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이어를 고민하고 있는 분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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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the life you love, love the life you live ‘그대가 살고 있는 삶을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하는 삶을 살아라’
갭이어를 계획하고 계시다면 용기를 내세요. 한발자국 더 앞으로 움직이세요. 자신이 사랑하는,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일을 하세요. 지금 이 순간 아니면 영원히 못 할지도 몰라요. 자신을 믿고 자기가 한 선택을 믿어요. |
62th 갭이어족 Gapper 이미경
갭이어 기간 : 2015 1월~2016년 1월 (총 1년)
카우치서핑과 히치하이킹으로 세계일주를 하며 길 위에서 찾은 진정한 행복
현재 대한민국은,
한 해 중고등학생 학업 중단 6만 명, 꿈이 없어 그냥 노는 20대 34만 6천명, 취업 후 1년 내 이직율 40%대 돌입, 대학생의 75%는 대학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직장인의 80% 이상이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라고 말하지만 현실적인 방법과 도움이 없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한민국에도 '갭이어'를 들여오고자 합니다.
'갭이어(Gapyear)'란 학업과 일을 병행하거나 잠시 멈추고 봉사, 여행, 인턴, 교육, 창업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시간으로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권장 되고 있는 문화입니다.
# 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며 제가 사는 세상 밖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2014년 여름, 그 때 처음으로 혼자 70일 정도 유럽여행을 떠났어요. 사실 그 전까지는 여행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국내 여행도 다니지 않았어요. 그저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나 멋지다고 하는 유럽을 저도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죠.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은 여행이 제 삶을 이렇게 크게 바꿔줄 거라고 전혀 생각치도 못했어요.
하지만 약 2달 반 동안 하루하루가 심장이 두근거리고 매일 내일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일들로 가득 찬 여행을 했습니다. 오죽하면 돌아오는 한국행 비행기에서 2시간 동안 일기장을 부여잡고 펑펑 울었다니까요. 방 안에 누워있으면 꿈같던 순간들이, 에펠탑 앞에 앉아 소등을 지켜보던 그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어요. 처음이었어요. 이렇게 매일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순간들은.
그래서 다시 한 번 여행을 떠나기로 다짐했어요. 언제가 될지는 몰랐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장기여행을 꼭 가보고 싶었어요. 여행하면서 느꼈던 열정을, 행복을, 가슴의 울림을 다시 느끼고 싶었어요. 그리고 오로지 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며 제가 사는 세상 밖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 그들의 ‘일상’을 옆에서 관찰하고 싶었어요.
처음에 유럽여행을 떠났을 때는 정보도 부족했고, 처음 떠나는 여행이라 유명한 호스텔에서 숙박을 해결하며 풍요로운 여행을 했어요. 작년 여행의 컨셉은 다른 여행자들이 하는 걸 전부 해보고, 최대한 많이 보고 배우고 오자. 유럽의 많은 나라들을 보고 오자는게 목표였거든요. 들고 간 돈도 펑펑 쓰며 랜드마크들도 방문하고 캐리어를 끌고 나름 호화 여행을 누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여행은 초저가 여행을 해보자라며 다른 목표를 설정했어요. 다른 여행자들도 하는데 나도 당연히 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과 자신감이 있었어요. 먼저 여행을 떠나신 분들의 블로그를 참고하기 시작했어요. 여행자분들에게 직접 연락해서 정보를 얻고 강연도 듣고는 했죠.
그 때 마침 카우치서핑과 자전거로 터키를 3개월간 100만원으로 횡단하신 분이 계셨어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지만 저가여행을 하려니 가능성이 보였어요.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는 겉에서 그 나라의 문화를 지켜보는 것이 아닌, 현지 문화 속에 녹아들고 싶었어요. 현지인들의 일상 생활을 직접 옆에서 경험하고 이해하고 싶었기에 카우치서핑과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그들의 일상은 나의 일상과 어떻게 다른지, 다양한 국적의 내 나이 또래들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기에 그들의 ‘일상’을 옆에서 관찰하고 싶었어요.
