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주변에 있는 모든 만남에 어쩌면 작별이 전제되어 있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후, 전에는 때로 지겨움을 느꼈던 모든 순간들에 최선을 다하게 된 것 같아요. 전보다 제 주변에 있는 모든 인연들에 최선을 다하게 된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여유와 즐거움이 가득한 그리스 마을공동체 인턴 이지윤 갭이어족 갭퍼(24세, 대학생) / 4주 간의 갭이어 |
# 친환경적인 공간에서 사람들과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게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안녕하세요 저는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스물네 살 대학생 이지윤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제발 쉬어!”란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바쁘게 생활했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회사를 다녀야 했고, 짬짬이 대외활동과 단기 아르바이트도 했거든요.
그런 모든 것들이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거라 믿고 생활했지만, 어느 순간 보니 제가 많이 지쳐있더라고요. 수면 패턴이 일그러지고 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나서야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멀리 떠나서 쉬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이런저런 활동들을 살펴보다가 한국 갭이어를 알게 되었고, 그리스 마을 공동체 인턴 프로젝트를 발견했어요. 친환경적인 공간에서 사람들과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게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왠지 그곳에서의 경험이 경직되고 예민한 저를 많이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알 수 없는 끌림도 느꼈고요.
떠나기 전 걱정이라고하면 공동체 생활을 하는 마을에서 지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생활적인 부분에 대한 걱정은 많이 없었어요. 또 그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갈등이 있거나, 인종차별이 있을까봐 조금 걱정스럽긴 했어요. 하지만 돌아보면 모두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이었던 것 같아요.
*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이지윤님에게는 마음의 여유, 자신의 관계에 대해 돌이켜볼 수 있는 맞춤형 1:1 개인미션이 매일 제공되었고, 자신을 돌아보고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갭이어노트도 제공되었습니다.
# 정말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출국 준비가 너무 힘들었어요.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종강을 한 후 출국까지 남은 일주일이란 시간 동안만 제대로 된 준비를 할 수 있었어요. 짐 싸는 것부터 시작해서 보험 가입과 휴대폰 유심까지.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하나하나 혼자 책임지려니까 부담이 컸어요.
유럽 여행 카페나 블로그 등을 참고해도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도움을 많이 청했었어요. 그리고 시간에 많이 쫓기다 보니 정신이 없어서 준비물부터 일정, 해야 할 일들까지 전부 엑셀 파일로 만들어 정리했어요. 사소한 것까지 하나하나 파일로 정리하는 제 자신이 좀 변태같이 느껴졌지만 덕분에 빠뜨린 것, 부족한 것 하나 없이 갭이어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솔직히 이번 갭이어를 통해 그럴싸한 목표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그냥 딱 두 가지였어요. 첫째는 제 생활이 너무 너무 너무 싫어서였고, 둘째는 정말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누군가는 한심하고 무기력하기 그지없는 이유라 웃어버릴 수 있겠지만, 갭이어를 갖기 전의 저는 정말 많이 지쳐있었거든요.
단순히 한국을 떠나 여유를 갖고 쉬고 싶다는 게 목표였어요. 처음에는 ‘나 너무 즉흥적이고 단순하게 떠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에 불안했지만, 오히려 단순하고 원하는 바가 명확해서 갭이어를 즐기는 것이 더 쉬웠던 것 같아요. ‘어찌 됐든 새로운 건 뭐든 즐기며 쉬면 된다!’는 생각이 언제나 제게 여유와 즐거움을 안겨주었거든요.
# 그리스에서의 하루일과
우선 오전 8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해요. 원한다면 더 일찍 일어나서 오전 7시에 있는 명상이나 요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고요. 식사를 마치고는 봉사자, 스태프들과 함께 Morning Circle에 참여했어요. Morning Circle에서는 서로의 손을 잡고 명상을 하고,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간단한 회의를 한 후 업무 분장을 해요.
강압적인 분위기가 전혀 없기 때문에 말을 하고 싶지 않으면 침묵을 지켜도 되었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면 하고 싶지 않다고 자유롭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었어요. Circle이 끝난 후엔 점심 시간 전까지 맡은 일을 했어요. 해야 할 일들은 대부분 빨래, 청소, 바느질, 정원 정리 등의 집안일이었고요.
점심 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식사를 한 후, 비치 타임을 가졌어요. 마을의 차를 타고 해변으로 내려가 2시간 30분 가량 수영을 하거나 독서를 하며 자유 시간을 즐겼어요. 볼로스에는 예쁜 해변이 많아서 매번 다른 해변에 가는 것이 즐거웠어요.
또 가끔은 걸어서 폭포에 놀러 가기도 했어요. 덕분에 볼로스의 구석구석을 많이 구경할 수 있었죠. 비치 타임이 끝난 후엔 마을에 돌아와 잔업을 마무리 하거나 간단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저녁 식사를 했어요.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엔 다른 봉사자들이나 워크샵 참가자들이 여는 노래 교실, 명상 프로그램, 커뮤니티 게임 등에 참여할 수 있었고, 가끔은 늦은 밤까지 사람들과 마을 카페에 모여 술을 마시고 이야기 꽃을 피웠어요.
