 수식어를 달기엔 자격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사막에 가기 전까지는 전혀 생각도 못했죠.


여기 이 공간은 무한하고 척박한 사막
얼마나 더 걸어야 이 목마른 사막은 끝날지


아직 사막에 가 본 적도 없던 저는 사막을 걷는 일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일인지 상상도 못한 채 북경에서 열차를 타고 내몽고의 한 사막에 갔습니다. 그리고 사막 한가운데에서 질퍽이며 걷다가 때로는 뒤돌아 걷기도 했어요. 이때 저와 같이 걸었던 다른 사람들의 발자국을 보면서 그래도 견뎌온 나 자신과 행복한 동행들이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얻었습니다.


마른 모래산을 네 발로 기어오르는 내내 모래알들은 신발도 모자라 양말 속까지 파고들어갔고, 저는 그 모래알들과 맞서 싸워야 했죠. 모래알도 하나둘씩 싣게 되면 무거운데 왜 세상은 우리에게 무거워지라고 하는 건지. 어쩌면 제 자신이 무거워지고 싶었는지도 모르는 이 순간에 만난 모래알들이, 자기는 가볍기 때문에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멀리 날아가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사막에서 어린 나무를 심으며 아주 작은 것도 위대해질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이해하고, 서로가 만나 기꺼이 소통할 권리가 있음을. 그리하여 제가 겪어온 모든 것은 전부 모래알이 되고, 저는 제 마음속에 사막 하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갭이어, 그 이후
 

    #1. 나의 이야기 그리고 과정이 스펙이 되다

삶의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발견할 기회를 주지 않는 교육환경에서, 뒤쳐질까 불안한 마음으로 늘 뭔가 열심히 했던 시절,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 사는 사람들이 각자의 목표를 향해 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저도 스펙을 쌓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것저것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자연스레 여러 과정을 겪다보니 어느새 스펙이 하나둘씩 쌓이게 됐어요. 

다시말해 저의 ‘스토리’가 곧 스펙이 됐죠. 과정의 즐거움 없이 결과만 얻으려 했을 때 그것은 고통이었어요. 과정이 즐거우니 좋은 결과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어요. 덕분에 지금은 운이 좋아 강연은 물론 공연과 다큐 섭외도 받고 있지요. 사실 아직도 제 속내를 잘 읽어주는 지인들에겐 걸핏하면 넋두리를 쏟아내기 일쑤지만요.



 
    #2. 아는 것, 모르는 것, 깨닫는 것

알면서 약이다 싶을 때가 있고, 알면서 병이다 싶을 때도 있지만, 모르는 건 정말 죄라는 것을 느낄 때가 있어요. 예전엔 여행은 집 밖으로 나서는 순간 시작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집을 떠나서 많은 것을 보고 느껴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여행을 부담되게 만들더라고요. 

특히 갭이어의 시작인 몽골에서의 삶은 여행이 아닌 일상 속에서도 때로는 내려놓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가치 있는 일임을 알려주었죠. 숨 가쁘게 달려온 생의 어느 한 순간 느긋하게 앉아서 숨 고를 시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달리는 동안에는 달리느라 가치있는 것을 보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죠. 또한 그동안 겪어왔던 내면갈등의 세계는 끝도 없는 무한한 초원에 비하면 다 부질없는 것들이었어요. 많이 채우려고 하는 것이 결코 완성되는 것만은 아니었음을 칭기즈 칸의 후예들로부터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정표도 없는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서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사막에서 만난 모래알 하나하나가 온 정신을 지배했지만, 평지에 돌아와 신발과 양말을 터는 순간 무수히 쏟아지는 모래알들이 결국에는 ‘살아온 과정들’이었노라고. 보이지 않는 만큼 무수한 마음으로 그 긴 시간을 견뎌왔음을.

편도여행과 같은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 내가 여기서 길을 잃어버린 것은 길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길들이 나있어서라고. 그렇게 저는 ‘스스로 만든 갭이어(안식년)’의 한가운데 머물러 있습니다.
 


 



    #3. 결국은 ‘삶의 일부’일 뿐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예술을 사랑하고, 이제는 그것이 꼭 비장한 그 무엇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게됐어요. 그저 누구든, 어느 시공간에서든 일상이나 생활의 일부분이고 모든 행동에서 피어나는 ‘삶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무용도 글쓰기도 결국은 삶 속에 내포돼있어요. 서투른 솜씨라도 좋아하는 마음으로 글쓰기에 열정을 쏟는다면 그 자체로도 예술이라 할 수 있겠죠. 이렇게 일상 속에 너무나 당연스레 녹아있는 이 모든 소소한 삶의 행위들에 대해 단 하나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게 됐죠. 또한 ‘예술’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서슬퍼런 칼날 앞에 눈을 부릅뜨고 서있는 듯 비장한 열정을 가질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4. 가장 잊기 쉬운 것

모든 것을 빨리 잡지 않으면 빼앗길 것만 같은 조바심 가득한 세월을 보냈고,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어요. 주체 못할 제 욕심이 너무 많은 것을 품으려 했고, 어차피 다 담아두지도 못할 너무 많은 것들을 다 내 것이라 생각했던 어리석은 자신도 발견했죠.

