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이어는 나 아닌 '남'에게서 '나'를 배우는 시간의 비중이 큽니다. 특히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남에게 보일 내 모습을 의식하려는 버릇은 집에 두고 오시고, 나에게 보이는 남의 모습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 부산 갭이어 스테이/임지영 갭이어족 갭퍼/4주간의 갭이어 |
현재 대한민국은,
한 해 중고등학생 학업 중단 6만 명, 꿈이 없어 그냥 노는 20대 34만 6천명, 취업 후 1년 내 이직율 40%대 돌입, 대학생의 75%는 대학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직장인의 80% 이상이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라고 말하지만 현실적인 방법과 도움이 없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한민국에도 '갭이어'를 들여오고자 합니다.
*갭이어란?
갭이어는 학업을 중단하거나 병행하면서 여행, 봉사, 인턴, 교육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꿈과 적성을 찾는 기간을 말합니다.
*갭이어 스테이란?
소정의 돈을 내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다양한 사람과 만나며 스텝 활동을 해볼 수 있는 프로젝트 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참가자들은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하며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 입으로 시작한 건 시작한 게 아니다.
1주차
게스트하우스 매니저님의 배려로, 갭이어 당일 아침에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객실 청소 업무를 했는데, 부산 내려오기 직전 3일 내내 콘서트를 간 데다 2시간 겨우 자고 새벽 기차로 내려온지라 (게다가 함께 탄 탑승객들이 심하게 코를 골아서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체력이 완전히 바닥인 상태였습니다.
직장생활 5년간 컴퓨터만 붙들고 있다가 오랜만에 이불 털려니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습니다. 가끔 내 방 청소 정도만 했지 한꺼번에 많은 방을 치워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하지만 사장님께서 첫날부터 양곱창, 감자튀김, 팥빙수 등으로 체력 보충에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틀째부터는 해 지고 난 후 바닷가로 나가서 맨발산책을 했고, 사흘째부터는 식사 준비 때문에 주방에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냉동실에 있는 생닭을 직접 발골해 본 것도 처음이고 닭갈비 양념을 만들어 본 것도 처음이었고, 스파게티면을 그렇게 많이 삶아 본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이모님께서 식사를 준비하셨다는데, 제가 몇 번 부엌을 기웃거리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저도 모르는 사이 제가 식사 담당이 되어 있었습니다.
교훈 : 운동은 평소에 하자.
2주차
야간 카운터를 담당하는 동주가 집에서 바이올린과 기타를 가져왔습니다! 오랜만에 악기를 잡으니 반갑더라고요. 게스트하우스의 꽃은 파티라는데 이곳은 가족 단위 투숙객이 많아 그런지 (각 방마다 화장실이 딸려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종종 파티가 열리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원체 파티 같은 것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한 번은 가야 하지 않나 싶어 어느 날 충동적으로(?) 참석했는데 결국 새벽 5시까지 깨어 있었습니다. 바닷가에 악기 들고 나가서 동주는 기타를, 저는 바이올린을 들고 손님들과 노래 부르면서 놀았습니다.
원래 꾸준히 버스킹을 하는 것이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고, 그 시작을 여기 부산에 와서 할 수 있게 된 게 진심으로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서울에 계속 있었더라면 하고 싶다는 말만 하고 이러쿵저러쿵 핑계거리 만들어 내면서 절대 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교훈 : 입으로 시작한 건 시작한 게 아니다.
3주차
매니저님의 차를 타고 야경 투어를 갔습니다. 부산은 다리도 많고 다리에 조명 설치도 예쁘게 해 놓았더라고요. 야경을 보면서 한참 감탄하고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입에 물고 신나게 돌아오는 길에 대마도 여행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일로 다녀오기 좋은 곳이라고요. 하루 고민하다가 집에 연락해서 등기로 여권을 받고, 바로 승선권까지 구매해서, 쉬는 날 새벽같이 대마도에 갔습니다.
