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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th gapper 전소라
1년 반 동안의 갭이어
갭이어 기간 동안의 경험 : NGO단체에서의 봉사활동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이
대학교 때 휴학 한 번 안하고 대학원을 갔어요. 그리고 또 1년 동안 고시를 준비하다가 그만두고 바로 취직을 했죠.
무언가에 쫓기듯이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인 여유 없이 일단 어디든 들어가고 보자는 식으로 취업한 직장이다보니까, 일에 대한 만족도가 크게 떨어져서 일을 지속하기 힘든 상황에 까지 이르렀어요.
그래서 결국 이직을 생각하고 정보를 찾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에 우연히 NGO에 대해 알게 됐고, 해외에 나가는 것에도 관심이 생겼죠. 그 때 부터 해외의 NGO기관에서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찾기 위해서 별의별 사이트를 다 뒤지고 다녔어요.
수많은 NGO단체들을 찾다가 결정한 것은 미국에서 6개월 동안 트레이닝을 받고 아프리카의 모잠비크에서 6개월 동안 농촌개발, 초등교육, 위생교육 등의 활동을 한 후에 다시 미국에서 6개월 동안 아프리카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홍보하는 활동이었어요. 해외봉사나 NGO 경력이 없었기에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다가왔고, 바로 떠나기로 결심했죠.
걱정 그리고 다짐
떠나기로 결심하고 바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어요. 8월 말에 회사를 그만두고 11월에 미국으로 출발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9월과 10월은 정말 신나게 놀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잔뜩 기대를 했죠.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자 마자 다리를 다쳐서 깁스를 해버린거에요. 결국 계획대로 놀지도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했어요. 가기 전에 액땜한다고 생각하는 수 밖에 없었죠.
어머니도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저는 항상 결정하고 부모님께 통보하는 식이어서 이번에도 비행기표를 사고 말씀드렸어요. 제 말씀을 들으시고 황당해 하시면서도 어차피 제가 갈거란걸 아시고 승락을 해주셨죠. 하지만 떠나는 그 날 까지 제 건강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어머니가 반대하시는 것보다 그게 오히려 더 가슴이 아팠어요.
그렇게 떠난 갭이어의 목표는 딱 두가지였어요.
우선적으로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고, 또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겠다.
그리고 그 동안 생각만하던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오자! 이렇게 두가지를 이루겠다는 다짐을 하고 떠났어요.
'10달러는 너무 동정하는 것 같아요'
미국에서 시작한 트레이닝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어요. 팀으로 나뉘어서 활동이 진행되다보니 의견차이로 트러블이 많았어요. 또 문화 차이로 인한 문제들도 피부로 접할 수 있었죠. 가장 자주 겪은 문제가 시간에 대한 개념차이였어요. 워낙 중남미 친구들이 많아서 약속시간보다 늦게 시작하는 일이 빈번했어요. 처음엔 다투기도 했는데 나중엔 서로 조금씩 맞춰지더라구요. 저는 느려지고 그 친구들은 빨라지면서요(웃음)
펀드레이징을 할 때도 문화별로 반응이 달랐어요. 미국 사람들은 기부를 하든 안하든 인사를 해주는 분들이 많아요. '지금 기부는 못하지만 이런 활동을 해줘서 고맙다' 이런식으로요. 한국 분들은 기부를 못하면 굉장히 미안해하세요. 그리고 기부를 해주실 때는 큰 금액을 해주세요. 한 번은 10달러를 기부해주신 분이 계셨어요. 그런데 몇 걸음 못가셔서 다시 오시더니 '10달러는 너무 동정하는 것 같아요'라고 하시면서 100달러를 넣어주신 적도 있었어요.
가장 인상깊은 곳은 남미인데요. 적은 액수지만 굉장히 많은 분들이 동참을 해주세요. 과테말라에서 모금을 할 때는 한 기부자가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어요. '비록 지금 풍족하지는 않지만, 우리들 모두 더한 가난을 겪어봤기 때문에 기꺼이 도울 수 있어요.'
갭이어 기간 동안 가장 어려웠던 기억은 아프리카에 있었을 때에요
많은 분들이 아프리카에서는 육체적인 불편함 때문에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오히려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저는 일을 하든 회의를 하든 주도를 해야하는 성격이고 그렇게 해왔었어요. 그런데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는 포르투갈어를 사용해서 제가 주도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어요. 무슨 일을 해도 보조 역할을 해야하고, 시키는 일을 수동적으로 해야했는데 그런 상황이 자존심 상했죠.
나중에야 그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는데, 제 포르투갈어 실력이 향상돼서가 아니라 인정을 했어요.
'모든 것을 내가 다 잘할 수 있는건 아니구나' 이 사실을 인정했죠. 그리고 지금껏 모든 것을 너무 제가 만든 틀에 맞추려고 했음을 깨달았어요. 그 틀에 사람들을 맞추고, 상황을 맞추려고 했던거에요. 인정을 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나니 신기하게도 포르투갈어가 늘기 시작했어요.
갭이어 기간 동안 가장 어려웠던 기억이 아프리카였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반대로 가장 좋았던 기억도 아프리카에요.
심지어 전기 없고, 물 없이 생활했던 생활이 가장 그리워요. 굉장히 단순한 생활이거든요. 아침에 해가 뜨고, 닭소리와 동네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에 잠에서 깨요. 그리고 오후 5~6시면 해가 기니까 그 전에 음식을 해먹고, 어두어지면 할 수 있는게 없으니까 자요. 그리고 냉장고도 없어서 필요한 것만 그때그때 사먹죠.
복잡한 생각 할 필요 없이 그토록 단순하게 살아본 경험은 제 인생에서 처음 해본 경험이었어요. 한국에 있을 때는 돈이 있어도 사고 싶은 것도 많으니까 항상 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곳에서는 사야할 것도 없고, 비교할 일도 없이 정말 심플한 삶을 살았던거에요.
갭이어를 가지고 돌아온 지금
남의 시선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갭이어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옷장을 보니까 옷이 가득한거에요. 그 동안 어떻게 이 많은 옷을 입고, 액세서리를 끼고 살았는지 놀랐죠. 그리고 브라질, 미국,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등 세계 각국의 친구들이 정말 많아졌어요. 이 친구들 덕분에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포르투갈어도 익히게 됐구요.
앞으로 배우고 싶은 게 많아요. 멕시코 친구들에게 배운 카포에라(브라질 무술), 콜롬비아 친구들에게 배운 살사 댄스 그리고 자급자족 생활을 통해 배운 목공예와 가드닝(Gardening)기술을 조금씩 익힐 계획이에요. 세상에는 배우고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실감했고, 가까운 미래에는 전 세계를 돌며 몰랐던 기술을 배우는 게 작은 희망사항이에요.
나에게 갭이어란?
갭이어를 갖지 않았다면 그 기간동안 돈은 많이 벌었겠죠. 그런데 돈보다 소중한 경험을 못했을 거에요. 미국이랑 아프리카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했던 경험들을 못했을 테고, 코스타리카, 브라질,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등 이름으로만 들어왔던 그 많은 나라들도 몰랐을 테고, 거기서 만난 친구들도 다 몰랐겠죠? 저에게 갭이어는 이런 소중한 것들을 있게해준 경험의 시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