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th Gapper 윤승철
갭이어 준비 3년 반 + 갭이어 1년 반
갭이어 기간 동안의 경험 : 5번의 사막 마라톤
안녕하세요, 최연소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래머 윤승철입니다
저는 3년 반 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쳐,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갭이어를 가졌는데요. 그 시작은 스무살, 대학교 1학년 때 소설 소재를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된 사막마라톤을 해보고 싶어서 였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뛰어놀다가 학교에서 유리를 밟고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를 심하게 다친 적이 있습니다. 발목이 돌아가면서 정강이 뼈가 부러져 4개월 정도를 병원에 입원했고, 퇴원을 한 후에도 발가락부터 허벅지까지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어야 했습니다.
오랜 병원생활로 비만이 되었고 이 때 평발에 하지정맥이 있단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다치면서 왼쪽 무릎의 성장판을 다쳐 오른쪽 무릎에도 성장을 멈추게 하는 주사를 맞아야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란 시기에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이 다가와 해서는 안 될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퇴원을 하고 대학생이 될 때까지 5km이상 걸어보지도 못했던 제가 대학생이 되자마자 사막마라톤을 가겠다고 생각한 것은 교수님의 과제 때문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되고 처음 받은 과제가 '소설 쓰기'였거든요.
제가 잘 못 뛰고 오래 걷지 못하니 ‘소설 주인공 만큼은 잘 뛰고 잘 달리는 친구로 써보자'라고 생각하여 소재를 찾다가 우연히 누군가 사막을 달리는 것을 본 겁니다. 그 작은 계기로 ‘나도 내 일생에 언젠간 사막을 달려보자'란 마음이 점점 커지게 되어 재활 치료를 시작했고, 군대에 가서도 꾸준히 연습을 해서 3년 반 동안 갭이어를 준비했습니다.
사막마라톤을 준비하는 과정은 두려움을 없애는 과정이었습니다
사막마라톤은 6박7일 동안 250km를 달리는 경기입니다. 오래 걸어본 적도 없는 제가 이렇게 긴 거리를 걷고 뛴다는 게 너무 두려워 1년 반의 갭이어를 가지면서 가장 많이 했던 것은 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재활치료를 받고, 2km를 뛰고 5km를 걷고 뛰길 반복했습니다. 다행히도 이런 노력 끝에 앞으로 활동을 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매일 10km씩을 걷고 달렸습니다. 그리고 사막에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을 때는 사막마라톤 참가신청을 위해 학교에 휴학 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막마라톤 대회 참가비였습니다. 사막마라톤에 참가하는데 참가비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거죠. ‘내가 잘 달릴 수 있을까'란 생각만 하고 체력적인 걱정만 했는데 막상 휴학을 하고 나서야 7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380만원의 참가비와 왕복 비행기값, 그리고 장비를 사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학교에 돌아가려고 문의를 했으나 이미 복학 신청 기간은 만료. 다음 학기와 방학까지 장장 8개월을 쉬어야 하는 상황에 당면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갭이어의 시작이었습니다.
