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시간을 가지라는 갭이어의 모토가 좋았고, 대학교를 다니며 짧은 방학동안 해외경험을 했었던 나는 프랑스 파리에서 내가 진정 원하는 길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고 싶어 지원하게 되었다.
-프랑스 파리, 갭이어 스테이/김민지 갭이어족 갭퍼/8주간의 갭이어 |
#남들보다 빨리 시작되었던 사회생활
대학을 조기 졸업하고 어린 직장인이 되었던 나. 얼떨결에 조기취업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의 대학생활은 정작 1년 6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친구들이 방학을 가지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기 바빴을 때 나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사회생활에서 치이고 있었던 것 같다.
#나를 위해 시간을 가지고 싶어 떠난 파리
SNS의 여파가 큰 요즘이다. 내가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SNS의 물결이 나에게 와닿는다. 그런 SNS를 통해 본 주변사람들은 나보다 나은 것 같고, 좋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질투가 나기도했다. 그렇게 무뎌지게 나마 지나간 시간이 2년이 되어갈 쯤 페이스북을 통해 갭이어를 알게되었다.
나를 위해 시간을 가지라는 갭이어의 모토가 좋았고, 대학교를 다니며 짧은 방학동안 해외경험을 했었던 나는 프랑스 파리에서 내가 진정 원하는 길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고 싶어 지원하게 되었다.
#출국 전 전해진 비보
다니던 회사에 퇴사를 통보하고 업무를 마무리하던 마지막 날, 프랑스 파리에는 역대급 테러가 발생해 전세계의 관심을 받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전해지는 소식이 없어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했던 나는 유럽에서 테러가 나름 빈번하게 일어나니까 이번 일 또한 쉬이 마무리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파리의 테러는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었다는 걸 몸소 느끼게 되었다. 국경이 폐쇄된다는 말이 나왔고 공항이나 기차역의 업무가 모두 종료가 될 거라고 말이 돌았다. 파리에서의 갭이어를 진행하기 위해 퇴사를 했지만, 정녕 내가 이대로 진행을 해도 될지 매우 겁이 났다. 자칫 나의 안전이 위협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가기 직전까지 인터넷을 주시하며 출국을 걱정했다.
#내가 원했던 바를 시도라도, 도전이라도 꼭 해보고 싶었다.
일정을 진행하고 있을 갭이어에도 연락을 해서 이대로 진행을 해도 될지 걱정하는 마음에 문의를 드렸는데 아마 주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답변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현지의 갭퍼들은 안전하다는 내용이었다. 퇴사를 했기에 더이상 돌아갈 곳도 없고 출국을 거부당한다 한들 나는 꼭 내가 원했던 바를 그대로 진행하는 것에 시도라도, 도전이라도 꼭 해보고 싶었다.
#'모든 일은 잘 될거야'
드디어 출국 당일 인천공항에서 나를 태워줄 비행기 앞에 도착했는데도 내가 프랑스 파리로 가려는 것이 맞는지 의심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모든 일은 잘 될 거야' 단순히 그렇게 마음을 타일렀다. 두바이를 경유해 런던에 도착한 뒤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에 도착했다. 문자로 알림 받은 대로 나는 게스트하우스에 찾아갔고 나와 함께 일을 할 스텝을 만났다. 그렇게 내 갭이어는 시작되었다.
# 게스트하우스에서 내가 맡은 업무
나의 업무는 게스트하우스의 야경투어였으나 테러가 일어난지 단지 2주 후였고 파리의 상태는 그리 좋은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야경투어는 잠정 보류된 상태였다. 어차피 내가 야경투어 관련 인수인계를 받았어야 했을 사람은 이미 게스트하우스에 없는 상태였어서 아침+저녁 근무자들로부터 그들의 업무를 먼저 배웠다.
아침, 저녁 그리고 킵 업무를 제외하고 남는 시간에는 파리 시내로 나가서 야경투어에는 어떤 관광지를 방문하는지 알아보고 걸어봤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무렵 사장님께서 나에게 야경투어와는 다른 업무를 지시해 주셨다. 블로그로 '게스트하우스 홍보 양식'을 만들라는 것. 일주일에 게스트하우스 블로그 포스팅 2개를 하면 남는 시간은 자유시간을 해도 좋다는 말씀이었다.
