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이나 파리에 와서 프로젝트를 진행 하면서 성격을 바꿔야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었는데 생각보다 내가 이제껏 가지고 살아온 성격을 한 번에 바꾸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게스트분들이나 스텝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는데 노력을 많이 할 수 있었다.
-프랑스 파리, 갭이어스테이/최종훈 갭이어족 갭퍼/8주간의 갭이어 |
현재 대한민국은,
한 해 중고등학생 학업 중단 6만 명, 꿈이 없어 그냥 노는 20대 34만 6천명, 취업 후 1년 내 이직율 40%대 돌입, 대학생의 75%는 대학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직장인의 80% 이상이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라고 말하지만 현실적인 방법과 도움이 없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한민국에도 '갭이어'를 들여오고자 합니다.
'갭이어(Gapyear)'란 학업과 일을 병행하거나 잠시 멈추고 봉사, 여행, 인턴, 교육, 창업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시간으로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권장 되고 있는 문화입니다.
#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파리 땅을 밟다!
갭이어에서 컨설팅을 받으면서 <프랑스 파리, 갭이어스테이> 프로젝트 참여를 권유받았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별로 없었던 나는 사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거 자체가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갭이어 스테이의 경우 별도의 참가비는 없었지만 왕복항공료나 최소한의 현지생활비조차도 준비되어있지 않았고, 마음도 확실히 정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래도 언젠가 파리에 한 번은 가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에 이번에 한 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조금 급하게 프로젝트 참여를 결정했고 그렇게 약 한달간 택배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한 결과 파리에 갈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처음으로 유럽땅을 그리고 그 중에서도 죽기전에 가보고싶었던 파리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생각에 13시간 정도의 장시간 비행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내식을 먹으며 버텼다. 참으로 신기한 게 프랑스가 한국보다 8시간 썸머타임일 때는 7시간이나 느리다 보니 12시간 비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날에 도착했다는 점이 너무너무 신기했다. 그렇게 두근구근 거리는 숙소로 향했고 살갑게 맞이해주는 게스트하우스 식구들과 함께 파리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실 처음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지하철만 타고 바로 숙소로 오느라고 실감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차차 밖에서 돌아다니며 내가 파리에 왔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처음 밖에 나가서 돌아다닐 때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흥미로운 것들 뿐이었다. 수동으로 열리는 지하철문, 지하철에서 악기 연주를 하는 사람들, 한국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무단횡단을 너무나 쉽게하는 파리의 사람들, 오픈된 장소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표현을 아끼지 않는 모습, 그리고 옛 건물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모습까지. 나에게는 파리의 그 모든 것들이 정말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 파리에 왔을 때는 사실 엄청난 목표라거나 딱히 이루고자 한 것은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고 싶은게 생겼다. 일단 오래 머물다 보니 파리 아니 더 나아가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고 그래서 불어를 조금씩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할 수 있는 말도 하나도 없었고 뭐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하나하나 읽는 방법을 조금씩 터특했고 간단한 단어들은 알 수 있게 되어 메뉴판을 보고 음식에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정도는 금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파리에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곳의 먹거리도 많이 궁금해졌고, 특히 파리에서는 동네방네 빵집이 많아서 빵에 지대한 관심히 생겼다. 한국에서는 잘 먹지도 않던 빵을 파리에 있을 때는 빵돌이 수준으로 하루에 한 개 이상은 꼬박꼬박 먹었던 것 같다.
