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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의 갭이어 "오랜 시간 준비하고 노력하면 반드시 이룬다" 유지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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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유지황
현재 하고 있는 일 : 농업세계일주
활동 당시 신분 : 대학생
주요 활동 국가 : 이집트, 중국, 몽골, 일본



Q. 갭이어를 갖게 된 계기 혹은 준비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안녕하세요. 비상식량이라는 팀 이름으로 농업을 배우기 위해 세계의 공동체와 농장을 찾아 다니며 농업세계일주 중인 유지황입니다.
제가 세계 일주라는 꿈을 처음 가지게 된 시기는 17살 때, 한 책을 만나면서부터인데요. 공부에 관심이 없던 저는 고등학교 내내 수업시간에 수업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왜 그렇게 수업이 싫었을까?’ 싶을 정도로 수업시간에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공부는 안 했지만 딱 한 가지 잘한 것이 있다면 선생님 몰래 교과서 밑에 책을 감추고 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만화책으로 시작해 잡지, 소설, 고서까지 자연스럽게 점점 더 깊이 있는 책을 접하게 됐습니다. 나중엔 선생님들도 '쟤는 공부 안 해' 라고 느끼셨는지 포기하시고 그냥 책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책을 추천해주시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때 읽은 책 중에 ‘람세스’라는 책이 있습니다. 람세스는 이집트 문명과 이집트 왕가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역사를 재구성 한 이야기입니다. 이전엔 이집트를 떠올리면 ‘사막, 모래’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었습니다. 또한 사람이 살 수 없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세계 4대 문명이 생겼고, 사람이 살아간다는 사실이 제겐 큰 설렘으로 다가왔습니다. 책 속에서 황소와 대적해 길들이고 성인으로 인정받는 이집트왕자들의 성인식이야기, 람세스, 아낙수나문, 파라오, 피라미드, 스핑크스에 대해 읽으며 두 눈으로 이집트 문명을 꼭 보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이 다짐에 뻥튀기를 좀 하여 ‘이왕 갈 것 세계 4대 문명을 다 가봐야겠다.’ 라고 다짐했었죠.

그렇게 다짐하고 7년 뒤 이집트 여행을 하게 됩니다. 그 곳에서 세계 일주를 하고 있던 또래 친구와 남미 여행을 다녀왔다는 의사형님들, 동남아 여행을 다녀왔던 형님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길에 사는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그때 그 곳에서 어릴 땐 말로만 하고 다녔던 그래서 죽어있었던 ‘세계일주’라는 꿈에 숨을 불어넣게 됩니다. 그리고 딱 10년이 흐른 작년 12월 세계 일주를 떠났습니다. 되짚어보면 세계 일주를 하기 위한 용기를 가지는데 10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Korea Gapyear

Q. 갭이어 경험담을 들려주세요.
A.
- 이집트에서 타인에 대해 생각하게 되다
2010년, 대학교 2학년 때 이야기입니다. 제가 공대를 다니는데 전역하고 복학을 했더니 교수님들께서 숨도 못 쉴 만큼 많은 과제를 내주셨습니다. 첫 학기를 수업-과제만 하다가 다 보냈습니다. 이렇게 4개월을 보내고 기말고사에 제일 뒷자리에 앉아 시험을 치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시험 치는 동기생들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시험치고 있는 모든 친구들이 똑같은 시험지 답을 찍어내려고 여기 앉아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소름이 끼쳤습니다. 친구들이 마치 복사기로 보였습니다. 4년간 복사기로 대학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끔찍했습니다. 그때 ‘사람이 복사기는 될 수 없지!!’ 라는 생각이 들었고 1년간 일해서 모은 돈으로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배낭 매고 터키로 도망치듯 떠났습니다.

그땐 배낭여행에서 거대한 뭔가를 깨닫거나 만나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복사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설레 터질 것 같았습니다. 아직도 왜 하필 터키였는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물 만난 개구리처럼 열심히 돌아다녔습니다. 그랬더니 한 달 정도 걸릴 줄 알았던 터키 서부를 여행을 떠난 지 20일만에 다 돌아버렸습니다. 터키동부는 반란군이 주둔하던 시기라 여행위험지역이어서 ‘뭘 하지?’ 하며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여행 다니면서 만난 누나가 ‘나 이집트 갈 건데 너도 오려면 와.’ 라는 말을 남기고 다음 날 이집트로 떠났습니다. 그 이야기를 말을 듣고 잊고 있었던 이집트가 7년 만에 떠올랐습니다. 여자인 친구와 같이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위험하고 무서워서 못 가겠다는 걸 가자고 끊임없이 설득했습니다. 하루 종일 가자고 했더니 귀찮은 듯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티켓 끊어서 이집트로 넘어갔습니다.