# 200번도 넘게 한 히치하이킹은 제 여행을 무엇보다 값지고 특별하게 만들어주었어요.
히치하이킹을 하려고 길 위에 서서 엄치 손가락을 치켜들고 차를 기다리는 그 순간만큼은 정말 자유로운 기분이 들어요. 하지만 혼자 하는 히치하이킹이 두렵지 않다거나 떨리지 않을 수 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긴장되기도 해요. 내가 나쁜 사람을 못 알아보고 차에 올라타면 어쩌지. 항상 100퍼센트 안전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여행을 하고자하는 나라가 위험한 곳인지 스크랩, 및 신문기사도 꼼꼼히 찾아보고 한 나라를 가기 2~3일 전부터 A4용지에 기본 회화 구문들을 빼곡히 적어서 외우고 히치하이킹을 하며 운전자와 연습하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그 나라언어를 조금이라도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여행의 질이 많이 좌우되는 것 같아요.
터키에서 처음으로 카우치서핑을 해봤고 코카서스에서는 본격적으로 히치하이킹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터키에서 첫 번째 카우치서핑 호스트는 저와 나이가 같은 여대생이었고, 두 번째 호스트는 요리를 정말 잘하는 커플이고, 세 번째는 타투이스트인 남자 호스트였어요. 타투샵 거실 쇼파에서 묵게 되었어요. 매일 아침 타투샵 근처 케밥집에서 케밥과 초코우유를 사와서 마시고 타투샵을 열어요.
타투샵은 트라브존에서 꽤나 유명한지 터키인들로 북적북적 거립니다. 손님들이 놀러 와서 같이 거실에 앉아 수다를 떨기도 하고요. 영어가 통하지 않아서였는지 터키식 차를 타주며 터키어 스파르타 강습도 해주었습니다. 호스트가 퇴근하면 동네 친구들과 맥주를 한 잔 마시고 들어와 영화를 보다 자고는 했어요. 그리고 아르메니아 예레반의 예술 대학교에 놀러갔다가 사진과 교수님께서 우연히 제 카메라의 사진을 보시더니 대학 사진전에 사진을 전시해 주셨습니다.
아르메니아 친구들과 야외 콘서트를 보러갔다가 비가 내려 빗속에서 같이 춤을 추기도 했어요. 한국에서는 딱히 만날 일이 없었던 연영과 친구들과 연기 수업도 듣고 연극을 보러 가기도 했고, 오토바이로 세계를 일주하는 제가 정말 존경하는 여행 멘토와 인연이 닿아 같이 여행하며 많은 팁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멘토의 가르침 덕분에 1년 동안 즐겁고 행복하고 안전하게 여행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란은 제가 경험했던 어느 나라하고도 다른 중동의 짙은 향이 있었습니다. 이란에서는 무전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전여행을 하며 돈이 있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현지인들의 정과 베풂을 느낄 수 있었고 관광지에서 빠져나와 현지인들의 삶과 문화에 더 근접하게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교와 자유분방한 영혼들이 마구마구 뒤엉켜있는 이란. 무전여행을 시작한 후로 그동안은 전혀 관심 있게 보지 않았던 것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가족들을 만나고, 초대를 받아 각양각색의 집에서 자기 시작했어요. 모든 집에는 저마다 다른 개성이 넘치는 카펫들이 깔려있었고, 코란의 구절이 벽에 걸려있는 집도 있었고, 대부분의 아파트의 화장실은 재래식이었습니다.
어느 집을 가던 오이, 사과, 뽁뽁이 빵은 거의 필수품처럼 가지런히 부엌에 놓여있었어요. 새벽 5시에 차도르를 뒤집어쓰고 동네 모스크에 무작정 들어가 이란아주머니들에게 기도하는 법도 배우고, 모스크 계단에 걸터앉아 차이를 마시다가도 휘황찬란한 이란 모스크의 화려함에 눈이 또 한번 휘둥그레지기도 했어요.
유럽에서는 많은 일을 해봤습니다. 현지인과 같이 일을 하며 근무 환경에서의 직접적인 경험을 쌓는 것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했었기에 기회가 닿는 대로 무엇이든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슬로바키아에서 카우치서핑으로 우연히 알게 된 저랑 동갑내기 남자애의 소개로 슬로바키아 청소년 스카우트 캠프에 스텝으로 참가하게 되었어요.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숲 속의 평야였어요. 드넓은 잔디가 끊임없이 펼쳐져 있고 사방은 우직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곳이요. 전기도 없고 시내 하고도 꽤나 멀리 떨어진 그런 숲 속이었어요. 풀을 캐서 천연 차를 우려 마시기도 하고, 샤워실도 직접 지어서 계곡 물을 이용해서 샤워를 했어요.