자전거를 빌리는 대신 항구에서 미우다해수욕장까지 40분을 걸어갔어요. 바다에서 논 후 버스를 타고 마트로 갔고, 거기서 남들 다 한다는 쇼핑을 열심히 하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부탁하신 약을 사고 나니 벌써 예산 초과…
일본 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였는데 갈 때마다 느끼지만 일본 사람들은 참 친절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정치 역사적 측면만 떼어 놓고 본다면 즐겁게 여행하기 좋은 나라입니다. 특히 대마도는 나중에 차량을 렌트해서 다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차가 많이 없고 속도도 느려서 저 같은 초보운전자도 조심조심 운전하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여행 때문에 가요제 예선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예선 탈락이었겠지만 아쉽습니다.
교훈 :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여행 많이 다니자.
4주차
원래는 용문사 방문 이외 다른 일정이 없었습니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이 열린다는 걸 알고 곧바로 '이경규 쇼'를 예매했습니다. 처음에는 매진이었지만 며칠 지나 들어가 보니 세 자리가 비어 있기에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를 골랐습니다.
이때는 청소뿐만 아니라 카운터 업무도 함께 보고 있었기 때문에 일 끝나자마자 롯데백화점 센텀시티로 내달렸는데, 하필 이날 낮에 찾아왔던 손님이 저 없는 사이 찾아와서 진상을 부리는 바람에 야간 카운터를 보고 있던 동주와 매니저님, 사장님까지 나서서 그 손님들을 다 쫓아 보냈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쇼를 온전히 즐기진 못했습니다. 재미있긴 진짜 재미있었던 것 같은데… 그 손님 때문에 동주와 연락하느라 빤히 아는 퀴즈를 못 맞춰서 눈 앞에서 골프백을 놓친 건 정말 아쉬워요.
교훈 : 자기 일행이 정확히 몇 명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겐 방을 잡아 주지 말자.
5주차
인생샷 이벤트를 신청해서 월요일 밤 10시부터 계속 사진을 찍었습니다. 원래는 한 30분만 찍고 끝낼 예정이었지만, 저처럼 의욕 넘치는 모델을 본 적 없던 사진작가는 이 참에 예술혼을 불태우겠다며 이틀 연속 저녁 & 밤 촬영을 제안했습니다. 덕분에 이틀간 송도 스카이워크와 해변가에서 앉고 눕고 구르고 걷고 뛰고 정말 맨 정신에는 못 찍을 사진을 많이 찍었네요.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행위예술가냐는 질문도 받고, 술 마신 것 아니라는 해명도 계속 해야 했지만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마지막 주라는 생각에 시내도 부지런히 돌아다녔습니다. 용두산 공원과 영도대교 도개 역시 마지막 주에야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예전에 정말 좋아했던 책 중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큰 이모가 같은 병실에서 암 투병 중이던 환우에게 그 책을 줘 버린 후에는 전혀 보지 못했었습니다.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그 책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얼른 샀습니다. 책방골목은 생각 이상으로 작았지만 예전 청계천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조만간 부산을 내려가면 다시 들러 볼 예정입니다.
교훈 : 즐거움은 언제나 멀리 있지 않다.
# 나만의 추천 여행지
딱히 어딜 다닌 게 아니라 크게 생각나는 곳은 없습니다. 남포동 거리와 용두산 공원, 보수동 책방골목이 기억에 남아요. 야시장은 생각보다 먹을 게 없어서 기대에는 못 미쳤습니다. 대마도는 당일치기로라도 무조건 가세요. 미우다해수욕장이 정말 예쁩니다.
# 나만의 TIP
언어
부산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로 갭이어 스테이를 올 생각이라면, 간단한 러시아어를 익혀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체감상으로는 러시아 관광객이 일본이나 중국에서 온 관광객보다 더 많았습니다.