ⓒKorea Gapyear


이집트 여행은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이집트만큼 사랑스러운 나라는 없었습니다. 저보다 연식이 오래되 보이는 승합차에 수십 명이 매달려 지나가는 이집트 모습과 바하리아 사막에서 비박하며 봤던 마치 우주와 같은 별의 모습은 사람 안에 숨겨져 있던 순수함을 그대로 드러나게 해주는 현미경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집트에서 삶의 동반자와 같은 꿈을 찾았습니다. 같이 다니던 일행과 카이로 현지시장에 갔을 때 일 인데요. 필요한 것들이 있어 사고 나오는데, 심장이 멎을 만큼 가슴 아픈 모습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시간이 다 됐을 때였습니다. 한국이라면 저녁이라 가족들이 찾을 시간인데. 6~9살 되어 보이는 애들 몇 명이 차 밑에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위험한데 왜 저길 들어가지?’ 라는 생각을 했고 차 밑을 봤습니다. 근데 애들이 차 밑에 줄줄이 누워있었습니다. ‘설마?’ 라는 생각에 다른 차 밑을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른 차 밑에 있는 애들은 벌써 자고 있었습니다.

그때 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많이 울었습니다. 우는 모습을 보이기 부끄러워서 울고 싶지 않은데 계속 눈물이 났었습니다. ‘왜 애들이 저기 들어가서 자야 되는 거지?’, ‘언제부터 저기서 지낸 걸까?’, ‘앞으로도 계속 차 밑에서 지내야 되나.’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곤 보호받지 못하고 길에서 있는 아이들을 보며 ‘불쌍하다.’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근데 그건 너무나 바보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차 밑에 들어가 있던 애들은 친구인지 형제인지 모르겠지만 같이 장난치고 웃고 있었습니다. 이것 역시 제 착각일수도 있지만 그 모습이 왠지 행복하고 따뜻해 보였습니다. 

동시에 그 애들을 보면서 제 자신이 불쌍하단 생각을 했습니다. 돌아갈 가족의 품이 있고,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가지고, 원하면 뭐든 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더 욕심을 부리고 끝없이 불만을 가지고 불안해하는 제 모습이 참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아이들을 만나기 전엔 단 한 번도 타인에 대해 신경 써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보다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근데 이집트 여행 이후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집트여행 이후 기회가 될 때마다 몽골, 중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필리핀 등을 다니면서 힘든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Korea Gapyear


- 아이들의 순수함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시립고아원에 대학교 친구들과 봉사활동을 갔었습니다. 고아원 아이들이 한국에서 저희가 온다고 공연을 준비해줬습니다. 그때 유행하던 원더걸스 안무, 몽골 전통 노래, 악기들을 연주해주더군요. 그리고 마지막에 한 아이가 글이 가득히 적혀있는 종이를 펼쳐 들더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시 낭독을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갔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 아이의 낭독을 듣고 있던 한국 친구들이 전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몽골어로 읽어 내려갔는데.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데. 저도 그렇고 옆에 있던 한국 친구들 절반 이상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중에 들었는데 자신을 버린 부모님께 다시 돌아오라고, 보고 싶다고, 함께 살고 싶다고 ‘부모님께 쓰는 편지’였습니다. 분명 자신을 버린 부모가 원망스러울 텐데 다시 돌아오길 바라며 사랑을 속삭이는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몽골아이들에게 순수함이 무엇인지 배우게 됐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그때 다짐했습니다.
 

- 마음속에 슬픔을 담은 아이들
중국 북경에서 인턴을 할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주말마다 북경 근처에 있는 고아원에 찾아갔었습니다. 한국분이 운영하시는 단체를 통해서 갔는데 이 봉사단체는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일반적인 봉사단체와 다르게 단장님이 고아원과 연락해 필요한 물품을 확인하고 그날 참여하는 학생, 직장인들이 조금씩 돈을 내고 함께 시장에 장을 보러 체계였어요. 그러다 보니 자기가 낸 돈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쓰이는지 직접 볼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투명해지는 신기한 구조였습니다.
고아원에는 부모들에게 보호받지 못하는 장애아동들이 있었습니다. 3~6세 애들이 있었는데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혼자 식사도 하기 힘든 애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몸이 약해서 먼지가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말을 듣고 열심히 청소했었습니다. 