급한대로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40이었던 자취방을 부모님 몰래 내놓기로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서울권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며 대출을 받아 마련해주셨던 방인데 말이죠. 그 돈으로 참가비를 내고 비행기표를 마련하고 하월곡동 가건물 옥탑방에 보증금이 없는 18만원짜리인 방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대회가 6박 7일이니 대회를 다녀와서 복학 전까지 계속 알바를 하여 다시 보증금을 모으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어느날 옥탑방에서 우연히 한 신문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 때면 방 안까지 바람이 들어와서, 신문지로 문풍지를 붙이다 본 기사였는데 ‘우리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각 회사의 인사담당자들이 ‘우리 회사는 이런 인재를 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도전’, ‘열정', ‘청춘', ‘패기', ‘실패', ‘끈기' 등으로 상징되는 인재를 원한다는 인터뷰였는데 이때 문득 든 생각이 ‘내가 이런 회사에 스폰서를 요청해보면 되지 않을까. 다리를 다치고 방을 뺀 것은 나름의 도전이고 실패이자 끈기며 패기가 아닐까'란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날 바로 생전 처음으로 ‘제안서’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현실의 벽, 또 하나의 레이스
처음엔 제안서를 너무 길게만 썼습니다. 무조건 분량이 긴 게 좋은줄 알고 20페이지가 넘게 작성했었죠. 이런 제안서를 들고 아무것도 없는 학생이 무작정 후원을 요청하니 어떤 기업이 순순히 스폰을 해주겠습니까. 신문에 나왔던 회사를 비롯해서 30군데 정도의 회사에 제안서를 보냈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저 혼자 생각했던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었던거죠.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에 오히려 많은 분들이 힘을 내라고 말해주셨습니다. 회사 차원이나 개인적으로 후원은 못해주지만 제안서를 첨삭해주겠다며 30장이 넘는 제안서를 5장으로 압축하여 정리해주셨던 분도 계셨고, 가까이 있는 친구들도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심기일전하여 ‘남은 대회 기간까지만 더 해보자’란 생각으로 100여 군데가 넘는 곳에 후원을 요청하였고, 마침내 참가비와 경비, 항공료, 장비 일체를 후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4곳의 사막(이집트 사하라 사막, 중국 고비 사막, 칠레 아타카마 사막, 남극)을 5번 달렸고 총 4천여만원의 경비가 들었습니다. 후원을 찾으러 다니며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것과 더불어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했던 것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이란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프로젝트에 후원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데 저 역시 사막마라톤 완주, 그랜드 슬램에 도전하는 프로젝트로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목표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하는지, 어떤 점들이 달라질 것인지, 후원을 하면 어떻게 보상(리워드)을 해드릴지에 대해 적고 홍보 글과 사진, 짧은 다큐멘터리도 함께 제작하여 올렸습니다. 1만원, 3만원, 5만원, 10만원을 후원할 수 있도록 설정을 해두었는데 펀딩이 끝났을 때에는 총 2천여 만원이 모였습니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펀딩 사이트를 제작한 다음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받아보니 '윤승철군이 맞느냐, 계좌번호를 불러달라'는 말이 들렸습니다. 순간, 보이스피싱인줄 알고 “혹시 누구신지요"라고 했더니 모 회사의 회장인데 펀딩 싸이트를 보고 도와주고 싶으니 계좌번호를 말해달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회장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죄송하지만 혹시 가능하시면 펀딩 사이트를 통해 후원을 해주실 수 있으신지요"라고 했더니 회장님께서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후원 금액이 커서 최대 액수인 10만원을 몇 십번 클릭하고, 폰으로 날라오는 인증번호를 또 몇 십번 인증해야 하잖아요"
그리고 공교롭게도 바로 다음날, 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한 번 만나고 싶은데 언제 시간이 될 때 우리 회사로 오라는 한 사장님의 전화였죠. 바로 약속을 잡고 사장님을 만나뵀습니다. 왜 가려고 하는지 등 이것저것 많은 이야기를 오랫동안 하고 잘 다녀와서 먼저 연락드리겠다고 했는데 그 때, 흰 봉투를 하나 주셨습니다. 가는데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와 회전문을 나가는 중이었습니다. 대회에 필요한 개인적인 장비를 사려는데 마침 사장님이 주신 봉투가 생각나 이걸로 마련을 하면 되겠단 생각으로 봉투를 꺼내 봤는데 꽤 많은 액수의 수표가 있었습니다.
너무 놀라 다시 사장실로 올라가서 사장님께 여쭤보았습니다. “사장님, 제가 누군지도 모르시고, 이전에 만난적도 없고, 혹 이렇게 좋은 말씀과 후원을 받고 완주에 실패를 하거나 나쁜 용도로 쓰거나 정말 대회에 출전조차 안할수도 있는데 어떻게 처음 만나는 청년에게 이렇게 큰 금액을 덜컥 줄 수 있으셨습니까, 실은 어제도 이렇게 도움을 받았는데 저는 꼭 한 번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참신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이라면 괜찮을 것 같네”
“이렇게 참신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이라면 괜찮을 것 같네” 돌아온 대답은 이 한 마디 였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을 할 때 후원해주신 분에게 6가지 리워드(보상)를 해드리겠다고 내세운 것을 보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당시 공략 6가지는 이랬습니다.