숙소
해당 시설에 온 갭퍼가 자기 혼자가 아닌 이상 독방을 쓰기는 힘들 것 같아요. 함께 살면서 상대를 배려했다는 걸 일부러 티내거나, 조금 먼저 왔다고 텃세 아닌 텃세를 부리거나 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내가 약간 더 불편하게 지내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함께 살면 서로 계속 즐거울 일만 생깁니다.
식사
식재료 제공이 가능한 곳이라면 시간 내서 이런 저런 요리를 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저는 거의 매일같이 식사 준비를 했는데 함께 고생한 친구들과 사장님께서 음식을 맛있게 모습을 보면 그렇게 뿌듯하고 기분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어차피 집에 가서 하면 먹는 것 갖고 장난친다고 엄마한테 혼만 날 테니까 게스트하우스 와 있을 때 (매일 하지 않더라도) 가끔 특식 요리에 도전해보라고 조언해 주고 싶네요.
짐
화장품은 가서 화장할 일이 뭐 있겠어 하고 정말 딱 필요한 것만 챙겼는데 정말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짐은 나 지금 피난 간다 생각하고 없으면 죽을 것 같은 물품만 챙겨서 가세요. 대부분 돌아올 때 캐리어가 더 무거워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꽉꽉 채워서 담아가면 안 됩니다.
꿀팁
갭이어는 나 아닌 '남'에게서 '나'를 배우는 시간의 비중이 큽니다. 특히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남에게 보일 내 모습을 의식하려는 버릇은 집에 두고 오시고, 나에게 보이는 남의 모습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 근래 들어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고, 내게 다시 이런 때가 올 수 있을까 싶은 순간들도 많이 마주했습니다.
많은 것을 계획하지 않고 떠났던 것이 오히려 저에게는 득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곳에 있는 내내 한국어 교원 강좌 수강으로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상황이라 따로 계획했던 일들은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친절하신 사장님과 매니저님, 룸메이트 재영이 덕분에 함께 이곳 저곳 시내며 관광지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갭이어를 통해서 저는 여유로워졌습니다. 퇴사 직후에는 '뭐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 이면에 이러다 장기 백수 되는 게 아닐까 걱정만 했었는데, 지금은 그러한 나 자신에 대해 좀더 관대해졌습니다. 고생했으니 쉬어야 하고, 힘들게 일했으니 쉽게 일하는 때도 있어야죠.
게스트하우스 여러 곳의 운영을 맡아 일하면서 학교까지 다니고 있던 매니저님. 본인이 원하는 길을 빨리 찾았다는 게 정말 부러웠고, 친근한 성격과 솔직함이 참 고마웠습니다. 함께 살았던 재영이는 청소에 익숙지 않은 언니 수발(?)하면서 여러 모로 도움을 줬는데, 동생 같지 않은 모습을 종종 보여서 한달 내내 의지가 많이 됐어요.
함께 새벽 해변에서 버스킹을 하고 인생샷 이벤트도 열어 줬던 동주, 예쁘고 싹싹하고 귀엽고 공통관심사도 있어서 이야기할 때마다 기분 좋았던 민수, 새로 뽑힌 야간 카운터 담당 경우, 어리바리하게 해 놓은 청소 상태 다시 확인하느라 고생하시면서도 여러 모로 가족처럼 챙겨 주신 이모님, 세상에 그런 호인이 있을까 싶은 사장님! 사장님 정말 멋있는 분입니다. 최고예요.
저는 부산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해변을 걷고, 바다를 바라보고, 바다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5년간 내가 얼마나 비정상적인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서 일해 왔는지도 느낄 수 있었고요. 게스트하우스에 가 보니 거기 있는 사람들은 지극히 정상을 넘어 정말 좋은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어디에 있더라도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그 사람들을 대하는 내 마음가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았습니다.