# 바꾸고 싶었던 내 성격,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변화되다
이렇게 놀러다니는 숙소밖에서의 생활이 있다면 게스트하우스 내에서의 스태프로서의 생활도 있었는데, 나는 특별히 완전 휴무가 아닌 날에는 저녁활동을 하게 되었다. 저녁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오후에 숙소에 들어오신 손님들과 함께 즐거운 와인파티를 벌이면서 게스트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화목만 분위기를 만들어야만 했다.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능력이 조금 부족했던 나에게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차차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서 웃고 얘기하고 떠드는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게스트 분들과 함께 이런저런 다양한 소재의 얘기를 많이 했는데 주로 당일 손님의 여행이 어땠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보고 가능하다면 피드백을 하면서 얘기를 이어나갔다. 한 곳에서 장기간 머물다보니 내공이 생겨서 손님들에게 알려주는 재미도 쏠쏠했다. 때로는 그렇게 하다가 게스트 분들과 친해져서 다음 날 같이 여행지를 동행하기도 하면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빠르게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안쓰던 편지도 매번 게스트가 집을 떠날 때마다 썼다. 처음엔 편지쓰는게 굉장히 어려웠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게스트가 집을 떠나갈 때 편지를 못 써주면 나 스스로가 서운해졌다. 함께 했던 추억을 되돌아보며 글을 쓰고 그 편지를 건네주고, 체크아웃하고 손님이 떠나가면 어찌나 허전하던지.
사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이나 파리에 와서 프로젝트를 진행 하면서 성격을 바꿔야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었는데 생각보다 내가 이제껏 가지고 살아온 성격을 한 번에 바꾸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게스트분들이나 스텝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는데 노력을 많이 할 수 있었다.
# 여행객이 아닌 현지인의 삶으로 파리를 즐기다
파리에 좀 오래 머물다 보니 엄청난 환상을 품고 왔던 파리도 결국은 사람사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와인과 치즈를 먹고, 빵도 자주 먹고, 케밥, 크레페, 다양한 디저트 등을 먹으면서 정말 좋구나 하고 있었지만 결국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나에게도 이러한 삶이 일상이 되었다. 음, 그러니까 파리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삶을 내가 파리에 오랜 기간 머물면서 나도 현지인처럼 이러한 삶을 즐길 수 있게 되어 감사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가장 좋았던 게 뭐냐고 물어본다면 그냥 어느 골목길을 가도 보이는 오래된 건물의 풍경과 그 느낌이 다 좋았지만, 구태여 꼽으라고 한다면 에펠탑을 보고 있을 때가 가장 좋았다. 맑은 날이나 흐린날뿐만 아니라 매일 보고 또 보고 싶었던 그런 존재라고나 할까요. 아마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에펠탑의 사진을 보고 에펠탑에 대한 환상으로 예술의 도시 파리에 오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생활은 생각만큼 자유롭지 않을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주중 하루를 제외하고는 매일 일하는 시간이 조금씩 있고 또 때로는 근무시간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원하는 시간에 못 나갈 수도 있거든요. 나의 경우에는 오후에 근무를 했었는데 파리의 나이트라이프가 궁금했던 나에게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긴 했다.
#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쓰지 않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던 시간
내가 머물던 시기는 테러이후라는 상황과 비수기라는 상황이 겹쳐서 손님이 좀 적었기에 게스트하우스를 홍보하기 위한 글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게스트하우스의 시설을 관리하면서 처음으로 마루바닥을 시공하기도하는 경험을 해보기도 했다. 그래도 사장님께서 편의를 많이 봐주셔서 지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함께 했던 스태프들도 저의 부족한면을 많이 채워주셔서 한국에 있을 때면 항상 거의 혼자였을 저에게 같이지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게다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이모님이 아침저녁으로 해주시는 한식은 어머니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집에서 먹는 밥보다 맛있어서 한국이 그립지 않을 정도였다. 덕분에 너무 잘 먹어서 매주 1kg정도 증량된 거 같네요. 때로는 사장님이 카스테라도 직접 만들어서 주시고 현지 주류를 체험하라고 모나코도 만들어주셔서 즐겁게 와인파티도 할 정도로 파리에서의 시간은 다 좋았던 것 같다.