1. 작고 투명한 유리병에 사하라 사막 모래와 남극 빙하를 담아 하나밖에 없는 기념품을 드리겠습니다.
2. 잊고 싶은 추억이 담긴 물건을 제게 보내주세요. 사막을 달리며 사하라 한복판에 묻어서 잊고 싶은 기억을 완전히 잊게 해드리겠습니다(GPS로 묻은 위도,경도를 알려드리고, 얼마나 깊게 묻었는지 영상을 함께 보내드리겠습니다)
3. 사막을 달리는 사진으로 직접 제작한 엽서에 감사 편지를 적어 보내드립니다. 그리고 영상편지도 보내드립니다.
사막과 남극을 달리며 셀카로 감사편지를 동영상으로 찍어 엽서 뒷면, 우표 옆에 QR코드로 보냅니다. 사진과 글, 영상을 함께 받아 볼 수 있습니다.
4. 후원해주신 분들의 이름으로 명찰을 제작하여 항상 가방에 달고 다니겠습니다. 힘들때마다 도움을 주신 분들을 생각하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겠습니다.
5. 사막에 나무를 심겠습니다. 후원해주신 분들의 수만큼 나무를 심고, 심은 나무에 이름표를 달고 오겠습니다. 저를 응원해 주시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구촌 사막화 방지에도 일조할 수 있습니다.
6. 사막마라톤 완주 후 3번에 걸친 마라톤 코치, 귀국 후 열릴 사진전에 VIP로 초청하겠습니다.
공략을 이행하면서 재미있는 일도 많았습니다. 잊고 싶은 기억이 담긴 물건으로 예전 남자친구, 여자친구의 사진, 편지, 반지, 커플 통장을 받기도 하고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잊고 싶은 기억이라며 성적표를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그 중 제일 기억에 나는 것은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 친구와 찍은 스티커 사진을 제게 준 친구였습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라며 제게 보내줬기에 궁금해서 제가 먼저 물었습니다. “곧 헤어지려고 지금 만나고 있는 이 친구와 찍은 사진을 보낸것이냐, 먼저 마음의 정리를 하는 것이냐” 그 친구 대답은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신혼여행 때 사하라 사막에 함께 가서 위도와 경도를 보고 찾으려고요”
세 번째 공략이었던 편지를 쓰는 일과 나무를 심는 일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후원해주셨던 분이 150분 가까이 되었기 때문인데, 편지야 시간을 들여 쓸 수 있었지만 나무를 심는 일이 문제였죠. 20명 정도면 많이 후원해주시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150명이 넘는 분들이 도와주시니, 나무꾼이나 지게꾼이 되어 묘목을 들고 가도 마라톤은커녕 하루 만에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감사한 일이었지만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래도 약속을 했던 일이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을 하다 ‘트리플래닛’이라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무를 키우는 스마트폰 게임인데 나무를 다 키우면 설정해둔 아이디로 실제로 사막에 나무가 심어지는 어플리케이션이었습니다. 나무가 심어지고 나면 이메일로 어느 사막에 어떻게 심었는지 사진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이거다! 후원자분들의 이름으로 나무를 키워서 사막에 나무를 심자!’ 일주일간 아무것도 안하고 게임만 하여 심은게 고작 4그루, 무작정 ‘트리플래닛’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몇 번을 찾아간 끝에 대표님께 명단을 주면 심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재미있는 프로젝트라며 말이지요.
마지막 6번째 공략은 사막과 남극을 다녀온 뒤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12월에 남극까지 다녀온 후, 다시 학교에 복학하여 수업을 듣던 3월, 모르는 번호로 갑자기 문자가 와서 확인해보니 “윤군, 늘 응원하고 있네, 이제 날도 슬슬 따뜻해 졌으니 마라톤 코치 수강권을 쓰겠네”라는 문자가 와있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단순히 공략이 하나라도 많아보이면 좋을것 같아 적어 뒀었습니다. 마라톤 코치를 받으려고 후원을 해주실 분이 있을꺼라고 누가 생각이나 할까요, 유명 사진작가의 사진전도 아니고 유명인도 아닌 제가 사진전을 열면 누가 올까요. 그런데 정말 잊지 않고 이렇게 문자를 보내주셨던 겁니다. "선생님 편한 시간대와 장소를 말씀해주시면 찾아뵙겠습니다.”라는 답변에 다시 온 답장. “그래요, 여긴 경남 창원입니다.”