근래 들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고, 내게 다시 이런 때가 올 수 있을까 싶은 순간들도 많이 마주했습니다. 10월에 다시 부산으로 내려갑니다. 송도의 겨울은 어떤 모습일까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갭이어는 나 아닌 '남'에게서 '나'를 배우는 시간의 비중이 큽니다. 특히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남에게 보일 내 모습을 의식하려는 버릇은 집에 두고 오시고, 나에게 보이는 남의 모습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 부산 갭이어 스테이/임지영 갭이어족 갭퍼/4주간의 갭이어 |
현재 대한민국은,
한 해 중고등학생 학업 중단 6만 명, 꿈이 없어 그냥 노는 20대 34만 6천명, 취업 후 1년 내 이직율 40%대 돌입, 대학생의 75%는 대학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직장인의 80% 이상이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라고 말하지만 현실적인 방법과 도움이 없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한민국에도 '갭이어'를 들여오고자 합니다.
*갭이어란?
갭이어는 학업을 중단하거나 병행하면서 여행, 봉사, 인턴, 교육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꿈과 적성을 찾는 기간을 말합니다.
*갭이어 스테이란?
소정의 돈을 내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다양한 사람과 만나며 스텝 활동을 해볼 수 있는 프로젝트 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참가자들은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하며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 입으로 시작한 건 시작한 게 아니다.
1주차
게스트하우스 매니저님의 배려로, 갭이어 당일 아침에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객실 청소 업무를 했는데, 부산 내려오기 직전 3일 내내 콘서트를 간 데다 2시간 겨우 자고 새벽 기차로 내려온지라 (게다가 함께 탄 탑승객들이 심하게 코를 골아서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체력이 완전히 바닥인 상태였습니다.
직장생활 5년간 컴퓨터만 붙들고 있다가 오랜만에 이불 털려니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습니다. 가끔 내 방 청소 정도만 했지 한꺼번에 많은 방을 치워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하지만 사장님께서 첫날부터 양곱창, 감자튀김, 팥빙수 등으로 체력 보충에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틀째부터는 해 지고 난 후 바닷가로 나가서 맨발산책을 했고, 사흘째부터는 식사 준비 때문에 주방에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냉동실에 있는 생닭을 직접 발골해 본 것도 처음이고 닭갈비 양념을 만들어 본 것도 처음이었고, 스파게티면을 그렇게 많이 삶아 본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이모님께서 식사를 준비하셨다는데, 제가 몇 번 부엌을 기웃거리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저도 모르는 사이 제가 식사 담당이 되어 있었습니다.
교훈 : 운동은 평소에 하자.
2주차
야간 카운터를 담당하는 동주가 집에서 바이올린과 기타를 가져왔습니다! 오랜만에 악기를 잡으니 반갑더라고요. 게스트하우스의 꽃은 파티라는데 이곳은 가족 단위 투숙객이 많아 그런지 (각 방마다 화장실이 딸려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종종 파티가 열리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원체 파티 같은 것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한 번은 가야 하지 않나 싶어 어느 날 충동적으로(?) 참석했는데 결국 새벽 5시까지 깨어 있었습니다. 바닷가에 악기 들고 나가서 동주는 기타를, 저는 바이올린을 들고 손님들과 노래 부르면서 놀았습니다.
원래 꾸준히 버스킹을 하는 것이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고, 그 시작을 여기 부산에 와서 할 수 있게 된 게 진심으로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서울에 계속 있었더라면 하고 싶다는 말만 하고 이러쿵저러쿵 핑계거리 만들어 내면서 절대 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교훈 : 입으로 시작한 건 시작한 게 아니다.
3주차
매니저님의 차를 타고 야경 투어를 갔습니다. 부산은 다리도 많고 다리에 조명 설치도 예쁘게 해 놓았더라고요. 야경을 보면서 한참 감탄하고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입에 물고 신나게 돌아오는 길에 대마도 여행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일로 다녀오기 좋은 곳이라고요. 하루 고민하다가 집에 연락해서 등기로 여권을 받고, 바로 승선권까지 구매해서, 쉬는 날 새벽같이 대마도에 갔습니다.