#어딜 가든 게스트하우스 홍보 생각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어딘가를 갈 때마다 포스팅을 생각하며 어떤 부분이 게스트하우스 홍보에 도움이 될지 쉴 새 없이 생각했었다. 토요일을 마감일로 스스로 정하고 데드라인을 넘기지 않고 사장님께 포스팅을 전해드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게스트하우스 포스팅 14개였다.
#나는 우리나라에 살면서 얼마만큼의 자부심을 가졌는가.
포스팅을 하는 시간 이외에는 여러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파리시민의 삶을 들여다 보기도 했고 문화유산이 많은 도시답게 잘 구성이 되어있는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다니며 고대부터 시작해 현대까지 보존되어오는 유물을 살펴보기도 했다. 스치기만해도 또는 말만 나누어도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파리지앵, 파리지앤느를 보며 내가 우리나라에 살면서 자부심을 얼만큼 가졌었는지 생각도 해봤던 것 같다.
훗날 이런 관심들은 게스트들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해드릴 수 있는 밑천이 되기도 했다. 지식은 많지 않았지만 모르는 부분은 서로 찾아가며 이해했던 기억도 있다.
#서로 다른 인생들을 꺼내고 공감하고 귀기울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게스트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제일 재미있었다. 그러니까 저녁 업무시간인 와인파티이다. 하루를 다르게 보냈던 게스트들이, 그렇게 하루가 모여 다른 인생을 살았던 분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공감하고 귀기울이며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던 시간들은 내게 고맙고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들이 가장 많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연령대가 높은 분들도 줄곧 함께였었다. 이것은 유스호스텔이 아닌 민박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연령대의 구분이 심하지 않은 것. 그리하여 각자의 경험의 농도가 다른 이야기들을 해주실 땐 저절로 와인이 빨리 닳고 시간이 술술 흘러갔다.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다.
나같은 경우는 파리의 테러가 일어난 직후에 찾아가 크리스마스, 연말, 명절, 새해를 모두 맞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빨리 지나가는 시간들은 매우 뜻깊었다. 멋진 게스트들과, 좋은 스텝진과 함께할 수 있는 건 매우 행복한 일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시간의 소중함을 가장 많이 느꼈던 갭이어였다. 언젠가 이 시간이 흘러간다는 걸 알지만 잡을 수도 미룰 수도 없기에 잠 자는 시간 이외에는 헛되이 보낸 시간들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갭이어에서 비로소 나는 자유를 느꼈다.
나름 모든걸 비우고 떠나온 갭이어에서 비로소 나는 자유를 느꼈다. 나를 쫒고 있는 것도 없고 내가 쫒아야 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너무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는 이런 자유가 너무 좋기만했다. 그냥 그 자체로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이런 마인드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게스트하우스에서 가장 중요 요인인 게스트 분들과도 더 친근하게 부담감 없이 안내를 해드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돌아서지 않았던 나를 날마다 속으로 칭찬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테러가 났기 때문에 겁을 먹고 진행을 포기했었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이런 소중한 시간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차곡차곡 간직하고 싶다. 그때에 돌아서지 않았던 나를 나는 날마다 속으로 칭찬했다.
파리에서의 게스트하우스도, 한국보다 훨씬 여유로운 생활도, 쉬는 날에 꼭 나가야만 했던 이유인 '나비고'도 더이상 없지만 내 마음속에 간직된 갭이어가 훌륭한 자양분으로 남아 나를 계속 성장하게 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나의 갭이어는..
해외에서 꽤 긴 시간을 보내면서 타인과 접촉할 수 있었다는 건 매우 중요한, 추억할만한 경험이 되었다. 긍정적인 생각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타인이 말해주는 경험을 간접 체험하는 건 즐거웠다. 관광지가 아닌 곳들이 더 재미있었고 소매치기는 상시 주의해야한다. 숙소는 깔끔하지만 새집은 아니므로 나름의 감안을 해야한다. 내가 갔을때는 파리에 테러가 났던 직후라 오히려 경찰진 덕분에 안전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세계적으로 테러에 대한 위협은 있는 상태이므로 유의해야 한다. 나를 위한 갭이어지만 그래도 하루에 5시간, 킵업무까지는 최대 12시간까지도 게스트하우스를 위해 근무를 해야하는 환경이다. 너무 여가만 생각한다면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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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시간을 가지라는 갭이어의 모토가 좋았고, 대학교를 다니며 짧은 방학동안 해외경험을 했었던 나는 프랑스 파리에서 내가 진정 원하는 길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고 싶어 지원하게 되었다.