다른 마을로 연극이나 콘서트를 보러 가기도 했고요. 또 그리스인들을 위한 단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지 기관은 굉장히 그리스 문화와 유기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듯 보였어요. 덕분에 마을 축제에 구경을 갔고, 매주 오는 그리스 춤 선생님에게 그리스 전통 춤을 배우기도 하며 그리스의 문화와도 가까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 제가 불편함을 이야기 했을 때 모두 그 감정을 존중해주었습니다.
즐거운 경험이 너무 많았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진행되었던 노래 교실에서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부른 것도 즐거웠고, 마을 축제 때도 즐거웠고, 매주 목요일마다 그리스 춤을 배운 것도 즐거웠어요.
무엇보다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저녁마다 마을에서 사람들과 술, 음료를 마시며 웃고 떠들었던 때인 것 같습니다. 불쾌한 경험은 딱 한 번 있었는데, 해결을 보는 데 반 나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주변에는 늘 제 말에 귀 기울여줄 사람들이 있었고, 제가 불편함을 이야기 했을 때 모두 그 감정을 존중해주었습니다. 그 감정에 대해 털어놓을 용기를 내는 것이 힘들었을 뿐, 도움을 요청하고 표현을 한다면 주변에는 늘 그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해결을 위해 함께 고민해 줄 사람들이 존재했습니다.
# 가장 크게 배운 건 남들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에요.
그리스 마을 공동체에서 보낸 한 달은 제게 굉장히 소중하고도 애틋한 시간이에요. 감동을 받은 것도, 깨달은 것도, 배운 것도 많아요. 그중 가장 크게 배운 건 남들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에요.
생각해보면 그리스에 가기 전 해야 했던 출국 준비도, 공동체 마을을 떠나 혼자 그리스를 여행했던 10일 간의 시간도 모두 타인에게 도움 받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더라고요.
특히 마을의 봉사자들과 스태프들, 그리고 워크샵을 위해 짧게 방문했던 참여자들은 제게 정말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새로운 환경에 낯섦을 느낀 저를 위해 마을의 규칙은 물론 사소한 생활 팁들을 친절하게 알려주었고, 늘 먼저 말을 걸어주며 대화를 시도해주었어요.
처음에는 ‘내가 저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 도움을 요청하거나 질문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지만, 서서히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고 건강한 일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미안함이 아닌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을 때 마을의 사람들과 하나의 공동체로 묶였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어요.
문화권도 다르고, 20대인 저와 나이대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게 신기했어요. 굳이 길게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때로는 따뜻한 미소만으로, 때로는 멀리서 눈빛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그런 결속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 '내가 지금 큰 사랑을 받고 있구나!' 라는 걸 의심 없이 체감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마을 공동체에서 지내며 ‘내가 지금 큰 사랑을 받고 있구나!’라는 걸 의심 없이 체감할 수 있었어요. 저는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란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 제가 남들이 주는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그 사랑에 대해 자연스럽게 감사한 마음을 느꼈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저 또한 마을에 있던 사람들을 많이 사랑했고요.
아무런 조건 없이 타인에게 진심으로 애정을 느끼고, 애정을 느낀 사람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커다란 경험이자 행복이었어요. 또 그 시간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고, 반복되기도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고요.
마을 공동체에서 아쉽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려 노력했지만, 떠날 때가 되니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나고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마냥 속상한 감정에 빠지게 되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지냈던 작은 마을과 그곳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나눴던 수많은 대화와 감정들이 오래도록 남아있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거든요.
마음 한 켠에 다정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공간이 남았다는 것, 그리고 지칠 때마다 꺼내 볼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생겼다는 것. 그것이 갭이어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값진 선물 같아요.
# 그리스에서 만난 사람들
아무래도 한 달간 함께했던 자원봉사자들과 스태프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특유의 유쾌함과 친화력으로 빠른 적응을 도와주었던 A.
A는 센터에서 일한 지 10년 가까이가 된 베테랑이고, 현지 문화와 볼로스라는 도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때로는 폭포로, 때로는 연극 공연장으로, 때로는 작은 재즈 콘서트장으로 사람들을 이끌며 센터에서의 생활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어요. 볼로스에 도착한 첫날 A와 함께 마트에서 장을 보고, 볼로스 구석구석을 둘러본 기억은 지금까지도 생생해요.
저와 같은 날 센터에 도착한 자원봉사자 D는 웃음이 많고, 센터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어요. 센터에서 저를 가장 많이 도와준 사람이기도 했고요. 마치 엄마처럼 저를 잘 챙겨준 D 덕분에 센터에서의 적응이 어렵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일주일간 함께 방을 함께 썼던 C는 유쾌한 농담으로 언제나 모두를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어요. 장난기 있는 모습 뒤에는 언제나 다정함이 엿보였고요. D, 그리고 C는 자기들보다 한참이 어린 저와 허물없이 대화를 나눠주었고, 저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었어요.