정말 좋은것은 한국 밖에 있다는 그 환경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모든 것이 힘들었다. 부모님도 그렇고 친했던 사람들도 내가 학교에 잘 나가지 않거나 학교를 그만 다닐 것이라는 소리를 하면 다들 고운시선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는데, 파리에 와서 보니 한국에서처럼 타인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는 그 시간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누구보다 행복한 한 때를 보낼 수 있었다.
꿈은 학교에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무턱대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내가 무언가 된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거 같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꿈이 있거나 하고 싶거나 무언가 되고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요즈음은 타인이 시키고 말하는 대로 살았던 인생보다는 행복하다. 길고 짧았던 여행, 그리고 파리 갭이어 스테이를 통해서 삶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서 만났던 현지인들이나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왔냐고 물어보면 하던 것을 중단하거나 관두고 왔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중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할거야? 라고 물어보면 가서 다시 일구하면 된다고 그들은 너무나도 쉽게 얘기를 하는 것을 보고 깜짝놀랐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주변의 시선을 많이 의식해서 쉽게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거 같은데, 이제는 다시 한국에 돌아간다면 주변사람 시선을 덜 신경쓰고 자유롭게 내가 하고싶은대로 살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아끼지 않고 표현할 자신감도 많이 생겼다. 만날 다른사람하는 대로 살고 주변의 흐름대로 따라가기만 했다면 나는 지금쯤 굉장히 불행한 사람 중 한명이 되었을거같다.
# 파리에서의 잊지 못할 소중한 많은 기억들
게스트하우스가 있던 갈리에니 집근처 케밥집, 자주가던 마트, 오샹, 길가다가 먹었던 크레페, 심심하면 들려서 빵을 먹던 폴, 갈때마다 기분좋아지는 에펠탑, 수동으로 열리는 지하철문, 한국에서 먹던 밥보다 맛있어서 살을 찌우는 주범이된 이모님 밥, 아늑한 게스트하우스, 그리고 살갑던 스태프들과 친절한 사장님, 좋은 게스트분들, 수많은 관광객들과 볼거리가 많았던 몽마르트 언덕, 아모리노 젤라또 아이스크림, 일회용 승차권인 까르네, 출구는 sortie 트로카데로역에서 내리면 보이는 안녕 하나 둘 셋 살래 하며 에펠탑을 보여주던 프랑스 검은형들, 지하철안의 악사분들,
와인파티 때 사장님이 만들어주신 카스테라와 모나코, 함께 루브르갔었던 게스트 지현이, 같이 이동식 돌이동산 갔었던 게스트분들, 그곳에서 먹은 5유로에 갓 튀겨 나오는 거대한 츄로스 12개, 초코빵인 줄 알았는데 에끌레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빵, 활기가 넘치던 생뚜앙 벼룩시장, 파리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몽소공원, 그리고 리퍼블리크역 광장 팽 드 수크흐에서 먹었던 밀푀유, 마카롱이 유명해서 갔다가 케잌을 사가지고 나왔던 피에르에르메, 파리지앵 느낌내려고 갔다가 비싸서 덜덜떨었던 생제르맹 거리의 레되마고 카페, 루브르 박물관 근처의 한적한 정원인 빨레호얄, 마들렌 광장에 가서 먹었던 포숑의 마들렌, 그리고 사진으로 담기 어려웠던 마들렌성당의 분위기,
파리에 오고 제일 먼저 파리에 왔음을 실감하게 해주었던 오페라역의 오페라 가르에니에 빵집, 스토레의 럼주에 적신 빵인 바바 오 럼 바바 오 샹티이, 헤어 커트 한 번에 44유로였던 saravy, 몽파르나스타워에서 내려다봤던 파리의 야경, 우연히 지나가다 발견한 파리의 경마장, 파리에서 만난 한국마트, 부활절이 다가와서 보였던 그랜드 페레로로쉐, 아름다웠던 보쥬광장, 마레지구에 있던 라스 뒤 중동인의 향기가 물씬 풍겨오던 팔라펠, 함께 지내던 스태프 은빈이와 주영누나, 12시간 통한 비행기를 타고오면서 창밖의 서리를 보고 설레던 순간, 공항에서 숙소로 어떻게 가야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던 때, 처음 항공권을 받았던 그 순간, 아침일찍 캐리어를 싸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그 때, 이 모든순간 정말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어디서 포잉 제로를 밟으면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고 했는데 나는 포잉 제로를 밟은 적도 없고 본적도 없지만 언젠가 다시 파리로 돌아올 것이다. 아마도 한국에 돌아가서 빵을 사먹거나 와인을 마시거나 치즈를 먹거나 케밥을 먹거나 크레페를 먹다보면 파리에서의 추억이 몹시 그리워질 거 같다.