사막을 달리면서
갭이어의 목표였던 사막을 달리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고 또 많은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언제가 가장 기뻤냐고 물어보시며 골인했을 때?”라고 물어보시는데 저는 출발선에 서서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를 들었을 때가 가장 기뻤습니다. 왈칵 눈물이 났거든요. 3년 반을 준비했던 길고 긴 사막레이스가 시작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많이 달려 본 분들은 제게 ‘촌놈 마라톤한다’고 했습니다. 너무 기쁜 마음에 컨디션이나 코스 조절도 없이 마구 달리는 바람에 첫날 골인지점에서 기절을 했습니다. 오버페이스를 한 것이죠. 마라톤이라는 긴 레이스는 생각하지 않고 초반에 힘이 넘친다고 달린 까닭이었습니다.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어쩌나 혼자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저 멀리 뒤에서 여자 선수가 쫓아와 어찌하나 고민하다 여선수를 보내고 볼일을 볼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 인사를 하고 앞서 달려나간 여자선수가 갑자기 바지를 내리고 볼일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저도 그냥 볼일을 봤습니다. 일주일간의 레이스 중 첫째날이었는데 3일 정도가 지나니 더 이상 새로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누가 어디서 볼일을 보든, 뭘 하든. 다시 원초적 동물로 돌아간 느낌이랄까요.
사막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사막에 가기 전에는 이제까지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 정리를 하고 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막을 달리다보니 이런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습니다. 사막에 대한 환상을 깨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사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이렇게 더운 곳에 왜 왔을까, 시원한 음료수와 치킨, 햄버거, 삼겹살, 초밥이 너무 먹고 싶다’라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들
사막에서 위험한 순간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저 멀리 오늘의 골인 지점이 보여 아껴둔 물을 다 마셨습니다. 사막에서는 물통에 담은 물을 뚜껑을 열고 벌컥 벌컥 마시지 않고 튜브가 달린 호스로 빨아먹습니다. 적은 양으로 효과적으로 목을 축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인데 저는 다왔다는 생각에 뚜껑을 열고 모두 마셨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골인 지점은 4km는 족히 떨어져 있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원근감이 없는 사막이기에,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이곳에는 수많은 사구(모래언덕)가 저와 골인지점 사이에 있었는데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5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에 ‘목이 말라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지나가는 친구들의 물 호스를 빨아가며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정표도 없는 사막 한 가운데서 길을 잃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커브길로 갔어야 하는데 혼자 직진을 했던 것입니다. 몇 십 키로를 직선으로 걸었으니 당연히 계속 직진이겠거니 하고 간 것이었습니다. 코스를 햇갈린 것이 아니라 뜨거운 태양과 고단함에 생각없이 가다보니 직선으로 간 것이었죠.
40분을 그 사실도 모르고 터벅터벅 가고 있었는데 무언가 이상하여 돌아보니 저 멀리 뒤에서 점처럼 보이는 한 선수가 저를 따라 오고 있었습니다. 혼자 사막을 건너가다 사람을 보니 반가워서 손을 흔들었는데 그 선수도 반가웠는지 손을 흔들더군요. 그리고 십여분을 더 간 뒤 다시 뒤를 돌아봤는데 이 선수가 훨씬 더 가까이 와있는 것이었습니다.
