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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의 갭이어 "하나의 퍼즐조각 같은 인생의 매 순간" 손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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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손재은
갭이어 기간 : '13년 9월 ~ '14년 7월
갭이어 기간동안 활동한 국가 : 캄보디아, 태국, 이탈리아


순간 
 
나는 대략 일년 동안 캄보디아, 태국, 한국을 거쳐 이태리까지 옮겨가며 갭이어Gap Year를 가졌다.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지만 짧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시간이 초속 5센티미터로 지나갔다.
단순히 재미있어서 시간이 흘렀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재미가 큰 만큼 그만큼의 고생도 했기 때문이다.
  
시작은 단순했다. 그냥 어느 순간 삶이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끊이지 않는 학원 생활, 남들 다한다는 대외활동 그리고 학교 생활까지 어느 순간 다 같아지면서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내에서 빠르게 갭이어를 준비했다. 그 결과, 결정 뒤 2주 반 만에 캄보디아에서 살게 되었다.
 
다들 이런 큰 결정에 따른 부모님의 반응을 묻곤 한다.
사실 나는 내 결정에 부모님의 의견이 중요하지 않았다. 내 인생의 큰 결정이라 생각했다. 나만 생각했고, 내 인생을 생각했고, 나를 믿었다. 그 뒤 부모님의 의견을 물었을 때 나는 너무나도 운이 좋게 흔쾌히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서야 나 자신이 스스로 나를 믿었기에 그런 나를 믿었다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KoreaGapyear


캄보디아
 " 영어, 대화, 여행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
 
첫째로, 나는 영어실력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24시간 내내 영어만 써야 했다. 처음엔 엄청난 압박과 스트레스와 말도 안되는 오리지날 사운드를 감당해야 했다.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들리고 이야기 하게 되었다. 아마도 두려움을 없애고 막 이야기를 한 뒤 부터라고 생각한다. 나중에는 영어로 한국 소개 하는게 그렇게 재미있었다.
 
두번째, 대화였다. 나는 한 국제 NGO단체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내가 살던 숙소의 친구들도 다 NGO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대화의 주제는 글로벌 이슈 위주로 이루어졌다. 오바마의 한 마디에 토론을 하게 되는 건 일상다반사였고, 당시 일어났던 케냐 테러사태에 대해선 각기 의견을 쏟아내느라 바빴다. 점심시간에는 직장동료들과 저녁은 룸메이트들과 함께. 살면서 전혀 접해보지도 관심도 없던 주제에 당황했다. 하지만 점차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그런 이슈에 관심을 가지게되었다. 아침에 월스트리트저널을 체크하고 대화를 나누고 의견을 피력하고 시야를 넓혀갔다. 덕분에 나는 지금도 그런 이슈에 관하여 기사를 찾아보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단지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 만으로도 시야가 넓어질 수 있는지를 알 게 되었다. 
 
셋째로, 여행이었다. 캄보디아의 여행의 특별함은 날 것 그대로라는 것이다. 아직 많은 관광객이 찾지 않았기에 숨쉬는 자연을 볼 수 있다. 물론 운이 좋으면 야생코끼리를 볼 수 도 있다. 한때 정글 트랙킹에 빠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가져간 말라리아 약을 다 없애고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자연의 위대함과 웅장함을 본다면 그 묘미에 빠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가끔은 그런 자연 속에 빠져서 자연의 신기함을 느껴보는 것도 참 좋은 일이란 것을 경험 할 수 있었던 나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KoreaGapyear


 




태국
 " 고난과 역경과 프로페셔널함의 사이에서 "
 
사실 태국에서는 그냥 힘들었다. 아 진짜 힘들었다는 생각밖에 안 난다.
 
태국에서는 NGO단체에서 일할 때 출퇴근 수단으로 오토바이를 탔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너를 돌다가 순간 잘못하는 바람에 그대로 도랑에 꽝! 박아버렸다. 살면서 응급차에 실려 가본적도 처음이었고, 피를 그렇게 많이 흘려 본적도 처음이었다. 그 때 알았다 진짜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구나. 
 
이건 정말로 내 인생의 꽤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인생은 진짜 어떻게 될 지 모른는 걸.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나에게 맞게 그리고 이왕이면 즐겁게 사용하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이 때부터였다.
 