주방 지킴이었던 P는 늘 사람들을 위해 맛있는 식사를 만들어준 사람이었어요 짓궂게 저를 놀리는 게 취미인 P였지만, 그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과 배려심, 애정을 지닌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센터를 떠나던 날, 아침 7시에 출발하는 저를 위해 이른 새벽부터 아침 식사를 만들고, 점심 도시락을 싸줬던 P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었어요.
2주간의 룸메이트이자 술친구였던 I는 서툰 영어로도 재미있는 농담을 잘 던지던 사람이었어요. 말도 많고, 장난기도 많았던 I 덕분에 먼 그리스 산 속에서도 유흥생활을 만끽할 수 있었어요.
다정다감한 선생님 같았던 Al과 과묵한 Pe는 센터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노부부였어요. Al은 거동이 불편했음에도 불구하고 센터 일들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한국에서의 제 생활과 마을 공동체 생활이 끝나고 시작될 제 여행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던 사람이었어요.
무뚝뚝하고 과묵한 Pe는 돌아가신 제 할아버지를 연상시키는 사람이었어요. Pe는 평소에 말이 없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노래 부를 땐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적극적으로 노래했고, 저녁마다 초콜릿 케이크를 맛있게 먹으며 보는 사람도 배부르게 만들었고, 가끔 농담을 던져 모두를 빵 터지게 만들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Pe가 많이 어려웠지만, 누구보다 애정 어린 눈길로 저를 바라보며 알게 모르게 챙겨준 Pe는 시간이 얼마 가지 않아 센터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한 사람이 되었어요. 지금도 Pe가 정말 많이 보고 싶고요.
요리와 바느질, 정원 정리까지. 못하는 게 없었던 만능 엔터테이너 G는 제게 좋은 선생님이 되어주었어요.
G 덕분에 생전 안 해본 바느질도 잘 하게 되었고, 그리스 식 음식도 만들 수 있게 되었어요. 또한 G는 제가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많은 도움과 가르침을 준 사람이에요.
Gr은 누구보다도 다정다감하고 듬직한 사람이었고, 센터의 크고 작은 일을 모두 돌보는 사람이었어요. 많은 대화를 나눠보진 못했지만, Gr과 늘 시선으로, 미소로 소통했던 기억이 나요.
‘정원 요정’이 별명이었던 S는 수국과 해바라기로 가득한 센터의 정원을 돌보는 사람이었어요. 언제나 부드러운 미소를 지녔던 S는, D와 C가 센터를 떠나던 날 많이 울던 저를 위해 기분이 안정되는 꽃 오일을 챙겨주며 다독여준 고마운 사람이기도 해요.
이 밖에도 매주 마을공동체를 찾아왔다 떠나간 워크샵 참여자들, 그리고 짧게 나마 만났던 마을 사람들과 다른 센터 사람들도 갭이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소중한 인연이에요. 다들 많이 보고 싶고요.
# 전보다 제 주변에 있는 모든 인연들에 최선을 다하게 된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센터에서 경험한 모든 만남은 작별을 전제로 하고 있었어요. 9월까지만 센터가 운영되고, 많은 사람들이 짧은 워크샵이나 휴가차 방문하기 때문에 함께할 시간이 딱 정해져 있더라고요. 그렇다 보니 그 만남들이 제게 굉장히 소중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에게 저절로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게 되었고, 더 자주 함께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리스 센터뿐만이 아니라 한국에 계신 부모님, 친구들, 소소하게 만나는 사람들까지, 제 주변에 있는 모든 만남에 어쩌면 작별이 전제되어 있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후, 전에는 때로 지겨움을 느꼈던 모든 순간들에 최선을 다하게 된 것 같아요. 전보다 제 주변에 있는 모든 인연들에 최선을 다하게 된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 예비 참가자들에게
그냥 재미있게 즐기시면 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저는 2주차쯤에 체력이 방전돼서 해변에도 잘 못 내려 갔고, 놀러도 자주 못 갔었어요. 그래서 초반에 체력을 아끼시고, 제공되는 모든 행사와 산책에 참여한다면 센터에서의 갭이어가 더욱 즐거울 것 같아요.
# 나만의 갭이어 TIP
- 언어
외국에서 거주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언어 사용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분이 가더라도 센터에 계신 분들이 모두 찰떡같이 말을 알아듣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시기 때문에 언어가 큰 문제로 작용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언어가 서툴러도 먼저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끊임없이 영어로 말을 하려는 노력이 영어 실력보다 더 중요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국인들이 센터에 많은 편이라 영국식 영어 표현을 조금 알아간다면 의사소통이 더욱 원활할 것 같습니다.
- 숙소
센터 내부에 여러 방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룸메이트와 함께 생활하고, 저 같은 경우에는 4인실 여자 도미토리에서 3주를 지냈습니다. (4인실이지만 방에는 늘 3명까지만 숙박했습니다.) 사실 처음 배정받은 방에 들어갔을 때는 많이 당혹스러웠습니다.