-프랑스 파리, 갭이어 스테이/김민지 갭이어족 갭퍼/8주간의 갭이어 |
#남들보다 빨리 시작되었던 사회생활
대학을 조기 졸업하고 어린 직장인이 되었던 나. 얼떨결에 조기취업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의 대학생활은 정작 1년 6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친구들이 방학을 가지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기 바빴을 때 나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사회생활에서 치이고 있었던 것 같다.
#나를 위해 시간을 가지고 싶어 떠난 파리
SNS의 여파가 큰 요즘이다. 내가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SNS의 물결이 나에게 와닿는다. 그런 SNS를 통해 본 주변사람들은 나보다 나은 것 같고, 좋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질투가 나기도했다. 그렇게 무뎌지게 나마 지나간 시간이 2년이 되어갈 쯤 페이스북을 통해 갭이어를 알게되었다.
나를 위해 시간을 가지라는 갭이어의 모토가 좋았고, 대학교를 다니며 짧은 방학동안 해외경험을 했었던 나는 프랑스 파리에서 내가 진정 원하는 길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고 싶어 지원하게 되었다.
#출국 전 전해진 비보
다니던 회사에 퇴사를 통보하고 업무를 마무리하던 마지막 날, 프랑스 파리에는 역대급 테러가 발생해 전세계의 관심을 받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전해지는 소식이 없어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했던 나는 유럽에서 테러가 나름 빈번하게 일어나니까 이번 일 또한 쉬이 마무리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파리의 테러는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었다는 걸 몸소 느끼게 되었다. 국경이 폐쇄된다는 말이 나왔고 공항이나 기차역의 업무가 모두 종료가 될 거라고 말이 돌았다. 파리에서의 갭이어를 진행하기 위해 퇴사를 했지만, 정녕 내가 이대로 진행을 해도 될지 매우 겁이 났다. 자칫 나의 안전이 위협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가기 직전까지 인터넷을 주시하며 출국을 걱정했다.
#내가 원했던 바를 시도라도, 도전이라도 꼭 해보고 싶었다.
일정을 진행하고 있을 갭이어에도 연락을 해서 이대로 진행을 해도 될지 걱정하는 마음에 문의를 드렸는데 아마 주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답변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현지의 갭퍼들은 안전하다는 내용이었다. 퇴사를 했기에 더이상 돌아갈 곳도 없고 출국을 거부당한다 한들 나는 꼭 내가 원했던 바를 그대로 진행하는 것에 시도라도, 도전이라도 꼭 해보고 싶었다.
#'모든 일은 잘 될거야'
드디어 출국 당일 인천공항에서 나를 태워줄 비행기 앞에 도착했는데도 내가 프랑스 파리로 가려는 것이 맞는지 의심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모든 일은 잘 될 거야' 단순히 그렇게 마음을 타일렀다. 두바이를 경유해 런던에 도착한 뒤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에 도착했다. 문자로 알림 받은 대로 나는 게스트하우스에 찾아갔고 나와 함께 일을 할 스텝을 만났다. 그렇게 내 갭이어는 시작되었다.
# 게스트하우스에서 내가 맡은 업무
나의 업무는 게스트하우스의 야경투어였으나 테러가 일어난지 단지 2주 후였고 파리의 상태는 그리 좋은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야경투어는 잠정 보류된 상태였다. 어차피 내가 야경투어 관련 인수인계를 받았어야 했을 사람은 이미 게스트하우스에 없는 상태였어서 아침+저녁 근무자들로부터 그들의 업무를 먼저 배웠다.
아침, 저녁 그리고 킵 업무를 제외하고 남는 시간에는 파리 시내로 나가서 야경투어에는 어떤 관광지를 방문하는지 알아보고 걸어봤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무렵 사장님께서 나에게 야경투어와는 다른 업무를 지시해 주셨다. 블로그로 '게스트하우스 홍보 양식'을 만들라는 것. 일주일에 게스트하우스 블로그 포스팅 2개를 하면 남는 시간은 자유시간을 해도 좋다는 말씀이었다.