또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었지만 속으론 ‘나를 따라 잡으려고 하는건가, 더 빨리 도망가야겠다.’ 생각하고 달렸습니다. 그러길 또 10분,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앞 사람이 남긴 발자국이 없는 길이었죠. 그 친구는 제가 길을 잘못 간 것을 저 멀리서 보고 그 사실을 말해주려고 쫓아온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꾸밈없는 모습들이 보이는 사막에서 저는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본질과 인간 본연의 모습, 제 스스로에 대한 한계, 도전, 모험과 생각할 시간, 또 다른 현실들을 만났습니다. 석유 재벌인 쿠웨이트 친구와 70대 할아버지에게 왜 사막을 달리느냐고 물은 뒤 들은 답변도 모두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돈이 있고, 시간이 있다고 골인할 수 있는게 아니야. 여긴 내가 온전하게 꾸준히 노력해서 달려야 하는 곳이야”
“내 인생에 지금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나 스스로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어”
그들의 대답이었습니다. 사막을 달리며 가졌던 갭이어를 통해 저는 어쩌면 살면서 평생 생각해보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사막마라톤, 그 후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에 5번에 걸쳐 1,250km를 달렸고, 최연소 사막, 극지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준비과정과 달리면서 느낀 점들을 글로 정리하여 <달리는 청춘의 시>라는 책을 냈는데, 운이 좋게도 2013년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1년 반이라는 갭이어를 가지며 저는 사막을 달렸고, 생각지도 못한 경험들을 많이 했습니다. 살아가는데 외면은 크게 바뀐 것이 없습니다. 다녀온 직후, 방송이나 신문, 잡지에서 인터뷰를 몇 번 한 것이 전부였지요. 하지만 경험에서 오는 힘과,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감은 덤이었습니다. 하드웨어는 변함이 없지만 소프트웨어가 업그레이드 되었다고나 할까요?
갭이어가 필요한 이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꿈을 찾고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고, 그리고 쭉 밀고 나가라고. 하지만 같은 20대, 후기 청소년이자 청년 입장에서는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 부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가 고민이니 계속 찾으라고 하는 것도, 무작정 뭐라도 해보라는 것도 쉬이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이런 걸 찾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고, 소수의 사람만이 경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것을 해볼 시간과 실천하는데 필요한 용기 그리고 생각할 여유가 필요하고 ‘잘 하는 것일까, 잘 될까’라는 걱정도 이겨내야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부분에서 갭이어를 가졌던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대가 되었을 때까지 저는 온전히 제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여 결정하고, 실천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국내 여행을 가거나 친구들과 여러 동아리에 나갔던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혼자 힘으로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갭이어를 갖지 않았어도 언젠가는 사막을 달렸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갭이어를 보낸 지금, 그 전의 제가 갖지 못했던 생각 그리고 하지 못했던 경험을 했다는 것은 제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 되었습니다.
정글짐과 같은 인생
지금 이 시기에 우리가 하는 일들이 헛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꿈이 확실하고, 하고 싶은 일이 확실히 있으면 좋겠지만 사막을 다녀온 저도, 제 또래의 많은 친구들도 그렇지 못합니다. 다만, 저는 헛된 경험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이란 말 안에는 몸으로 직접 해보는 것도 있지만, 생각하고 준비하는 보이지 않는 영역도 포함되겠지요.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인생은 정글짐과 같아서 지금 당장 우리에겐 큰 상관관계가 없는 단편의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간 이것들이 얽혀 어느 순간 나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책상에 앉아 고민하고, 당장 ‘나는 뭘 잘하고 어떤 것들을 해야 하나’라고 찾으려면 찾아지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를 해보다 보면 길이 보이고, 어느 순간 위의 말처럼 새로운 나를 찾는 과정을 만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사막을 다녀와서 이 경험을 바탕 삼아 엄홍길 대장님과 히말라야에 오르기도 했고, 터키까지 실크로드 횡단의 청년탐사대장, 배를 타고 이란까지 횡단하는 프로젝트에 청년대장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무인도에 3주간 살다가 와서 이 이야기를 책으로 쓰는 것도 준비하고 있어 당장 오늘 무인도에 한 번 더 들어갑니다.
어떻게 보면 사막을 다녀온 뒤 저도 새로운 길을 찾은 것인지 모릅니다. 사막을 뛰고 다녀왔던 이야기를 책으로 썼던 경험은 제가 좋아하는 일들의 복합체였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글쓰기 말이죠. 문예창작학과에 재학중이어서 조용조용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뭔가를 움직이며 해보고 싶단 생각이 있었는데 사막을 달리면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졸업을 앞둔 제게도 지상 최대의 과제가 있습니다.
“뭘 해먹고 살래?”라는 물음인데요, 같이 한 번 고민해보는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