그때 단장님이 오시더니 ‘애들을 보면 이상하지 않냐’ 고 물어보셨습니다. 한 참을 생각해봤지만 뭐가 이상한지 모르겠다고 말씀 드렸죠. “여기 와서 애들이 웃는 모습을 본 적 있어요?” 라고 물어보셨습니다. 또 한 참을 생각하는데, 한 번도 본적이 없었습니다. 애들이 전부 무표정이거나 계속 울기만 했습니다. “애들이 아직 말을 하거나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지만 부모가 자기를 버렸다는 걸 마음으로 느끼고 있어요.”, “여기 고아원은 부모가 쓰레기 더미 같은 곳에 몰래 버린 애들을 데려와서 돌봐주고 있어요. 그리고 애들이 안정을 찾으면 입양할 곳을 찾아 보내줘요. 중국정부에서 입양하면 혜택을 주는데, 입양혜택을 위해 입양되었다가 또 다시 버려지는 애들도 많아요.”, “애들은 큰 상처를 받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아요. 몸도 마음도 너무 아픈 아이들이에요.” 이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마음이 먹먹했어요. 그 이후에 찾아갈 때마다 제 눈빛이 애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조마조마해서 애들 눈도 못 마주쳤습니다.
 

ⓒKorea Gapyear


-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
중국 인턴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인턴을 하면서 중국에 대해 배운 점도 많았지만 매주 고아원에 찾아가서 보고 듣고 느낀 시간들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제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살기엔 너무 많은 일을 알게 된 기분이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어요. 제가 가진 능력을 기반으로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지켜주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오랫동안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잘할 수 건 딱 한가지였어요. 꿈을 꾸는 거였습니다. 지난날을 더듬어보면 항상 ‘이상’을 향해 달려고 이번에도 아이들을 위한 이상적인 꿈을 꾸기로 했습니다. 이 꿈에는 아이들의 순수함과 행복을 지키기 위한 식, 주 학, 이 세 가지 권리를 넣기로 했습니다.
‘건강을 위해 먹을 권리’, ‘보호받을 공간을 가질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가 아이들이 가장 필요한 것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3가지 권리를 애들에게 지원해주기 위해선 직장생활로는 금전적으로 시간적으로 힘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소년의 농장’ 이라는 이름을 가진 농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농장을 만들어서 작물을 키워서 애들에게 주거나 팔아서 이익을 남기면 먹고 배우고 보호받을 수 있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농장을 어떻게 만들어나가고 어떻게 도와줄지 구체적 계획 없이 막연했지만 오랜 시간 준비하고 노력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제 꿈을 듣고 주변 분들은 차라리 기부형태로 애들을 도와주는 게 어떠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게 참 와 닿지가 않았습니다. 또한 일시적인 도움이 아니라 지속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3년 전부터 여유 될 때마다 라오스에 구충제, 치약, 칫솔과 같은 꼭 필요한 물품들을 보내주고 가져다 줬는데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작년 6월 이후 물품을 못 보내줬습니다. 애들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어놓고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는 무책임한 어른이 돼버렸던 것이죠.


ⓒKorea Gapyear


농장을 만들어야겠다고 꿈을 가진 후에 비상식량이라는 팀으로 같이 활동하는 동생과 함께 농자재 유통회사에서 일했습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농자재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기본 농자금도 필요했어요. 배달 일하면서 농촌 어머님, 아버님들을 뵀습니다. 뵙는 분마다 꿈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다들 참 기특하고 대단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농사는 짓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집이 대대로 농사를 짓는 환경이 아니면 농사로 기초생활도 안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말리셨습니다. 농촌에 젊은 사람들이 떠나는 이유가 있다고 젊으니까 일찍 다른 일을 찾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심으로 걱정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흔들렸습니다. 흔들리는 제 마음을 보면서 꿈보다 농사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농사가 얼마나 힘든지 직접 지어 보기로 했습니다.

일해서 모은 돈으로 집 근처에 텃밭을 빌려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방울토마토, 미니 파프리카, 가지, 오이, 고추를 키웠어요. 처음 하는 농사라 힘들어도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하루하루 작물이 커가는 모습을 보고 둘 다 실실 웃음이 세어 나왔습니다. 자식을 키워보지 않았지만 표현 그대로 자식 키우듯이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매일 가서 말도 걸고 음악도 들려주고 친환경 영양제도 듬뿍듬뿍 줬습니다. 세 달이 지나고 수확할 때가 됐고 수학해서 가족들, 주변 친구들, 교수님 분들하고 나눴습니다. 실하게 키워서 내놓는데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나옵니다. 