#어딜 가든 게스트하우스 홍보 생각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어딘가를 갈 때마다 포스팅을 생각하며 어떤 부분이 게스트하우스 홍보에 도움이 될지 쉴 새 없이 생각했었다. 토요일을 마감일로 스스로 정하고 데드라인을 넘기지 않고 사장님께 포스팅을 전해드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게스트하우스 포스팅 14개였다.
#나는 우리나라에 살면서 얼마만큼의 자부심을 가졌는가.
포스팅을 하는 시간 이외에는 여러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파리시민의 삶을 들여다 보기도 했고 문화유산이 많은 도시답게 잘 구성이 되어있는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다니며 고대부터 시작해 현대까지 보존되어오는 유물을 살펴보기도 했다. 스치기만해도 또는 말만 나누어도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파리지앵, 파리지앤느를 보며 내가 우리나라에 살면서 자부심을 얼만큼 가졌었는지 생각도 해봤던 것 같다.
훗날 이런 관심들은 게스트들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해드릴 수 있는 밑천이 되기도 했다. 지식은 많지 않았지만 모르는 부분은 서로 찾아가며 이해했던 기억도 있다.
#서로 다른 인생들을 꺼내고 공감하고 귀기울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게스트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제일 재미있었다. 그러니까 저녁 업무시간인 와인파티이다. 하루를 다르게 보냈던 게스트들이, 그렇게 하루가 모여 다른 인생을 살았던 분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공감하고 귀기울이며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던 시간들은 내게 고맙고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들이 가장 많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연령대가 높은 분들도 줄곧 함께였었다. 이것은 유스호스텔이 아닌 민박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연령대의 구분이 심하지 않은 것. 그리하여 각자의 경험의 농도가 다른 이야기들을 해주실 땐 저절로 와인이 빨리 닳고 시간이 술술 흘러갔다.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다.
나같은 경우는 파리의 테러가 일어난 직후에 찾아가 크리스마스, 연말, 명절, 새해를 모두 맞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빨리 지나가는 시간들은 매우 뜻깊었다. 멋진 게스트들과, 좋은 스텝진과 함께할 수 있는 건 매우 행복한 일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시간의 소중함을 가장 많이 느꼈던 갭이어였다. 언젠가 이 시간이 흘러간다는 걸 알지만 잡을 수도 미룰 수도 없기에 잠 자는 시간 이외에는 헛되이 보낸 시간들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갭이어에서 비로소 나는 자유를 느꼈다.
나름 모든걸 비우고 떠나온 갭이어에서 비로소 나는 자유를 느꼈다. 나를 쫒고 있는 것도 없고 내가 쫒아야 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너무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는 이런 자유가 너무 좋기만했다. 그냥 그 자체로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이런 마인드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게스트하우스에서 가장 중요 요인인 게스트 분들과도 더 친근하게 부담감 없이 안내를 해드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돌아서지 않았던 나를 날마다 속으로 칭찬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테러가 났기 때문에 겁을 먹고 진행을 포기했었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이런 소중한 시간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차곡차곡 간직하고 싶다. 그때에 돌아서지 않았던 나를 나는 날마다 속으로 칭찬했다.
파리에서의 게스트하우스도, 한국보다 훨씬 여유로운 생활도, 쉬는 날에 꼭 나가야만 했던 이유인 '나비고'도 더이상 없지만 내 마음속에 간직된 갭이어가 훌륭한 자양분으로 남아 나를 계속 성장하게 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나의 갭이어는..
해외에서 꽤 긴 시간을 보내면서 타인과 접촉할 수 있었다는 건 매우 중요한, 추억할만한 경험이 되었다. 긍정적인 생각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타인이 말해주는 경험을 간접 체험하는 건 즐거웠다. 관광지가 아닌 곳들이 더 재미있었고 소매치기는 상시 주의해야한다. 숙소는 깔끔하지만 새집은 아니므로 나름의 감안을 해야한다. 내가 갔을때는 파리에 테러가 났던 직후라 오히려 경찰진 덕분에 안전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세계적으로 테러에 대한 위협은 있는 상태이므로 유의해야 한다. 나를 위한 갭이어지만 그래도 하루에 5시간, 킵업무까지는 최대 12시간까지도 게스트하우스를 위해 근무를 해야하는 환경이다. 너무 여가만 생각한다면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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