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의 꿈같던 43박 44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다음 날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서 멍…하니 있다가,그 곳에서 듣던 음악을 듣다가,사랑하는 사람들이 써준 편지와 사진을 보다가,울다가,잠들다가 그렇게 이틀을 보냈다.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가면 맑은 협재바다와 비양도가 있을 것만 같았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주가 내 안으로 깊게 자리잡은 까닭이었다.   -제주! 갭이어 스테이, 나만의 힐링이 필요한 당신에게/이소영 갭이어족 갭퍼/8주간의 갭이어

 

  

 

 

나만의 갭이어 이야기

 

제주도에 도착하니 이미 깜깜해진 후였다.버스를 잘못 타서 훨씬 늦은 시간에 협재에 도착했다. 어안이 벙벙하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제주는 따뜻했다. 처음 갔던 10월 말에는 이층 침대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협재바다의 파도소리와 갈치잡이배의 집어등을 보고 들으며 잠에 들었다.

 

 

 

 

 

처음 스탭 활동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다음 날 아침 어제 함께 웃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사람들과 헤어지는 시간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이층에서 일층 현관까지 배웅을 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게스트분들이 나간 문이 탁 닫히고 마지막 게스트까지 체크아웃을 하면 마음 한쪽이 휑하니 쓸쓸했다. 우리는 평일에 청소를 하지 않아서 더욱 쓸쓸함이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갈치국과몸국, 고기국수와 싱싱한 회, 한라산 소주와 제주 생 유산균 막걸리는 제주 생활의 큰 즐거움이었다.서울에서는 널린 게 영화관이라 영화관 가는 것이 쉬운 일인 줄 알았는데 내가 지낸 협재에서 영화관에 가려면 꼬박 두시간이 걸렸다.인터스텔라를 작은 스크린으로 보고서도 감사하는 그런 생활이었다.

 

협재는 바다냄새, 흔히 바다비린내라고 하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협재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제주도 바다에서 바다냄새를 맡아 본 적이 없는 듯 하다.냄새도 나지 않고 눈앞에 멋진 풍경이 매일같이 펼쳐지니 하루하루가 더욱 꿈같이 흘러갔다.

 

                  

 

 

사장님과 같이 두 명의 동료 스탭 그리고 매일 같이 얼굴을 보던 사람들이 있어서 제주 생활이 더욱 따뜻했다.예상치 못했던 만남과 인연들 그리고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와 추억들은 모두 나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이제까지 나는 내가 서른 살이 넘으면 한순간에 성숙한 인간이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그런데 게스트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그런 드라마틱한 인간됨의 성숙은 일어나지 않으며 다만 내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나를 만들어가기 나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한달 반 동안의 제주생활이 항상 꿈같고 즐거웠던 것은 아니지만 그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순간조차 육지에서의 노력보다 더 큰 배움을 가져다 주었다.

 

눈을 감고 비양도의 능선을 손가락으로 그릴 수 있을 정도가 되니 제주를 떠날 시간이었다.차근차근 내가 남긴 흔적들을 돌아보고, 편지를 남기고, 사진을 정리했다. 하지만 이별의 순간은 언제나 그렇듯 익숙하지 않았다.미리 시간이 이른 비행기를 예약한 터라 모두 잠든 밤 일찍 같이 스탭했던 친구와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차가운 새벽 공기가 코를 타고 들어오면서 그 동안의 일들이 필름이 감기듯 스쳐 지나갔다.

 

 

 

 

 

제주에서의 이번 경험은 나의 새로운 모습도 발견한 시간이었다.나는 이제까지 내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보다는 알 고지내던 편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유지하는 것에서 더욱 행복을 느낀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게스트하우스 스탭 활동을 하면서내가 새로운 만남에 얼마나 두근거리고 행복해하는지를 알게 되었다.제주의 풍경도 음식도 다 좋지만 결국 사람이었다.가장 많이 그립고 또 보고 싶은 것은 제주에 두고 온 사람들이다.아마 조만간 다시 제주를 찾을 것 같다.비록 스탭으로 오래 머물 때의 기분은 더 이상 느낄 수 없겠지만 나를 성장시키고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제주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갭이어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전과 참가 후를 비교해 본다면? 

혼자 여행해 본 경험도 많지 않고 더군다나 생전 모르는 곳에서 한달 반을 지낸다는 것은 나에게 상당히 큰 모험이자 도전이었다.그러나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소박한 생활을 같이 나누며 작은 것에 즐거워하던 순간이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길가에 핀 작은 꽃,떨어진 솔방울,당근밭에 맺힌 이슬, 달을 가리며 지나가는 구름. 이전에는 바쁘게 스쳐 지나갔던 것들에 조금 더 긴 눈길을 주게 되었다.

 

 

 

 

 

갭이어 기간 동안 자신만의 여행 루트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세요(추천 장소 및 일정, 루트) 

빡빡하게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슬렁슬렁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대평리가 잘 맞았던 것 같다. 대평리의 고즈넉하고 편안한 공기가 좋았고 박수기정에서 보는 일몰은 협재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곽지해수욕장에서 쭉 연결된 한담산책로는 정말 아름답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좋다.새별오름, 다랑쉬오름의 억새와 지미오름의 일출.동쪽의 서우봉-김녕-월정리-하도리로 이어지는 바다는 가깝지만 제각기 다른 멋을 갖고 있다. 우도에서는1박을 해보길 권한다.눈 내린 한라산은 정말 아름다웠다.협재-금릉-월령리-신창리로 이어지는 서쪽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