나의 갭이어는
경험 ★★★★☆
사실 외국에서 이렇게 오래 체류한적은 처음인데 짧은 여행과는 확실히 다른 매력이 있는 거 같아요.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는 좀 더 장기간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어졌습니다.
배움 ★★★★☆
게스트하우스에서 생활하면서 어떻게 게스트를 응대하는지 배웠고 ,파리를 돌아다니면서 이곳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알게되었습니다.
환경 ★★★★★
한국에서의 생활이 그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좋은 주거환경과 이모님의 맛있는 밥, 그리고 함께 거주하는 착한 스태프누나 동생 사장님, 그리고 좋은 손님들 있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냈던 거 같습니다.
안전 ★★★★☆
사람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비슷한 거 같아요. 지내는 동안 딱히 위험요소는 없었지만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소매치기 등의 범죄가 일어나기도 하니 약간의 경계는 가지고 있는 게 좋습니다.
여가 ★★★★☆
근무시간 이외의 시간에는 대부분 숙소밖으로 나가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클린 댓글 캠페인>
저희 갭이어는 갭이어를 가진 모든 분들을 사랑합니다!
설령 갭이어족 갭퍼분들의 갭이어 기간동안 활동내용이나 경험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악플은 안돼요!:(
갭이어족 갭퍼분들의 인격 및 권익 보호 차원에서 갭퍼분들에 대한 무분별한 악성 댓글은
자체적으로 관리 및 삭제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강력히 대응할 예정입니다.
사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이나 파리에 와서 프로젝트를 진행 하면서 성격을 바꿔야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었는데 생각보다 내가 이제껏 가지고 살아온 성격을 한 번에 바꾸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게스트분들이나 스텝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는데 노력을 많이 할 수 있었다.
-프랑스 파리, 갭이어스테이/최종훈 갭이어족 갭퍼/8주간의 갭이어 |
현재 대한민국은,
한 해 중고등학생 학업 중단 6만 명, 꿈이 없어 그냥 노는 20대 34만 6천명, 취업 후 1년 내 이직율 40%대 돌입, 대학생의 75%는 대학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직장인의 80% 이상이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라고 말하지만 현실적인 방법과 도움이 없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한민국에도 '갭이어'를 들여오고자 합니다.
'갭이어(Gapyear)'란 학업과 일을 병행하거나 잠시 멈추고 봉사, 여행, 인턴, 교육, 창업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시간으로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권장 되고 있는 문화입니다.
#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파리 땅을 밟다!