산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아이들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기고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워크샵도 열었어요. 처음일 거예요. 우리가 흔히 쓰는 전기, 전자기기, 문명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건. 아직도 눈을 감으면 한 여름 밤이 생각나요. 어둠이 다가오는 밤이면 전기는 없어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펼쳐진 은하수. 날씨도 마침 따뜻해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그냥 잔디에 침낭을 펼쳐 놓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 별이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을 보며 수다를 떨었죠.
가만히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별동별이 연이어 하늘을 가로질러 가기도 해요. 그럴 때 마다 소원을 빌고는 했어요. 언젠가 이곳을 떠나도 오늘 같은 별똥별을 보고 싶다고. 행복했던 이 순간을 잊지 말고 가슴 속 깊이 기억하자고.
벨기에에서는 이코빌리지/농장에서 자두를 따고 까르푸에서 후원받은 재료들로 같이 일하는 분들이 드실 음식을 요리하기도 했고, 크로아티아의 환상의 섬 흐바르 호스텔에서 3주간 아침으로 팬케익을 만들고 야채쥬스를 갈고 청소를 하며 손님들과 섬을 투어 하는 일을 했습니다. 아,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15m가 넘는 절벽에서 다이빙도 했어요. 정말 떨리던 순간이었죠.
정말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어요. 한참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유럽으로 많이 들어오던 10월이었어요. 처음에는 그저 전쟁과 테러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난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한국이면 멀지만 그 당시 유럽에서 자주 난민 소식을 접하던 저에게는 꼭 하고 싶었던 일이었어요.
아무래도 독일 난민 자원봉사 커뮤니티가 제일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어서 독일인 친구의 추천으로 무작정 난민캠프에 찾아갔어요. 처음에는 2~3일 정도 돕다가 난민캠프를 떠나려 했지만 결국 2주 정도 일하고 미리 예매해 놓은 비행기표 때문에 아쉽게도 일을 그만해야 됐어요. 난민캠프는 정말이지 치열했어요. 아마 신문으로만 접하신 분들은 절대 공감하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난민캠프의 현실을 겪고 나서는 열악한 환경과 마음 아픈 사연들을 목격하고 제가 도와줄 힘이 부족하단걸 느끼고 밤새 운적도 있었습니다. 몸이 피곤하고 지쳐도 하루에 5000명이 넘는 난민들이 난민캠프에 도착해 추위에 떨며 입국심사를 기다릴 때는 일손이 부족해서 하루에 3시간도 못 자고 해가 뜰 때까지 일하기도 합니다.
가을 비가 밤새 쏟아지던 추운 날, 거의 여덟 시간 째 빗속에서 입국심사를 기다리던 부인이 저체온증으로 아이를 유산한 사건이 있었는데 정말 원통했고 이들에게 등을 돌린 무관심한 세상이 밉기도 하고 스스로도 정말 충격을 많이 받아 숨어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추위에 떠는 난민들에게 입을 옷을 제공해주고, 따뜻하게 요리한 음식을 나눠주고, 난민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입국절차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무척 힘들었지만 입국 심사를 끝내고 웃으며 난민캠프를 나오는 난민들을 보며 뿌듯함도 느꼈습니다.
유럽이 점점 추워질 때 쯤. 비행기를 타고 태국으로 넘어갔어요. 뭔가 따분할 때면 발걸음은 항상 대학교로 향하게 돼요. 대학 도서관에 가서 그동안 밀려왔던 시사 공부를 하며 글도 쓰고, 농구장에 가서 농구를 하는 현지 대학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교수님께 부탁드려 현지인들 옆에 앉아 열심히 노트 필기를 하며 종종 수업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태국에서는 여행보다는 교환을 온 학생처럼 다양한 태국 대학생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냈습니다. 매파루앙이라는 지역의 여자 기숙사에서 태국인 친구와 같이 생활하며 스쿠터를 타고 학교에 가서 수업도 듣고 학식도 먹고, 방과 후에는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러 갔다가 야시장에 가서 군것질을 하며 태국 대학생들의 일상을 좀 더 가까이서 보고 배웠습니다.