ⓒKorea Gapyear


근데 한 번 수확하고 저희들의 셋방살이 농사는 끝이 났습니다. 밭주인이 사정 상 더 이상 땅을 빌려주실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한 철이지만 농사를 짓고 느낀 게 많았습니다. 즐거움이 많은 만큼 힘든 부분도 많았습니다. 상품성있는 농작물을 길러내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투자한 노동력과 자본을 이익으로 남기는 일이 가능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준비하고 뛰어들기로 했습니다. 그때 농업관련 서적을 많이 보고 있었는데 일본에 농업자원으로 100만 일자리, 100조원 가치를 만들어 내는 단체가 있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가봐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일본까지 갈비용은 없고 어떻게 갈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아시아나 드림윙즈’라는 대학생 꿈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 농업에 대한 일본사람들의 인식
‘아시아나 드림윙즈’는 아시아나에서 실행하는 프로그램인데다 다른 나라를 가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인지 경쟁률이 제법 높았습니다. 영상, 디자인, 목공, 연기, 사막마라톤, 적정기술. 지원하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가진 꿈이나 능력들도 보통이 아니었어요. 어떻게 하면 일본으로 꿈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통영의 섬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촌놈만이 할 수 있는 뭔가를 찾기로 했습니다. 통영에서 서울까지 약 500km 정도가 되는데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자전거 일주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이번 꿈 여행이 절실한지 보여줬습니다. 제주도 포함 17일을 밖에 자면서 농촌 마을을 다니면서 드림윙즈 발표장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런 저희 노력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닿았는지 일본 여행을 떠나게 됐습니다.


ⓒKorea Gapyear


일본을 갔는데 배울게 너무 많았습니다. 지리, 기후적으로 한국과 무척 닮아있기 때문에 농업 방식과 도구는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농업 방식이나 도구의 종류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한 번은 농자재 파는 곳을 갔는데 한국의 대형마트 크기의 농자재 마트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농업에 관련된 모든 것을 팔았어요. 이런 모습에서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였습니다. 일본은 한국 농업의 대표적인 기술력이라 할 수 있는 비닐하우스 시스템조차 더욱더 세분화시키고 자동화시키고 친환경적으로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도시에도 농업의 흔적이 여기저기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농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기억에 남아요. 농업의 중요성을 알고 농업을 촌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주말이면 많은 도시인구가 농촌으로 일하러 내려왔고 그 모습이 참 부러웠습니다.
 
일본을 다녀와서 바로 짐을 꾸렸습니다. 세계 공동체 마을, 농장, 시장들을 다니면서 농업에 대해 자연에 대해 좀 더 깊이 배우기로 했습니다. 한국에선 다들 농사가 힘들다고 하니까 전 세계에 사는 농부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해나가는지 보기로 했습니다. 1~2년간 여기저기 다니면서 다양한 형태의 농업을 만나고 흡수 하기 위해 세계 일주를 떠나 왔습니다.
 

ⓒKorea Gapyear


Q. 마지막으로 갭이어를 계획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는 무엇인가요?
A. 해주고 싶은 말이라기 보단 꿈 쫓아 이일 저일 하고 여행 다니면서 느낀 게 두 가지 있어요.
 
첫 번째, 길 위에 올라라.
호주, 베트남 여행 전 베트남, 호주에 대한 정보나 이야기를 들으면 ‘위험하다’, ‘얻을 게 없다’, ‘사기를 당했다.’, ‘맞았다.’와 같이 긍정적인 이야기보다 부정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심지어 베트남을 가기 전엔 부정적인 정보를 너무 많이 접하는 바람에 가기 전날 가기 싫어 끙끙 앓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가본 베트남은 달랐습니다. 여행 중에 현지인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싸움이 난 적도 있었지만 현지인들과 부대끼며 일어나는 예측할 수 없는 순간순간들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됐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여행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욕심이 많아 영상, 사진, 글, 미술, 목공, 농사, IT, 자동차, 마케팅과 같은 많은 분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9년간의 대학생활 동안 하나씩 접해보았고 가지 쳐내듯이 하나씩 잘라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농사와 목공이라는 두 분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하고 싶으신 일이 있거나 혹은 좋아하는 것이 있으시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때문에 망설여지신다면 끊임없이 밀려드는 생각이나 주변 사람들이 전해주는 이야기에서 벗어나 먼저 한 발 내 딛어 보셨으면 합니다.
 

두 번째, 특성을 찾아라.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꼭 따져보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함께 할 수 있는지, 나눌 수 있는 일인지, 가치 있는 일인지 인데요. 
어느 날 이 세 가지 중 2가지 이상이 포함되면 제가 굉장히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절 발견했습니다. 전엔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 위주로 제 삶을 계획하고 행동했었는데 이런 행동들이 오히려 “대체 난 뭘 하고 싶은 걸까?” 라는 의문만 커지게 만들더군요. 그래서 지난날들의 행동들을 더듬어보고 행동 속에 숨어있는 특성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위와 같은 3가지 특성을 찾게 되고 이 특성들이 제 행동의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혹시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좋아하는지. 혹은 좋아하는 게 너무 많다면 어린 시절이나 대학생활 동안 즐거움을 느꼈던 순간의 특성들을 한 번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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