하지만 굳이 위험한 경험을 하지 않고도 그 말을 기억하고 산다면 그것 만으로도 자신의 인생에 대한 태도는 많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국의 NGO에서 일 할 당시에 나에게는 슈퍼바이저가 있었다.
그 슈퍼바이저는 외국의 유명한 컨설턴트로 활동도 했었고 저널리스트로도 활동했으며 6개 국어를 그냥 자유롭게 쓰고 말할 수 있는 중국계 미국인이었다. 세미 은퇴를 하고 NGO에 와서 일을 돕고 있는 분이셨는데. 이 분의 프로페셔널함과 능력은 정말로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 인생 최악의 2개월을 만든 분이었다.



ⓒKoreaGapyear


나는 이분의 어시던트로 같이 일을 했다. 내가 하던 프로젝트가 이 분이 하던 일과 겹쳐지면서 같이 일을 하게 된 것이다. 하.. 그 슈퍼바이저와 함께 했던 나날들이란 독기와 독기 그리고 독기를 품게 만들고 기분 좋은 하루를 지옥으로 만드는 하루하루 였다. 일에 대한 분석력 냉철함 그리고 문제 파악능력까지 정말로 훌륭했지만 사람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능력의 차이는 나를 자괴감에 빠지게 했다. 더불어 그 분의 피드백으로 인하여 자신감을 잃기까지 했다. 나뿐 아니라 다른 봉사자들이 기피할 정도의 워커홀릭과 자기 중심적이었던 분이었으니깐. 심지어 3개월동안 다른 봉사자들과 그 분이 같이 찍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을 정도였다. 주말에도 일을 했고 일이 끝난 시간 외에도 집에 가서 일을 했다. 그 분이 바로 내 앞 방에 살았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내 이름을 부르는 그 분의 목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덕분에 진지하게 프로페셔널함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적어도 그 분이 일을 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배울 점이 많았다. 지금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할 정도다. 더불어 어떠한 회사 생활도 그 보다는 쉽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는 나와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하나같이 위안으로 삼으라고 해줬던 이야기다. 사회에 나가도 저런 상사는 없다고 말이다. 비록 그 당시 자괴감과 자신감의 하락은 말도 할 수 없지만 그 덕분에 더욱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는 경험이었다.



ⓒKoreaGapyear


한국
" 고마움 " 
 
태국에서의 생활 후, 한국에서의 한 달 반의 생활이란 천국이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결코 내가 경험하지 못했으면 알지 못했던 것들의 감사함과 고마움 그리고 행복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한국, 집, 가족과 친구가 이토록 특별한 존재였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탈리아
 "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
 
가방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가죽을 좋아했다. 그래서 가죽으로 가방을 만드는 곳을 갔다.
진정으로 만드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되어 행복했다.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만든다는 것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이해하게 되니 보는 눈도 달라졌다. 물론, 공부하는 것 같고 내가 스스로 배운 만큼 따라가야 하는 것도 같다는 점에서 학교는 학교라는걸 알았지만 그 장소가 공방이라는 게 특별헀다. 
 
아침 일찍 공방의 냄새도 좋았고 풍경도 좋았다. 또한 도구가 놓여있는 모습부터 가죽까지 다. 무엇보다도 하나가 완성될 때마다의 그 성취감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공부를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본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가죽공예 작업은 욕심이 계속해서 났다. 그래서 테스트도 많이 해보고 가방을 열심히 보러 다니기도 했다. 무언가를 만들고 그걸 완성하는 일은 참 멋진 일이었다. 자그마한 것 이라도 만들어봤다면 그 성취감에 모든 스트레스며 힘들었던 과정까지 좋아진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태리에서는 정말로 가죽공예만 열심히 했다. 그리고 피렌체에서 삶을 맘껏 누렸다. 마치 여태껏 고생한 것을 모두 보상받는 듯이. 피렌체라는 도시도 아름다웠고 공방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거기서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더욱 재미있게 누릴 수 있었다.
  
'어쩌다가 하루 아침에 캄보디아 태국을 거쳐 이태리까지 왔는지.' 이른 아침 학교로 가는 길에 두오모를 보며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지금의 생활이 너무 좋아서 행복한 삶이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렸다. 아마도 고생을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행복들이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태리에서 이 모든 일들을 뒤돌아 보면서 그 당시는 힘들었지만 그 덕분에 지금 이렇게 웃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또 웃음이 나왔다.



ⓒKoreaGapyear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만큼 짧게 느껴진 대략 일년간의 과정들이 그립다. 무엇보다도 후회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비록 그리움은 크더라도 1년 간의 갭이어 덕분에 지금은 하루하루가 재미있다. 
아마도 그 많은 일들과 순간의 퍼즐 조각들이 모여서 지금이 완성 된 것 아닐까. 
그래서 어떤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을 수가 없다. 재미있었던 매 순간이 그리고 힘들었던 매 순간들이 모여서 지금에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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