화장실에 개미가 기어 다녔고, 거미가 구석구석에 있었습니다. 벌레를 정말 싫어하기 때문에 ‘아 나 여기서 잘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하지만 센터 측에서 주기적으로 개미약을 치는 등의 관리를 해주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잘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따뜻한 물도 콸콸 잘 나오고, 산 속에 있어서 한여름에도 굉장히 시원하다는 장점들이 있기 때문에 센터 숙소가 호텔 같을 것이란 기대만 버린다면 문제 없이 숙소에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서양의 집들과 달리 신발을 벗고 실내에 들어가는 것이 센터의 규칙이기 때문에 실내 바닥도 깨끗했고 굉장히 편안했습니다.
그리고 워크샵 게스트들의 숫자에 따라 방을 바꿔야 하는 경우도 드물게 생기곤 합니다. 또 반지하에 위치한 방들도 있는데, 이 방들의 경우 굉장히 습합니다. 이 방에서 지내게 될 경우 창고에 있는 난방기를 가져와 방에 간간히 틀어놓으면 방이 습해지는 것을 조금이나마 방지할 수 있습니다.
- 식사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담당하는 식사 당번이 있었습니다. 보통 일주일에 두 번 ~ 세 번 정도 식사를 준비하는 당번으로 참여했던 것 같습니다. 전부 채식주의 식단이고, Taverna Night인 매주 화요일 저녁엔 마을 식당에 가 고기 요리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채식이라고 매번 샐러드 같은 것만 먹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국가의 요리들을 접할 수 있었고, 가끔은 그리스식 요리도 맛 볼 수 있었습니다. 쿠스쿠스, 파이, 파스타, 타이 커리와 누들 등 다양하고 맛있는 요리들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리고 사람들과 웃으며 식사를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센터의 식사 시간이 늘 즐거웠습니다.
- 준비물
센터에는 기본적인 생활 용품들이 거의 다 구비되어 있습니다.(세면용품 제외. 세면용품은 한국에서 챙겨가고 샴푸, 린스와 같은 무게 나가는 것만 현지 마트에서 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수건과 비치타올도 제공이 되기 때문에 비상용 수건 한 장 정도를 제외하곤 타올류를 준비해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빨래를 가장 걱정했었는데, 센터에 세탁기와 친환경 세제 등 빨래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구비되어 있어서 한국에서 가져간 종이 세제 등은 짐만 되었습니다(센터에는 세탁 담당 자원활동가가 있고, 개인 빨래는 한 번 할 때마다 2유로를 받습니다. 인턴, 자원활동가는 빨래가 무료였습니다.)
옷걸이도 여러 개가 센터에 비치되어 있어서 챙길 필요가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꼭 챙기면 좋을 것은 피부 보호용 물품들과 벌레 퇴치제! 햇볕이 정말 강하고, 해변에 매일 나가기 때문에 선크림과 모자 등은 필수인 것 같습니다. 또 센터에 모기 등을 비롯한 벌레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모기 스프레이나 패치 등을 여러 장 준비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채식, 서양식을 하다 보면 얼큰한 것이 생각날 때가 꼭 있을 것이기 때문에 가방에 여유가 있다면 인스턴트 음식도 한 두 가지 정도 챙겨가면 유용할 듯합니다. 또 덧붙이자면 생각보다 책을 읽을 시간이 많기 때문에 넉넉하게 읽고 싶은 책을 준비해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 나만의 그리스 여행 TIP
매주 한 번씩 Day-off를 가질 수 있었는데요, 그때마다 걸어서 해변으로 내려가곤 했어요.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이 정말 예쁘고, 그늘이 져있어서 덥지 않아 걷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또 센터 근처에 있는 폭포에도 자주 갔었어요.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작은 폭포도 예쁘지만, 더 올라가면 정말 웅장하고 커다란 폭포가 하나 더 있어요. 올라가는 길이 굉장히 험하고 조금은 위험했지만, 위에서 본 웅장한 폭포의 모습과 시원한 계곡물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센터를 떠난 후엔 혼자 그리스 여행을 다녔는데요, 정말 그리스는 가볼 곳이 많은 나라인 것 같아요. 예쁜 섬들은 물론이고, 박물관, 유적지, 정말 밥도 굶어가며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여행에 몰두했었어요. 저는 미코노스, 낙소스, 크레타, 메테오라, 아테네를 여행했었어요. 그 중 메테오라는 제가 가장 사랑하게 된 장소여서, 그리스에 갈 분들에게 꼭 방문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답니다.
나의 갭이어는
경험 ★★★★★
사람들과 허물 없이 가까워지며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있단 걸 느낀 귀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배움 ★★★★★
다양한 국가의 문화는 물론, 공동체에 대한 지식도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환경 ★★★★★
산 속에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고, 근처에 예쁜 해변도 많았습니다.