학교 축제도 놀러가고 친구의 과제나 프로젝트를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바닷가에 가서 해먹에 누워 코코넛 쥬스를 마시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도 했어요. 여러 가족들의 집을 방문하며 친구네 아버지가 똠양꿍을 요리하는 모습을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았습니다. 가족들이 정말 다른 주거 환경에 사는 모습을 보며 태국 빈부격차의 심각성을 느끼기도 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먼 나라 이웃나라 일본으로 여행을 끝냈습니다. 친한 대학교 동기가 일본에 놀러와 같이 히치하이킹도 하고 현지인 친구들도 사귀며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추운 겨울에 눈이 오는 날, 도쿄에서부터 오사카까지 차가운 손을 호호 불며 히치하이킹을 했어요. 1시간째 차를 기다리느라 너무 추울 때는 고속도로 옆 휴게소 주차장에 원을 그리며 달렸어요.
교토 역에서 전단지를 깔고 노숙을 하기도 했지만 친구와 같이 있어 정말 든든했습니다. 일본인 친구들 집에 가서 일본 음식도 같이 요리해 먹고, 밤새 예능을 틀어 놓고 코타츠 안에 누워 수다 떨고, 교통비를 아끼려고 하루 종일 발이 아프도록 걸은 후에 들어간 따뜻하고도 포근했던 온천. 힘들었지만 젊을 때는 고생도 사서한다는 명언처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행복했던 순간들이었어요.
# 저에게 있어 여행은 또 다른 공부였어요. 물론 학교에서 하는 공부와는 다른 '길위에서의 학교'였어요.
저에게 있어 여행은 또 다른 공부였어요. 물론 학교에서 하는 공부와는 다른 ‘길 위에서의 학교’였어요. 두 발로, 두 눈으로, 가슴으로 느끼는 새로운 방식의 공부였습니다. 저의 좁은 방 밖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에 대해 알고 싶었어요.
세상에 수많은 내 또래들이,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가족들은 도대체 어떤 일상을 살아갈까. 어떤 가치관과 문화를 갖고 살아가는 것일까. 이것들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 저의 최대 관심사였습니다. 하루하루 새로운 인생 공부를 하며 제 세상 밖의 사람들과 관점을 공유하며 현실과 이상사이 그 어딘가를 계속 방랑했어요. 그리고 세계여행을 하며 그동안 도전해보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371일 동안 27개국을 돌아다니며 현지인의 일상을 관찰했어요. 처음에는 그저 카우치서핑으로 시작했지만 어쩌다보니 히치하이킹에 푹 빠져 일 년 동안 시외버스나 기차를 탄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히치하이킹으로 국경을 넘나들며 19,105km를 달려왔어요. 히치하이킹을 하며 200명도 넘는 운전자분들을 만났는데 기억에 남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아직까지 개인적으로 연락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렇게 200번도 넘게 한 히치하이킹은 제 여행을 무엇보다 값지고 특별하게 만들어주었어요. 히치하이킹을 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벨기에 가족 집에 초대받아서 아침에 벨기에 팬케익을 만들고 있지 않았을 거예요. 할리우드 영화감독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 이며, 슬로바키아 락밴드의 콘서트에서 일일 알바를 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히치하이킹을 포기하기에는 히치하이킹이 주는 특별함이 너무 많답니다. 차를 타기 전에 운전자의 눈을 보며 짧은 대화를 나누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사람을 보는 안목도 길러졌습니다.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배운 점
타인의 친절함을 배울 수 있어요,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아주 빠르게 습득할 수 있어요, 일반 관광객이 놓치기 쉬운 로컬들만의 장소를 방문할 수 있어요, 예측 불가능한 다이나믹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사람을 구별하는 법을 배우고 믿는 법을 배워요.
전 처음에 사람을 진짜 잘 안 믿었어요. 특히 인도를 다녀와서 더 그랬겠죠 (삐끼들..) 솔직히 히치하이킹을 한다고 하면 '에이~ 누가 태워주냐 요즘 세상에' 이랬는데 진짜 태워주더라고요. 세상에 이상한 사람도 참 많은데 이렇게나 따뜻한 사람들도 많구나. 세상 참 아름답다, 살만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즐거워요. 이런걸 배우고 경험하면 나도 이렇게 받은 거 다 베풀고 살아야겠구나 라는 사명감도 생기고 여러 차를 타보고 고속도로 하나하나 알아보고 준비하는 것도 재미있고 도로에 내 몸을 맡기는 것도 재미있고 차를 오랫동안 기다리면 지루하기도 한데 그러다가도 히치하이킹에 성공하면 뿌듯하고 보람차요. 사람을 더 믿게 되고 문화 습득할 기회도 훨씬 많아져서 히치하이킹이 여행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네요. 혼자 버스타면 10시간씩 이동할 때 지루하기도 한데 히치하이킹은 완전 다이나믹해서 지루할 틈이 없어요. 항상 운전자랑 얘기하거든요. 전 24시간이 바빴어요.