갭이어에서 컨설팅을 받으면서 <프랑스 파리, 갭이어스테이> 프로젝트 참여를 권유받았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별로 없었던 나는 사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거 자체가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갭이어 스테이의 경우 별도의 참가비는 없었지만 왕복항공료나 최소한의 현지생활비조차도 준비되어있지 않았고, 마음도 확실히 정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래도 언젠가 파리에 한 번은 가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에 이번에 한 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조금 급하게 프로젝트 참여를 결정했고 그렇게 약 한달간 택배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한 결과 파리에 갈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처음으로 유럽땅을 그리고 그 중에서도 죽기전에 가보고싶었던 파리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생각에 13시간 정도의 장시간 비행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내식을 먹으며 버텼다. 참으로 신기한 게 프랑스가 한국보다 8시간 썸머타임일 때는 7시간이나 느리다 보니 12시간 비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날에 도착했다는 점이 너무너무 신기했다. 그렇게 두근구근 거리는 숙소로 향했고 살갑게 맞이해주는 게스트하우스 식구들과 함께 파리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실 처음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지하철만 타고 바로 숙소로 오느라고 실감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차차 밖에서 돌아다니며 내가 파리에 왔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처음 밖에 나가서 돌아다닐 때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흥미로운 것들 뿐이었다. 수동으로 열리는 지하철문, 지하철에서 악기 연주를 하는 사람들, 한국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무단횡단을 너무나 쉽게하는 파리의 사람들, 오픈된 장소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표현을 아끼지 않는 모습, 그리고 옛 건물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모습까지. 나에게는 파리의 그 모든 것들이 정말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 파리에 왔을 때는 사실 엄청난 목표라거나 딱히 이루고자 한 것은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고 싶은게 생겼다. 일단 오래 머물다 보니 파리 아니 더 나아가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고 그래서 불어를 조금씩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할 수 있는 말도 하나도 없었고 뭐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하나하나 읽는 방법을 조금씩 터특했고 간단한 단어들은 알 수 있게 되어 메뉴판을 보고 음식에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정도는 금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파리에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곳의 먹거리도 많이 궁금해졌고, 특히 파리에서는 동네방네 빵집이 많아서 빵에 지대한 관심히 생겼다. 한국에서는 잘 먹지도 않던 빵을 파리에 있을 때는 빵돌이 수준으로 하루에 한 개 이상은 꼬박꼬박 먹었던 것 같다.
# 바꾸고 싶었던 내 성격,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변화되다
이렇게 놀러다니는 숙소밖에서의 생활이 있다면 게스트하우스 내에서의 스태프로서의 생활도 있었는데, 나는 특별히 완전 휴무가 아닌 날에는 저녁활동을 하게 되었다. 저녁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오후에 숙소에 들어오신 손님들과 함께 즐거운 와인파티를 벌이면서 게스트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화목만 분위기를 만들어야만 했다.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능력이 조금 부족했던 나에게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차차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서 웃고 얘기하고 떠드는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게스트 분들과 함께 이런저런 다양한 소재의 얘기를 많이 했는데 주로 당일 손님의 여행이 어땠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보고 가능하다면 피드백을 하면서 얘기를 이어나갔다. 한 곳에서 장기간 머물다보니 내공이 생겨서 손님들에게 알려주는 재미도 쏠쏠했다. 때로는 그렇게 하다가 게스트 분들과 친해져서 다음 날 같이 여행지를 동행하기도 하면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빠르게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안쓰던 편지도 매번 게스트가 집을 떠날 때마다 썼다. 처음엔 편지쓰는게 굉장히 어려웠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게스트가 집을 떠나갈 때 편지를 못 써주면 나 스스로가 서운해졌다. 함께 했던 추억을 되돌아보며 글을 쓰고 그 편지를 건네주고, 체크아웃하고 손님이 떠나가면 어찌나 허전하던지.
사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이나 파리에 와서 프로젝트를 진행 하면서 성격을 바꿔야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었는데 생각보다 내가 이제껏 가지고 살아온 성격을 한 번에 바꾸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게스트분들이나 스텝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는데 노력을 많이 할 수 있었다.