안전 ★★★★★
많은 것이 오픈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여가 ★★★★☆
단체 생활을 하기 때문에 여가 시간이 많진 않았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모든 만남에 어쩌면 작별이 전제되어 있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후, 전에는 때로 지겨움을 느꼈던 모든 순간들에 최선을 다하게 된 것 같아요. 전보다 제 주변에 있는 모든 인연들에 최선을 다하게 된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여유와 즐거움이 가득한 그리스 마을공동체 인턴 이지윤 갭이어족 갭퍼(24세, 대학생) / 4주 간의 갭이어 |
# 친환경적인 공간에서 사람들과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게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안녕하세요 저는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스물네 살 대학생 이지윤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제발 쉬어!”란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바쁘게 생활했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회사를 다녀야 했고, 짬짬이 대외활동과 단기 아르바이트도 했거든요.
그런 모든 것들이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거라 믿고 생활했지만, 어느 순간 보니 제가 많이 지쳐있더라고요. 수면 패턴이 일그러지고 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나서야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멀리 떠나서 쉬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이런저런 활동들을 살펴보다가 한국 갭이어를 알게 되었고, 그리스 마을 공동체 인턴 프로젝트를 발견했어요. 친환경적인 공간에서 사람들과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게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왠지 그곳에서의 경험이 경직되고 예민한 저를 많이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알 수 없는 끌림도 느꼈고요.
떠나기 전 걱정이라고하면 공동체 생활을 하는 마을에서 지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생활적인 부분에 대한 걱정은 많이 없었어요. 또 그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갈등이 있거나, 인종차별이 있을까봐 조금 걱정스럽긴 했어요. 하지만 돌아보면 모두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이었던 것 같아요.
*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이지윤님에게는 마음의 여유, 자신의 관계에 대해 돌이켜볼 수 있는 맞춤형 1:1 개인미션이 매일 제공되었고, 자신을 돌아보고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갭이어노트도 제공되었습니다.
# 정말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출국 준비가 너무 힘들었어요.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종강을 한 후 출국까지 남은 일주일이란 시간 동안만 제대로 된 준비를 할 수 있었어요. 짐 싸는 것부터 시작해서 보험 가입과 휴대폰 유심까지.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하나하나 혼자 책임지려니까 부담이 컸어요.
유럽 여행 카페나 블로그 등을 참고해도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도움을 많이 청했었어요. 그리고 시간에 많이 쫓기다 보니 정신이 없어서 준비물부터 일정, 해야 할 일들까지 전부 엑셀 파일로 만들어 정리했어요. 사소한 것까지 하나하나 파일로 정리하는 제 자신이 좀 변태같이 느껴졌지만 덕분에 빠뜨린 것, 부족한 것 하나 없이 갭이어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솔직히 이번 갭이어를 통해 그럴싸한 목표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그냥 딱 두 가지였어요. 첫째는 제 생활이 너무 너무 너무 싫어서였고, 둘째는 정말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누군가는 한심하고 무기력하기 그지없는 이유라 웃어버릴 수 있겠지만, 갭이어를 갖기 전의 저는 정말 많이 지쳐있었거든요.
단순히 한국을 떠나 여유를 갖고 쉬고 싶다는 게 목표였어요. 처음에는 ‘나 너무 즉흥적이고 단순하게 떠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에 불안했지만, 오히려 단순하고 원하는 바가 명확해서 갭이어를 즐기는 것이 더 쉬웠던 것 같아요. ‘어찌 됐든 새로운 건 뭐든 즐기며 쉬면 된다!’는 생각이 언제나 제게 여유와 즐거움을 안겨주었거든요.
# 그리스에서의 하루일과
우선 오전 8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해요. 원한다면 더 일찍 일어나서 오전 7시에 있는 명상이나 요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고요. 식사를 마치고는 봉사자, 스태프들과 함께 Morning Circle에 참여했어요. Morning Circle에서는 서로의 손을 잡고 명상을 하고,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간단한 회의를 한 후 업무 분장을 해요.
강압적인 분위기가 전혀 없기 때문에 말을 하고 싶지 않으면 침묵을 지켜도 되었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면 하고 싶지 않다고 자유롭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었어요. Circle이 끝난 후엔 점심 시간 전까지 맡은 일을 했어요. 해야 할 일들은 대부분 빨래, 청소, 바느질, 정원 정리 등의 집안일이었고요.
점심 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식사를 한 후, 비치 타임을 가졌어요. 마을의 차를 타고 해변으로 내려가 2시간 30분 가량 수영을 하거나 독서를 하며 자유 시간을 즐겼어요. 볼로스에는 예쁜 해변이 많아서 매번 다른 해변에 가는 것이 즐거웠어요.
또 가끔은 걸어서 폭포에 놀러 가기도 했어요. 덕분에 볼로스의 구석구석을 많이 구경할 수 있었죠. 비치 타임이 끝난 후엔 마을에 돌아와 잔업을 마무리 하거나 간단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저녁 식사를 했어요.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엔 다른 봉사자들이나 워크샵 참가자들이 여는 노래 교실, 명상 프로그램, 커뮤니티 게임 등에 참여할 수 있었고, 가끔은 늦은 밤까지 사람들과 마을 카페에 모여 술을 마시고 이야기 꽃을 피웠어요.