전 히치하이킹으로 기본 터키어 회화를 많이 배웠어요. 터키에 있을때 터키인들과 문제없이 기본적으로 소통 할 정도로요. 영어가 아예 안 통해서 종이쪼가리에 터키어, 페르시아어를 적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꺼내서 영어를 못하는 운전자랑 같이 연습하고 새로운 문장을 배우고 발음도 교정 받고 중간중간 운전사들이 배고플 때 로컬 레스토랑도 데려가는데 그럴 때는 진짜 로컬 맛 집도 알게 되고 관광객들이 버스 타고 가면 놓치는 중간중간지점을 많이 거치거나 잠시 멈췄다 간다는 점이 히치하이킹의 또 다른 좋은 점입니다.
언어가 늘기 쉽고,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도 만나게 되요, 의사, 영화감독, 기계공, 슈퍼주인, 등등등 그리고 이 나라 사람들은 어떤 차를 주로 타고 어떤 라디오나 어떤 음악을 듣는지 일상적인 면도 많이 배우고 그 나라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나 역사, 정치적에 관한 것도 배우게 되요. 물론 교통비도 안 드니 꿩먹고알먹고!
# 자소서에 적을 한 줄을 위한 스펙보다는 순수하게 내 삶의 가치를 높여주고 더욱 열정적인 삶을 살게 해주는 일을 하려고 해요.
저는 갭이어를 통해 세상은 넓고 멋진 사람은 많구나, 제가 부족한 점이 너무나도 많다는 걸 배웠어요. 여행을 하면서 항상 배워요. '여행은 길 위의 학교다' 라는 말이 있잖아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걸 보고 시도하며 항상 뭔가를 배우고 있어요. (젬베, 초상화 그리기, 창업하시는 분들 만나기, 역사공부, 등등)
세상은 살만하구나 아름답다라는 생각도 많이 해요. 여행 다니면서 선입견을 부수는 게 참 재미있기도 하죠. 제가 그 동안 이슬람에, 흑인들에게, 유럽인들에게 갖고 있었던 선입견과 편견들이 하나 둘씩 무너졌어요. 종교/배경/나이 상관없이 사람을 그 자체로 보고 싶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어떻게 살아야 내 인생이 좀 더 풍요로워지고 열정적인 삶을 살수 있는지 늘 고민하게 되요. 직업이란 널린 게 직업이고, 대기업만 바라보고, 취업을 목표로 대학을 다니던 가치관이 바뀌었어요. 열정적인 삶을 살고 싶어요.
그리고 전에는 사실 행복하다고 딱히 느껴 본적이 없었어요. 가끔 즐겁다 이런 생각은 했는데 하루하루 막 심장이 뛰고 더 오래 살고 싶고 제 인생이 사랑스럽고 행복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내 인생은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걸까 했는데 요즘은 하루하루가 다이나믹하고 행복해요.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고 긍정적이게 바뀐 거 같아요. 삶에 대해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어요. 가치 있는 삶 말이에요. 돈을 많이 못 벌어도 어떻게 살면 내가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고, 내 인생이 행복해지고 풍요로워 질 수 있는지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요즘 예전에는 생각으로만 그쳤던 일들을 하나하나 리스트로 적고 해보고 있어요. 버킷리스트를 항상 작성해요 매년 초마다 구체적으로 적습니다. 어디를, 어떻게 여행하고 싶은지요. 하고 싶은 것이 생각 날 때 수시로 메모하고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자주 보며 버킷리스트를 달성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요. 목표 달성 시 보상도 하고 구체적인 실천 기간을 적기도 합니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팁은 카테고리 별로 적어 보는 것 입니다. 저는 여행, 문화, 커리어, 취미 카테고리로 나눴습니다. 버킷리스트를 자주 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계속 고민하게 되고 어떻게 하면 후회 없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요. 막연히 언젠가 해야지 라고 했던 저보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한 후의 저는 더 많은 것을 실천하고 있고 삶의 즐거움을 더 많이 찾고 있어요. 정말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인생이 흘러가는 것 같아요.