그래서 무엇보다 고맙다고 말할 때 가장 잊기 쉬운 것이 바로 제 자신이었어요. 물론 나름 열심히 살아온 데에는 주변의 도움도 있었지만 제 자신이 이겨내 준 덕도 크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빼곡하게 적힌 수많은 일정으로 바쁘게 살면서 온갖 시련에도 좌절금지라고 속으로 ‘조금만 더, 한 번만 더’라며 악바리 근성으로 이겨내고 두 발로 우뚝 설 수 있던 것도 제 자신이에요. 비로소 지금에야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한 층 성숙하고 발전한 그만큼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분명 성장기는 오래 전에 끝났는데 반대로 저의 눈과 귀는 커져가고 있는 게 느껴져요.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제가 생각하는 ‘진짜 장애’는 마음에 염증이 생겼을 때 그에 대응하지 못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갭이어 기간 동안 헝클어진 제 삶의 잔뼈들을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는 결과적으로 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고, 제 자신에게 이 순간만큼은 약간의 ‘관대함’을 허락하고 있어요. 제 안의 소중한 시간들과 사람들이 온전한 내 몫으로 켜켜이 쌓여가는 것이 기쁘거든요.



 



  이 글을 읽는 분들을 위한 한 마디
 

    #1. 고민 - 모두가 공평해지는 순간

어렸을 때부터 해온 발레인 만큼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전 ‘발레리나’라고 했어요. 그런데 다 커버린 지금은 현실적인 대답을 하게 되죠. '지금은 확고한 결정을 내릴 때가 아니라 시행착오를 거칠 때'라고요.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겪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더라고요. 영원한 건 없으니까요. 최대한 시행착오를 겪고 난다면 훗날 고민을 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가장 아쉬운 것은 어린아이처럼 두려워하며 더 많은 용기를 내지 못했다는 거예요. 좀 더 일찍 갭이어를 가졌다면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을 텐데 말이죠.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했을 수도 있겠죠. 설령 하고자 하는 일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훗날 더 좋은 어떤 것이 나타날 것임을 믿고 기다렸을 수도 있고요. 또 이로써 분명히 춤을 보다 더 잘 췄을 것이기에 더 많이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을 거예요.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하는 것, 변하는 것들을 무시하지 않는 것. 밤이 끝나면 별은 어디로 가는지, 바람이 멈추면 어디로 사라지는지, 산봉우리를 넘으면 무엇이 되는지, 파도가 모래에 부서지면 어떻게 되는지. 

세상은 완전히 끝나지 않고 다른 곳에서 태어나거나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고 있죠. 그렇게 저는 20년의 고민과 무게감을 잠시 내려놓고 있습니다. 물론 최소한의 밥벌이도 함께 하고 있지요. 그러면서 이따금씩은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2. 지루하게 사는 것은 젊음에 대한 죄

20대를 오롯이 무대 하나 바라보고 연습만 하느라 시속 20km로 달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껏 여유를 부리며 삶을 즐겼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온통 서두르며 불안해하고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몰라 늘 초조해했던 기억이 나요. 갈팡질팡하며 주관과 대책을 세우지 못하면서도 열정과 호기심은 한없이 끓어올랐죠. 그래서 학부 때는 뭣도 모르고 정말 열심히 했어요. 아마도 운전만 제대로 했더라면 제 삶의 속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을 거예요.

물론 살고 있는 한 궁극적인 평화와 휴식은 없겠지만, 가끔은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미소 지으며, 차창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며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는 일, 원하는 것은 어쩌면 그것밖에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천천히 하나씩 음미하듯이 나아가는 것이 어쩌면 더 빨리 가는 길이기도 하고, 더 많이 소유할 수 있는 길인 것 같아요. 또한 빨리 가지 않고 많이 가질 필요도 없는 거 같아요. 제가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렇게 음미하듯 나아가는 삶이 확실히 즐겁고, 행복하고, 편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안정'일까 싶어요. 지금 저는 그것을 누리고 있죠.








    #3. 일생동안 가질 수 있는 ‘가장 깊은’ 관계

부정적인 뉴스는 빠르게 잘 퍼지죠. 그래서 집 밖으로 나서지 않으면 온 세상이 혼돈에 빠져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더라고요. 진실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뉴스를 만들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멋지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없이 만들어지고 있으니까요.

또한 경험하는 모든 것은 삶의 안목과 지혜, 사회성, 타인과의 교류, 배려 등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겪어보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20대예요. 가장 위태로울 때 역시 20대겠지만요.


천천히 가되 뒤로 가지 않고
내딛는 걸음에는 보다 큰 용기를, 딛고 있는 발에는 보다 큰 의지를.
시간의 재충전이 나에게도 뿌리가 궁금할 만큼의 의욕이 솟는 계기가 되기를.


진부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더 배울 것도 많고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해요. ‘삶의 불확실성’이라는 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일어나잖아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의 힘으로 맞서는 순간 ‘아이는 어른이 된다’는 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음을 여러분께 공유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제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속에서 젊음으로 방황하고 있는 제 모습이 대견스러워요, 때론 무모하게 떠도는 듯해도 그 시간 속에서 조금씩 제 안의 ‘진짜 자신’이 쌓이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지금의 제 모습이 마음에 들어요. 

숨 가쁘게 달려온 인생의 어느 한 순간 느긋하게 앉아서 그 쉼표를 찍는 시기에 여러분께 떨리는 다리가 아닌 가슴 설레는 삶을 공유할 수 있게 되어서 진심으로 기쁩니다. 그리고 저도 계속해서 답을 찾을 거예요.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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