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th Gapper 윤영훈

갭이어 기간 동안의 경험 : 국내 및 일본 여행 그리고 군복무

 

 

 

 

  '생각만하던 나를 자극시킨 한마디'

 

저는 막내로 자랐습니다. 하지만 막내라고 오냐오냐 하는 부모님은 전혀 아니셨고, 오히려 누나들이 공부도 잘하고 이뻐서 더 사랑을 받고 자랐죠. 제가 자란곳은 아주 작고 한적한 시골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을 했는데, 어린시절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처음부터 그랬던건 아니고 고등학교 올라와서 변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와서 생각하면 놀랄만큼 비뚤어진 생활을 했습니다. 공부보단 친구들과 어울리는게 좋았고, 겁없이 돌아다니는게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성적이 나쁘지 않았던 학생이라 주위의 걱정은 점점 커졌고, 나중에는 포기하는 쪽으로 가더군요.

 

주위의 그런 반응을 느낄 때면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기 일쑤였는데,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도 해서 '공부를 다시 해야하는데' 라는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항상 생각만 하고 변하지는 않은채 시간만 보냈습니다. 친구와 좋고 노는게 재미있다는 이유로 말이죠.

 

 

 

 

 

그러고 봤더니 어느덧 수능을 마치고, 목표 없이 성적에 맞는 대학에 입학서류를 넣고 있는 고3이 되어 있었죠. 정말 아무 생각없는 아이로 변해버린 저에게 어느 날 큰누나가 이야기 좀 하자고 하더군요. 큰누나는 어릴 적부터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못하는게 없었습니다. 백일장, 사생대회도 대표로 나갈 정도로 잘했습니다.

 

저는 그런 누나를 부러워했지만, 칼같고, 똑부러지는 말만하는 누나는 쉽게 다가갈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누나가 저를 앉혀놓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남자로 태어나 평생 조그만 시골에서 양아치 깡패같이 살거면 계속 그렇게 살아!" 

 

더 이상의 말도 하지 않고, 그 말만 하고 자기 방으로 갔는데 저는 한참을 멍해 있었습니다.

정말 차가웠고, 부끄러웠습니다. 한참을 혼자 멍해 있다 생각을 했습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고 뭐부터 바꿔야 하는지,무작정 다시 공부해야겠다라는 생각은 안들었습니다. 그보다 비뚤어진 생활로 망가진 제 정신부터 바로 잡기로 했습니다.

 

사람도 많지않은 조그만 시골에서 헛된 폼이나 잡고 다니면서 사람 우습게 깔보던 습관부터 고쳐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 많은 곳으로 가서 돈없이 돌아다녀보자! 타인에게 부탁도 하고, 고생도 하면서 스스로가 낮아져보자!' 그렇게 저만의 갭이어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

 

우리나라 여행은 자전거와 함께 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무작정 다니기로 마음먹고 지도 하나 달랑 챙겨서 떠났습니다. 일단 목표는 자전거로 전라도를 다 돌아보자 였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평생 이 땅에 살텐데 우리나라도 다 돌아보지 못하고 해외로만 나가는게 좋은가 라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학업을 포기하고 여행에만 올인할 수 없어서 방학마다 우리나라를 돌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릴적했던 땅따먹기 게임같은 방식이죠. 그렇게 하루종일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패달을 밟으며 나아가는게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고 금방 허기가 졌습니다.

 

그래서 아무 식당에 들어가 밥을 얻어 먹어야했는데, 이게 좀처럼 쉽게 되지 않더군요. 처음에는 들어가서 무슨말을 해야할 지, 만약 거절당했을 땐 어떻게 해야할지 머릿속에 생각이 많았습니다. 식은땀을 흘릴정도로요. 한참을 고민하다 일단 무작정 들어가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무전여행을 하고있는 학생인데 혹시나 남는 밥과 김치만 주신다면, 감사히 먹고 여행을 계속 하겠습니다'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상당히 큰 용기가 필요했던 저였습니다. 다행히 사장님께선 웃으시며 밥을 주셨고, 자신의 아들도 대학때 국토순례같은걸 하였기에 충분히 배고픔을 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느낀 온몸의 전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원동력으로 총 4회에 걸쳐 전국을 돌았습니다. 잠은 최대한 공공시설을 이용했습니다. 파출소, 병원, 각 지자체에서 당직하시는 분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하루하루 고마움을 느끼며 여행을 했습니다. 한 번은 호객행위를 하시는 분들도 저에게 만은 전단지를 안주는 그런 몰골로 대구를 여행하는 중이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어디서 한 끼를 해결하나 둘러보고 있던 중 동성로 시내 한쪽에 근사한 한정식 집을 발견했습니다.