# 여행객이 아닌 현지인의 삶으로 파리를 즐기다
파리에 좀 오래 머물다 보니 엄청난 환상을 품고 왔던 파리도 결국은 사람사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와인과 치즈를 먹고, 빵도 자주 먹고, 케밥, 크레페, 다양한 디저트 등을 먹으면서 정말 좋구나 하고 있었지만 결국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나에게도 이러한 삶이 일상이 되었다. 음, 그러니까 파리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삶을 내가 파리에 오랜 기간 머물면서 나도 현지인처럼 이러한 삶을 즐길 수 있게 되어 감사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가장 좋았던 게 뭐냐고 물어본다면 그냥 어느 골목길을 가도 보이는 오래된 건물의 풍경과 그 느낌이 다 좋았지만, 구태여 꼽으라고 한다면 에펠탑을 보고 있을 때가 가장 좋았다. 맑은 날이나 흐린날뿐만 아니라 매일 보고 또 보고 싶었던 그런 존재라고나 할까요. 아마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에펠탑의 사진을 보고 에펠탑에 대한 환상으로 예술의 도시 파리에 오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생활은 생각만큼 자유롭지 않을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주중 하루를 제외하고는 매일 일하는 시간이 조금씩 있고 또 때로는 근무시간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원하는 시간에 못 나갈 수도 있거든요. 나의 경우에는 오후에 근무를 했었는데 파리의 나이트라이프가 궁금했던 나에게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긴 했다.
#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쓰지 않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던 시간
내가 머물던 시기는 테러이후라는 상황과 비수기라는 상황이 겹쳐서 손님이 좀 적었기에 게스트하우스를 홍보하기 위한 글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게스트하우스의 시설을 관리하면서 처음으로 마루바닥을 시공하기도하는 경험을 해보기도 했다. 그래도 사장님께서 편의를 많이 봐주셔서 지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함께 했던 스태프들도 저의 부족한면을 많이 채워주셔서 한국에 있을 때면 항상 거의 혼자였을 저에게 같이지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게다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이모님이 아침저녁으로 해주시는 한식은 어머니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집에서 먹는 밥보다 맛있어서 한국이 그립지 않을 정도였다. 덕분에 너무 잘 먹어서 매주 1kg정도 증량된 거 같네요. 때로는 사장님이 카스테라도 직접 만들어서 주시고 현지 주류를 체험하라고 모나코도 만들어주셔서 즐겁게 와인파티도 할 정도로 파리에서의 시간은 다 좋았던 것 같다.
정말 좋은것은 한국 밖에 있다는 그 환경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모든 것이 힘들었다. 부모님도 그렇고 친했던 사람들도 내가 학교에 잘 나가지 않거나 학교를 그만 다닐 것이라는 소리를 하면 다들 고운시선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는데, 파리에 와서 보니 한국에서처럼 타인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는 그 시간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누구보다 행복한 한 때를 보낼 수 있었다.
꿈은 학교에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무턱대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내가 무언가 된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거 같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꿈이 있거나 하고 싶거나 무언가 되고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요즈음은 타인이 시키고 말하는 대로 살았던 인생보다는 행복하다. 길고 짧았던 여행, 그리고 파리 갭이어 스테이를 통해서 삶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서 만났던 현지인들이나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왔냐고 물어보면 하던 것을 중단하거나 관두고 왔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중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할거야? 라고 물어보면 가서 다시 일구하면 된다고 그들은 너무나도 쉽게 얘기를 하는 것을 보고 깜짝놀랐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주변의 시선을 많이 의식해서 쉽게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거 같은데, 이제는 다시 한국에 돌아간다면 주변사람 시선을 덜 신경쓰고 자유롭게 내가 하고싶은대로 살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아끼지 않고 표현할 자신감도 많이 생겼다. 만날 다른사람하는 대로 살고 주변의 흐름대로 따라가기만 했다면 나는 지금쯤 굉장히 불행한 사람 중 한명이 되었을거같다.