다른 마을로 연극이나 콘서트를 보러 가기도 했고요. 또 그리스인들을 위한 단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지 기관은 굉장히 그리스 문화와 유기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듯 보였어요. 덕분에 마을 축제에 구경을 갔고, 매주 오는 그리스 춤 선생님에게 그리스 전통 춤을 배우기도 하며 그리스의 문화와도 가까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 제가 불편함을 이야기 했을 때 모두 그 감정을 존중해주었습니다.
즐거운 경험이 너무 많았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진행되었던 노래 교실에서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부른 것도 즐거웠고, 마을 축제 때도 즐거웠고, 매주 목요일마다 그리스 춤을 배운 것도 즐거웠어요.
무엇보다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저녁마다 마을에서 사람들과 술, 음료를 마시며 웃고 떠들었던 때인 것 같습니다. 불쾌한 경험은 딱 한 번 있었는데, 해결을 보는 데 반 나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주변에는 늘 제 말에 귀 기울여줄 사람들이 있었고, 제가 불편함을 이야기 했을 때 모두 그 감정을 존중해주었습니다. 그 감정에 대해 털어놓을 용기를 내는 것이 힘들었을 뿐, 도움을 요청하고 표현을 한다면 주변에는 늘 그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해결을 위해 함께 고민해 줄 사람들이 존재했습니다.
# 가장 크게 배운 건 남들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에요.
그리스 마을 공동체에서 보낸 한 달은 제게 굉장히 소중하고도 애틋한 시간이에요. 감동을 받은 것도, 깨달은 것도, 배운 것도 많아요. 그중 가장 크게 배운 건 남들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에요.
생각해보면 그리스에 가기 전 해야 했던 출국 준비도, 공동체 마을을 떠나 혼자 그리스를 여행했던 10일 간의 시간도 모두 타인에게 도움 받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더라고요.
특히 마을의 봉사자들과 스태프들, 그리고 워크샵을 위해 짧게 방문했던 참여자들은 제게 정말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새로운 환경에 낯섦을 느낀 저를 위해 마을의 규칙은 물론 사소한 생활 팁들을 친절하게 알려주었고, 늘 먼저 말을 걸어주며 대화를 시도해주었어요.
처음에는 ‘내가 저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 도움을 요청하거나 질문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지만, 서서히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고 건강한 일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미안함이 아닌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을 때 마을의 사람들과 하나의 공동체로 묶였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어요.
문화권도 다르고, 20대인 저와 나이대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게 신기했어요. 굳이 길게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때로는 따뜻한 미소만으로, 때로는 멀리서 눈빛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그런 결속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 '내가 지금 큰 사랑을 받고 있구나!' 라는 걸 의심 없이 체감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마을 공동체에서 지내며 ‘내가 지금 큰 사랑을 받고 있구나!’라는 걸 의심 없이 체감할 수 있었어요. 저는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란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 제가 남들이 주는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그 사랑에 대해 자연스럽게 감사한 마음을 느꼈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저 또한 마을에 있던 사람들을 많이 사랑했고요.
아무런 조건 없이 타인에게 진심으로 애정을 느끼고, 애정을 느낀 사람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커다란 경험이자 행복이었어요. 또 그 시간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고, 반복되기도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고요.
마을 공동체에서 아쉽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려 노력했지만, 떠날 때가 되니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나고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마냥 속상한 감정에 빠지게 되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지냈던 작은 마을과 그곳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나눴던 수많은 대화와 감정들이 오래도록 남아있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거든요.
마음 한 켠에 다정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공간이 남았다는 것, 그리고 지칠 때마다 꺼내 볼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생겼다는 것. 그것이 갭이어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값진 선물 같아요.
# 그리스에서 만난 사람들
아무래도 한 달간 함께했던 자원봉사자들과 스태프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특유의 유쾌함과 친화력으로 빠른 적응을 도와주었던 A.
A는 센터에서 일한 지 10년 가까이가 된 베테랑이고, 현지 문화와 볼로스라는 도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때로는 폭포로, 때로는 연극 공연장으로, 때로는 작은 재즈 콘서트장으로 사람들을 이끌며 센터에서의 생활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어요. 볼로스에 도착한 첫날 A와 함께 마트에서 장을 보고, 볼로스 구석구석을 둘러본 기억은 지금까지도 생생해요.
저와 같은 날 센터에 도착한 자원봉사자 D는 웃음이 많고, 센터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어요. 센터에서 저를 가장 많이 도와준 사람이기도 했고요. 마치 엄마처럼 저를 잘 챙겨준 D 덕분에 센터에서의 적응이 어렵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일주일간 함께 방을 함께 썼던 C는 유쾌한 농담으로 언제나 모두를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어요. 장난기 있는 모습 뒤에는 언제나 다정함이 엿보였고요. D, 그리고 C는 자기들보다 한참이 어린 저와 허물없이 대화를 나눠주었고, 저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었어요.