자전거를 빌리는 대신 항구에서 미우다해수욕장까지 40분을 걸어갔어요. 바다에서 논 후 버스를 타고 마트로 갔고, 거기서 남들 다 한다는 쇼핑을 열심히 하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부탁하신 약을 사고 나니 벌써 예산 초과…
일본 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였는데 갈 때마다 느끼지만 일본 사람들은 참 친절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정치 역사적 측면만 떼어 놓고 본다면 즐겁게 여행하기 좋은 나라입니다. 특히 대마도는 나중에 차량을 렌트해서 다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차가 많이 없고 속도도 느려서 저 같은 초보운전자도 조심조심 운전하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여행 때문에 가요제 예선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예선 탈락이었겠지만 아쉽습니다.
교훈 :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여행 많이 다니자.
4주차
원래는 용문사 방문 이외 다른 일정이 없었습니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이 열린다는 걸 알고 곧바로 '이경규 쇼'를 예매했습니다. 처음에는 매진이었지만 며칠 지나 들어가 보니 세 자리가 비어 있기에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를 골랐습니다.
이때는 청소뿐만 아니라 카운터 업무도 함께 보고 있었기 때문에 일 끝나자마자 롯데백화점 센텀시티로 내달렸는데, 하필 이날 낮에 찾아왔던 손님이 저 없는 사이 찾아와서 진상을 부리는 바람에 야간 카운터를 보고 있던 동주와 매니저님, 사장님까지 나서서 그 손님들을 다 쫓아 보냈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쇼를 온전히 즐기진 못했습니다. 재미있긴 진짜 재미있었던 것 같은데… 그 손님 때문에 동주와 연락하느라 빤히 아는 퀴즈를 못 맞춰서 눈 앞에서 골프백을 놓친 건 정말 아쉬워요.
교훈 : 자기 일행이 정확히 몇 명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겐 방을 잡아 주지 말자.
5주차
인생샷 이벤트를 신청해서 월요일 밤 10시부터 계속 사진을 찍었습니다. 원래는 한 30분만 찍고 끝낼 예정이었지만, 저처럼 의욕 넘치는 모델을 본 적 없던 사진작가는 이 참에 예술혼을 불태우겠다며 이틀 연속 저녁 & 밤 촬영을 제안했습니다. 덕분에 이틀간 송도 스카이워크와 해변가에서 앉고 눕고 구르고 걷고 뛰고 정말 맨 정신에는 못 찍을 사진을 많이 찍었네요.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행위예술가냐는 질문도 받고, 술 마신 것 아니라는 해명도 계속 해야 했지만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마지막 주라는 생각에 시내도 부지런히 돌아다녔습니다. 용두산 공원과 영도대교 도개 역시 마지막 주에야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예전에 정말 좋아했던 책 중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큰 이모가 같은 병실에서 암 투병 중이던 환우에게 그 책을 줘 버린 후에는 전혀 보지 못했었습니다.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그 책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얼른 샀습니다. 책방골목은 생각 이상으로 작았지만 예전 청계천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조만간 부산을 내려가면 다시 들러 볼 예정입니다.
교훈 : 즐거움은 언제나 멀리 있지 않다.
# 나만의 추천 여행지
딱히 어딜 다닌 게 아니라 크게 생각나는 곳은 없습니다. 남포동 거리와 용두산 공원, 보수동 책방골목이 기억에 남아요. 야시장은 생각보다 먹을 게 없어서 기대에는 못 미쳤습니다. 대마도는 당일치기로라도 무조건 가세요. 미우다해수욕장이 정말 예쁩니다.
# 나만의 TIP
언어
부산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로 갭이어 스테이를 올 생각이라면, 간단한 러시아어를 익혀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체감상으로는 러시아 관광객이 일본이나 중국에서 온 관광객보다 더 많았습니다.