# 파리에서의 잊지 못할 소중한 많은 기억들
게스트하우스가 있던 갈리에니 집근처 케밥집, 자주가던 마트, 오샹, 길가다가 먹었던 크레페, 심심하면 들려서 빵을 먹던 폴, 갈때마다 기분좋아지는 에펠탑, 수동으로 열리는 지하철문, 한국에서 먹던 밥보다 맛있어서 살을 찌우는 주범이된 이모님 밥, 아늑한 게스트하우스, 그리고 살갑던 스태프들과 친절한 사장님, 좋은 게스트분들, 수많은 관광객들과 볼거리가 많았던 몽마르트 언덕, 아모리노 젤라또 아이스크림, 일회용 승차권인 까르네, 출구는 sortie 트로카데로역에서 내리면 보이는 안녕 하나 둘 셋 살래 하며 에펠탑을 보여주던 프랑스 검은형들, 지하철안의 악사분들,
와인파티 때 사장님이 만들어주신 카스테라와 모나코, 함께 루브르갔었던 게스트 지현이, 같이 이동식 돌이동산 갔었던 게스트분들, 그곳에서 먹은 5유로에 갓 튀겨 나오는 거대한 츄로스 12개, 초코빵인 줄 알았는데 에끌레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빵, 활기가 넘치던 생뚜앙 벼룩시장, 파리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몽소공원, 그리고 리퍼블리크역 광장 팽 드 수크흐에서 먹었던 밀푀유, 마카롱이 유명해서 갔다가 케잌을 사가지고 나왔던 피에르에르메, 파리지앵 느낌내려고 갔다가 비싸서 덜덜떨었던 생제르맹 거리의 레되마고 카페, 루브르 박물관 근처의 한적한 정원인 빨레호얄, 마들렌 광장에 가서 먹었던 포숑의 마들렌, 그리고 사진으로 담기 어려웠던 마들렌성당의 분위기,
파리에 오고 제일 먼저 파리에 왔음을 실감하게 해주었던 오페라역의 오페라 가르에니에 빵집, 스토레의 럼주에 적신 빵인 바바 오 럼 바바 오 샹티이, 헤어 커트 한 번에 44유로였던 saravy, 몽파르나스타워에서 내려다봤던 파리의 야경, 우연히 지나가다 발견한 파리의 경마장, 파리에서 만난 한국마트, 부활절이 다가와서 보였던 그랜드 페레로로쉐, 아름다웠던 보쥬광장, 마레지구에 있던 라스 뒤 중동인의 향기가 물씬 풍겨오던 팔라펠, 함께 지내던 스태프 은빈이와 주영누나, 12시간 통한 비행기를 타고오면서 창밖의 서리를 보고 설레던 순간, 공항에서 숙소로 어떻게 가야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던 때, 처음 항공권을 받았던 그 순간, 아침일찍 캐리어를 싸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그 때, 이 모든순간 정말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어디서 포잉 제로를 밟으면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고 했는데 나는 포잉 제로를 밟은 적도 없고 본적도 없지만 언젠가 다시 파리로 돌아올 것이다. 아마도 한국에 돌아가서 빵을 사먹거나 와인을 마시거나 치즈를 먹거나 케밥을 먹거나 크레페를 먹다보면 파리에서의 추억이 몹시 그리워질 거 같다.
나의 갭이어는
경험 ★★★★☆
사실 외국에서 이렇게 오래 체류한적은 처음인데 짧은 여행과는 확실히 다른 매력이 있는 거 같아요.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는 좀 더 장기간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어졌습니다.
배움 ★★★★☆
게스트하우스에서 생활하면서 어떻게 게스트를 응대하는지 배웠고 ,파리를 돌아다니면서 이곳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알게되었습니다.
환경 ★★★★★
한국에서의 생활이 그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좋은 주거환경과 이모님의 맛있는 밥, 그리고 함께 거주하는 착한 스태프누나 동생 사장님, 그리고 좋은 손님들 있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냈던 거 같습니다.
안전 ★★★★☆
사람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비슷한 거 같아요. 지내는 동안 딱히 위험요소는 없었지만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소매치기 등의 범죄가 일어나기도 하니 약간의 경계는 가지고 있는 게 좋습니다.
여가 ★★★★☆
근무시간 이외의 시간에는 대부분 숙소밖으로 나가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클린 댓글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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