주방 지킴이었던 P는 늘 사람들을 위해 맛있는 식사를 만들어준 사람이었어요 짓궂게 저를 놀리는 게 취미인 P였지만, 그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과 배려심, 애정을 지닌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센터를 떠나던 날, 아침 7시에 출발하는 저를 위해 이른 새벽부터 아침 식사를 만들고, 점심 도시락을 싸줬던 P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었어요.
2주간의 룸메이트이자 술친구였던 I는 서툰 영어로도 재미있는 농담을 잘 던지던 사람이었어요. 말도 많고, 장난기도 많았던 I 덕분에 먼 그리스 산 속에서도 유흥생활을 만끽할 수 있었어요.
다정다감한 선생님 같았던 Al과 과묵한 Pe는 센터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노부부였어요. Al은 거동이 불편했음에도 불구하고 센터 일들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한국에서의 제 생활과 마을 공동체 생활이 끝나고 시작될 제 여행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던 사람이었어요.
무뚝뚝하고 과묵한 Pe는 돌아가신 제 할아버지를 연상시키는 사람이었어요. Pe는 평소에 말이 없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노래 부를 땐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적극적으로 노래했고, 저녁마다 초콜릿 케이크를 맛있게 먹으며 보는 사람도 배부르게 만들었고, 가끔 농담을 던져 모두를 빵 터지게 만들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Pe가 많이 어려웠지만, 누구보다 애정 어린 눈길로 저를 바라보며 알게 모르게 챙겨준 Pe는 시간이 얼마 가지 않아 센터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한 사람이 되었어요. 지금도 Pe가 정말 많이 보고 싶고요.
요리와 바느질, 정원 정리까지. 못하는 게 없었던 만능 엔터테이너 G는 제게 좋은 선생님이 되어주었어요.
G 덕분에 생전 안 해본 바느질도 잘 하게 되었고, 그리스 식 음식도 만들 수 있게 되었어요. 또한 G는 제가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많은 도움과 가르침을 준 사람이에요.
Gr은 누구보다도 다정다감하고 듬직한 사람이었고, 센터의 크고 작은 일을 모두 돌보는 사람이었어요. 많은 대화를 나눠보진 못했지만, Gr과 늘 시선으로, 미소로 소통했던 기억이 나요.
‘정원 요정’이 별명이었던 S는 수국과 해바라기로 가득한 센터의 정원을 돌보는 사람이었어요. 언제나 부드러운 미소를 지녔던 S는, D와 C가 센터를 떠나던 날 많이 울던 저를 위해 기분이 안정되는 꽃 오일을 챙겨주며 다독여준 고마운 사람이기도 해요.
이 밖에도 매주 마을공동체를 찾아왔다 떠나간 워크샵 참여자들, 그리고 짧게 나마 만났던 마을 사람들과 다른 센터 사람들도 갭이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소중한 인연이에요. 다들 많이 보고 싶고요.
# 전보다 제 주변에 있는 모든 인연들에 최선을 다하게 된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센터에서 경험한 모든 만남은 작별을 전제로 하고 있었어요. 9월까지만 센터가 운영되고, 많은 사람들이 짧은 워크샵이나 휴가차 방문하기 때문에 함께할 시간이 딱 정해져 있더라고요. 그렇다 보니 그 만남들이 제게 굉장히 소중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에게 저절로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게 되었고, 더 자주 함께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리스 센터뿐만이 아니라 한국에 계신 부모님, 친구들, 소소하게 만나는 사람들까지, 제 주변에 있는 모든 만남에 어쩌면 작별이 전제되어 있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후, 전에는 때로 지겨움을 느꼈던 모든 순간들에 최선을 다하게 된 것 같아요. 전보다 제 주변에 있는 모든 인연들에 최선을 다하게 된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 예비 참가자들에게
그냥 재미있게 즐기시면 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저는 2주차쯤에 체력이 방전돼서 해변에도 잘 못 내려 갔고, 놀러도 자주 못 갔었어요. 그래서 초반에 체력을 아끼시고, 제공되는 모든 행사와 산책에 참여한다면 센터에서의 갭이어가 더욱 즐거울 것 같아요.
# 나만의 갭이어 TIP
- 언어
외국에서 거주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언어 사용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분이 가더라도 센터에 계신 분들이 모두 찰떡같이 말을 알아듣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시기 때문에 언어가 큰 문제로 작용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언어가 서툴러도 먼저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끊임없이 영어로 말을 하려는 노력이 영어 실력보다 더 중요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국인들이 센터에 많은 편이라 영국식 영어 표현을 조금 알아간다면 의사소통이 더욱 원활할 것 같습니다.
- 숙소
센터 내부에 여러 방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룸메이트와 함께 생활하고, 저 같은 경우에는 4인실 여자 도미토리에서 3주를 지냈습니다. (4인실이지만 방에는 늘 3명까지만 숙박했습니다.) 사실 처음 배정받은 방에 들어갔을 때는 많이 당혹스러웠습니다.