전공도 열심히 공부해서 내가 공부하는 분야에 대한 지식을 자신 있게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고, 자소서에 적을 한 줄을 위한 스펙보다는 순수하게 내 삶의 가치를 높여주고 더욱 열정적인 삶을 살게 해주는 일을 하려고 해요. 다른 대학생들처럼 취업에 매달리지 않는 게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이지만 내 인생이니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려고요.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딱히 취업 못 하겠지 라는 걱정은 안 들어요. 열심히 하다 보면 길은 항상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언어에도 정말 많은 관심이 생겼어요.
사실 갭이어를 떠나기 전 진로에 대한 걱정도 많았어요. 과연 휴학을 하고 여행을 간다는 것이 옳은 일일까. 난 옳은 선택을 하는 걸까. 걱정이 많았지만 교수님들과 선배님들께 충분한 조언을 구하고 나서야 갭이어를 여행하며 보내겠다는 후회 없는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여행이 끝난 후에야 깨달았어요.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건지 틀린 건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가는 길에 확신이 생겼다는 것.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삶은 어느 사람들의 이상향과는 다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매일 꿈꾸며 나아가는 내 자신이 사랑스럽다는 것이요.
처음에는 걱정을 정말 많이 하신 부모님도 여행을 다니며 연락도 자주 드리고, 현지인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도 보내고, 열심히 세상을 경험하는 모습을 나중에는 좋게 봐주시더라구요.
# 매일 내일이 기대되는 요즘이랍니다.
요즘은 정말 하루하루가 여행하듯 즐거워요. 여행을 통해 배웠던 것들을 실천하고 복습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행하면서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던 국제정세, 역사, 사회문제에도 끊임없이 관심을 쏟고 있고 이곳저곳 방랑하며 돌아다녔던 여행과는 또 다른 정착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사실 아직까지도 진로가 확실하게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여러 경험을 하며 점점 방향이 잡혀가는 것 같아요. 하루하루를 후회하지 않도록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열심히 그리고 재미나게 살고 있습니다. 요즘은 책을 쓰며 여행하며 좀 더 심도있게 배우고 싶었던 공부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새로 생긴 취미인 윈드서핑과 SUP를 타며 한강에서 즐거운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어요. 매일 내일이 기대되는 요즘이랍니다. 그리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받은 친절들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습니다. 여행하다 만났던 외국 친구들이 한국에 놀러오면 서울을 구경시켜주고 맛집도 데려가곤 해요. 그리고 대학교 교환학생 교류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여행할 때 저를 챙겨주고 저에게 큰 의지가 되어줬던 현지인 친구들처럼 저도 외국인학생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줄 수 있는 조력자이자 친구가 되고 싶어요. 한국에 온 교환 학생 친구들이 즐거운 한국 생활을 즐기고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고 가길 바랍니다.
내년에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교환을 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스페인어를 열심히 배우는 중입니다. 사실 언젠간 중남미 여행을 하며 지역 커뮤니티와 NGO의 일을 돕고 틈틈이 봉사활동을 하고 싶거든요. 2018년도에는 평창올림픽에서 의전/통역 자원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제가 살아가는 현재를 더 사랑하고 보람차게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 Live the life you love, love the life you live
Live the life you love, love the life you live
‘그대가 살고 있는 삶을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하는 삶을 살아라’
제가 제일 좋아하는 문구이자, 느슨해질 때면 항상 되새기는 말입니다. 항상 내가 원하는 삶을 그리고 상상하며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열심히 그리고 나의 현재의 삶도 사랑하며 살아가다 보면 내가 동경하던 삶을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요?
갭이어를 계획하고 계시다면 용기를 내세요. 한발자국 더 앞으로 움직이세요. 자신이 사랑하는,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일을 하세요. 지금 이 순간 아니면 영원히 못 할지도 몰라요. 자신을 믿고 자기가 한 선택을 믿어요. 갭이어를 잘 활용해 자신이 하고 싶었지만 학교 다니면서는 몰두하기 어려웠던 것, 졸업하기 전에 꼭 이루고 싶었던 것들을 하길 바랍니다.
<100인의 갭이어족 갭퍼 소개>
'100인의 갭이어족의 갭퍼'는 TV 속, 혹은 책 속에 존재하는 멘토가 아닌 나보다 조금 먼저 그리고 나보다 조금 더 큰 용기를 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고 비슷한 고민을 했던 100인의 이야기가 여러분 인생에 찾아온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00인의 갭이어 추천 및 제보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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