숙소
해당 시설에 온 갭퍼가 자기 혼자가 아닌 이상 독방을 쓰기는 힘들 것 같아요. 함께 살면서 상대를 배려했다는 걸 일부러 티내거나, 조금 먼저 왔다고 텃세 아닌 텃세를 부리거나 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내가 약간 더 불편하게 지내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함께 살면 서로 계속 즐거울 일만 생깁니다.
식사
식재료 제공이 가능한 곳이라면 시간 내서 이런 저런 요리를 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저는 거의 매일같이 식사 준비를 했는데 함께 고생한 친구들과 사장님께서 음식을 맛있게 모습을 보면 그렇게 뿌듯하고 기분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어차피 집에 가서 하면 먹는 것 갖고 장난친다고 엄마한테 혼만 날 테니까 게스트하우스 와 있을 때 (매일 하지 않더라도) 가끔 특식 요리에 도전해보라고 조언해 주고 싶네요.
짐
화장품은 가서 화장할 일이 뭐 있겠어 하고 정말 딱 필요한 것만 챙겼는데 정말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짐은 나 지금 피난 간다 생각하고 없으면 죽을 것 같은 물품만 챙겨서 가세요. 대부분 돌아올 때 캐리어가 더 무거워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꽉꽉 채워서 담아가면 안 됩니다.
꿀팁
갭이어는 나 아닌 '남'에게서 '나'를 배우는 시간의 비중이 큽니다. 특히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남에게 보일 내 모습을 의식하려는 버릇은 집에 두고 오시고, 나에게 보이는 남의 모습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 근래 들어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고, 내게 다시 이런 때가 올 수 있을까 싶은 순간들도 많이 마주했습니다.
많은 것을 계획하지 않고 떠났던 것이 오히려 저에게는 득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곳에 있는 내내 한국어 교원 강좌 수강으로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상황이라 따로 계획했던 일들은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친절하신 사장님과 매니저님, 룸메이트 재영이 덕분에 함께 이곳 저곳 시내며 관광지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갭이어를 통해서 저는 여유로워졌습니다. 퇴사 직후에는 '뭐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 이면에 이러다 장기 백수 되는 게 아닐까 걱정만 했었는데, 지금은 그러한 나 자신에 대해 좀더 관대해졌습니다. 고생했으니 쉬어야 하고, 힘들게 일했으니 쉽게 일하는 때도 있어야죠.
게스트하우스 여러 곳의 운영을 맡아 일하면서 학교까지 다니고 있던 매니저님. 본인이 원하는 길을 빨리 찾았다는 게 정말 부러웠고, 친근한 성격과 솔직함이 참 고마웠습니다. 함께 살았던 재영이는 청소에 익숙지 않은 언니 수발(?)하면서 여러 모로 도움을 줬는데, 동생 같지 않은 모습을 종종 보여서 한달 내내 의지가 많이 됐어요.
함께 새벽 해변에서 버스킹을 하고 인생샷 이벤트도 열어 줬던 동주, 예쁘고 싹싹하고 귀엽고 공통관심사도 있어서 이야기할 때마다 기분 좋았던 민수, 새로 뽑힌 야간 카운터 담당 경우, 어리바리하게 해 놓은 청소 상태 다시 확인하느라 고생하시면서도 여러 모로 가족처럼 챙겨 주신 이모님, 세상에 그런 호인이 있을까 싶은 사장님! 사장님 정말 멋있는 분입니다. 최고예요.
저는 부산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해변을 걷고, 바다를 바라보고, 바다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5년간 내가 얼마나 비정상적인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서 일해 왔는지도 느낄 수 있었고요. 게스트하우스에 가 보니 거기 있는 사람들은 지극히 정상을 넘어 정말 좋은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어디에 있더라도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그 사람들을 대하는 내 마음가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았습니다.
근래 들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고, 내게 다시 이런 때가 올 수 있을까 싶은 순간들도 많이 마주했습니다. 10월에 다시 부산으로 내려갑니다. 송도의 겨울은 어떤 모습일까 벌써부터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