화장실에 개미가 기어 다녔고, 거미가 구석구석에 있었습니다. 벌레를 정말 싫어하기 때문에 ‘아 나 여기서 잘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하지만 센터 측에서 주기적으로 개미약을 치는 등의 관리를 해주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잘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따뜻한 물도 콸콸 잘 나오고, 산 속에 있어서 한여름에도 굉장히 시원하다는 장점들이 있기 때문에 센터 숙소가 호텔 같을 것이란 기대만 버린다면 문제 없이 숙소에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서양의 집들과 달리 신발을 벗고 실내에 들어가는 것이 센터의 규칙이기 때문에 실내 바닥도 깨끗했고 굉장히 편안했습니다.
그리고 워크샵 게스트들의 숫자에 따라 방을 바꿔야 하는 경우도 드물게 생기곤 합니다. 또 반지하에 위치한 방들도 있는데, 이 방들의 경우 굉장히 습합니다. 이 방에서 지내게 될 경우 창고에 있는 난방기를 가져와 방에 간간히 틀어놓으면 방이 습해지는 것을 조금이나마 방지할 수 있습니다.
- 식사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담당하는 식사 당번이 있었습니다. 보통 일주일에 두 번 ~ 세 번 정도 식사를 준비하는 당번으로 참여했던 것 같습니다. 전부 채식주의 식단이고, Taverna Night인 매주 화요일 저녁엔 마을 식당에 가 고기 요리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채식이라고 매번 샐러드 같은 것만 먹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국가의 요리들을 접할 수 있었고, 가끔은 그리스식 요리도 맛 볼 수 있었습니다. 쿠스쿠스, 파이, 파스타, 타이 커리와 누들 등 다양하고 맛있는 요리들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리고 사람들과 웃으며 식사를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센터의 식사 시간이 늘 즐거웠습니다.
- 준비물
센터에는 기본적인 생활 용품들이 거의 다 구비되어 있습니다.(세면용품 제외. 세면용품은 한국에서 챙겨가고 샴푸, 린스와 같은 무게 나가는 것만 현지 마트에서 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수건과 비치타올도 제공이 되기 때문에 비상용 수건 한 장 정도를 제외하곤 타올류를 준비해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빨래를 가장 걱정했었는데, 센터에 세탁기와 친환경 세제 등 빨래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구비되어 있어서 한국에서 가져간 종이 세제 등은 짐만 되었습니다(센터에는 세탁 담당 자원활동가가 있고, 개인 빨래는 한 번 할 때마다 2유로를 받습니다. 인턴, 자원활동가는 빨래가 무료였습니다.)
옷걸이도 여러 개가 센터에 비치되어 있어서 챙길 필요가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꼭 챙기면 좋을 것은 피부 보호용 물품들과 벌레 퇴치제! 햇볕이 정말 강하고, 해변에 매일 나가기 때문에 선크림과 모자 등은 필수인 것 같습니다. 또 센터에 모기 등을 비롯한 벌레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모기 스프레이나 패치 등을 여러 장 준비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채식, 서양식을 하다 보면 얼큰한 것이 생각날 때가 꼭 있을 것이기 때문에 가방에 여유가 있다면 인스턴트 음식도 한 두 가지 정도 챙겨가면 유용할 듯합니다. 또 덧붙이자면 생각보다 책을 읽을 시간이 많기 때문에 넉넉하게 읽고 싶은 책을 준비해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 나만의 그리스 여행 TIP
매주 한 번씩 Day-off를 가질 수 있었는데요, 그때마다 걸어서 해변으로 내려가곤 했어요.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이 정말 예쁘고, 그늘이 져있어서 덥지 않아 걷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또 센터 근처에 있는 폭포에도 자주 갔었어요.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작은 폭포도 예쁘지만, 더 올라가면 정말 웅장하고 커다란 폭포가 하나 더 있어요. 올라가는 길이 굉장히 험하고 조금은 위험했지만, 위에서 본 웅장한 폭포의 모습과 시원한 계곡물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센터를 떠난 후엔 혼자 그리스 여행을 다녔는데요, 정말 그리스는 가볼 곳이 많은 나라인 것 같아요. 예쁜 섬들은 물론이고, 박물관, 유적지, 정말 밥도 굶어가며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여행에 몰두했었어요. 저는 미코노스, 낙소스, 크레타, 메테오라, 아테네를 여행했었어요. 그 중 메테오라는 제가 가장 사랑하게 된 장소여서, 그리스에 갈 분들에게 꼭 방문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답니다.
나의 갭이어는
경험 ★★★★★
사람들과 허물 없이 가까워지며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있단 걸 느낀 귀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배움 ★★★★★
다양한 국가의 문화는 물론, 공동체에 대한 지식도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환경 ★★★★★
산 속에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고, 근처에 예쁜 해변도 많았습니다.
안전 ★★★★★
많은 것이 오픈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여가 ★★★★☆
단체 생활을 하기 때문에 여가 시간이 많진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