 

차림새도 말이 아니고 안된다고 하시면 그냥 인사드리고 나와야지 하는 생각으로 들어가 저의 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점장님이란 분께서 흔쾌히 허락을 해주시며 밥상을 내어주셨는데 그 때까지 그렇게 많은 반찬은 처음 봤습니다. 너무 맛있고 감사했는데, 점장님께서 본인도 젊어서 다 해본 경험이라며, 큰 힘이 되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나라를 돌면서 느꼈던 감사한 마음으로 학교 생활 역시 활기를 찾았고, 사람에 대한 태도가 바뀐 저를 보며 다시 한 번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일본여행을 위해 두 달간 알바를 하여 최소한의 자금으로 떠났습니다. 경비를 아끼기 위해 왕복 배를 타고 다녀왔습니다.

 

일본 여행을 결정한 이유는 평범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그들의 높은 시민의식을 직접 느끼고 싶었거든요. 일본에서는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도쿄역에서 노숙을 하다가 본인의 자리라고 하시는 분 때문에 자리를 옮겨가며 잠을 청했다가도, 아껴두었던 비상금으로 근사한 온천에서 온천도 해보고, 삿포로에서는 신선한 치즈에 맥주도 한 잔 하며 진정한 여유를 느껴보기도 했습니다. 

 

후쿠오카에서 삿포로까지 일본 열도를 두 달동안 정말 촘촘히 누볐습니다. 그 이유는 잠과 관련이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외국이다 보니 아무데서나 노숙만하며 여행을 할 수도 없었고, 캡슐호텔이라도 비용이 적지않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야간열차와 버스였습니다. 일본은 야간열차나 버스가 멀리가는 노선들의 경우 6시간 이상은 걸리기 때문에 거기서 잠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많은 곳을 가볼 수 밖에 없었던 일정이었지요.

 

 

 

 

 

 

 

  군대에서 진로를 찾다.

 

일본여행을 마치고 저도 이제 군대에 가야할 시기가 왔습니다. 23살이라 남들보단 좀 늦은 시기에 군대를 갔는데 그만큼 더 확실한 생각은 있었습니다. 국내와 일본 여행을 통해서 내가 진정 하고싶은 게 무엇인지 찾고있을 때 군대를 가게되어 저의 생각은 거기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군대에서의 목표는 3가지 였습니다. 

 

하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내자, 

또 하나는 건강한 몸을 만들어오자, 

마지막은 책을 많이 읽자 였습니다.

 

처음 온 신병이 책읽고 운동 할 수는 없잖아요. 일단 열심히 군생활에 적응했습니다. 나름 축구도 잘해서 쉽게 적응하고 선임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 대학 때 과거의 저와 같은 길을 걷는 청소년들에게 조금이나 도움이 될까하여 YWCA에서 청소년상담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경험을 살려 중대 상담병을 맡게 되었습니다.

 

어느정도 적응이 된 이후에는 취침 시간에 허가를 받고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수 있는 연등을 했습니다. 책을 읽고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연등시간이었죠. 그 때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의 기억을 더듬으며 내가 과연 무엇을 했을 때 가장 뿌듯하고 재미있고 보람됐는지.

 

 

 

 

 

 

 

오랜시간 책을 보고, 집요하게 질문을 이어가다 보니 답이 나오더군요. 전문적으로 배운적은 없지만, 미술시간마다 항상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고, 학교 복도에도 제 작품이 자주 걸리곤 했습니다.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소름이 돋으면서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조금씩 구체적으로 생각을 하며 미술분야에서 더 세밀한 진로를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릴적부터 멋부리기 좋아했던 저에게 의상디자인이야말로 제격이라는 믿음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 휴가를 나갈 때마다 의상에 관한 책을 사서 보았고, 또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군생활 동안 저의 진로를 확실히 찾게 되었고, 제대를 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와 낮에는 지인의 소개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야간에는 의상 전문학교를 다니며 의상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과정을 수료한 후에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의상쪽으로 뛰어들어 지금은 의상디자이너로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저의 모든 면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갭이어의 시간을 통해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진정성이었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도 계산하지 않고 정말 진정성있게 대하고, 무슨 일을 할 때에도 진정성을 가지고 임한다면 변할 수 있다는걸 느꼈습니다.

 

정말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임없이 얘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무전여행을 다니면서 깨달은 진정성이고, 다른 하나는 군에서의 시간을 허투로 보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갭이어 경험을 통해서 좀 더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국내든 해외든 군대든

 

사실 저는 참 평범합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참 부끄럽고 제 얘기가 별볼일 없다는거 잘 알고있습니다. 갭이어에 올라오는 많은 분들의 글을 보면 참 대단하신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비록 저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자신을 변화시키고, 진로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을 본인 스스로 만들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갭이어는 없습니다.

 

모든걸 포기하고 여행에만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또 그게 정답이라는 생각도 안들구요.

중요한건 본인의 상황에 맞는 갭이어를 선택해서 실행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방학마다 여행을 했고, 군대에서의 시간을 이용해서 진로를 찾았듯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