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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th Gapper 주하정
3개월간의 갭이어
남미 배낭여행
#내 인생의 방향은 내 가슴이 시키는대로 결정하고 싶었다
▲마추픽추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제 인생을 바꿔줄 경험을 하게 됐어요. 그것은 바로 ‘배낭여행’. 해외로 가본 것도 처음이었고 배낭여행도 처음이었지만 여행의 매력은 충분히 일깨워 준 여행이었어요. 그것을 시작으로 대학교를 다니는 내내 학기 중에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서 방학에는 배낭여행을 가는 생활을 했어요. 덕분에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30개국 이상의 나라를 여행하며 느끼고, 배우고, 먹고,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졸업 직후 취직하여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짧은 휴가 이외에는 길게 시간을 내어 여행을 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서른 살이 되어 있는 나를 발견했어요. 어느새 나는 ‘그냥 어른’이 되어 있었고, 학생 때의 당돌하고 자신감 있던 모습은 희미해져 편한 직장에서 도전하지 않고 안일하게 지내며 맛있는 것을 먹는 것만을 유일한 인생의 낙으로 여기며 지내고 있었어요.
이렇게 남들 다 하는 대로, 차와 집을 사는 것을 목표로 돈을 벌고 친구들과 소소하게 수다를 떨며 산다면 평탄하고 큰 문제 없는 삶을 살 수 있겠지만 더 늦기 전에 도전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내 인생의 방향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아닌 내 가슴이 시키는 대로 결정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결정한 것이 3개월간의 남미 배낭여행이었어요.
#여행 가기 전에 준비했던 것들
▲쿠스코
여행 비용은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었고 ‘위험한’ 국가에 장기로 배낭여행을 가는 것이라 사전 준비를 많이 했어요. 주로 인터넷 카페와 여행책자에서 정보를 얻었고 그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 제 블로그에 글을 쓰며 정리했어요. 또한 남미지역은 영어가 잘 통하지 않기 때문에 스페인어를 공부했어요.
수년 전 공부했던 스페인어 책을 다시 꺼내어 일하는 틈틈이 읽으며 기억을 되새김질했어요.
다니던 직장은 사직하려 하였으나 상사와의 이야기 끝에 운 좋게도 3개월간의 무급 휴가를 받을 수 있었고요.
#장기적으로 보면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고 싶었다
▲갈라파고스
편안하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려고 생각하니 돌아와서의 재취직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컸고, 부모님의 만류도 큰 장애물이었어요. 사실 이런 연유 때문에 2년 전에도 남미 배낭여행을 준비하다가 포기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 이후 그 결정에 대한 후회가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가지 않아야 할 이유만 늘고 있다는 것을 직접 체감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5년 후의 내가 여행을 간 것을 후회할 것인지,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때 답은 명확했어요. 설사 돌아와서 한동안 고생을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고 싶었어요.
#3개월의 남미 종주 이야기
3개월간 남미를 종주하는 여정은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시작하여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를 거쳐 아르헨티나의 아름다운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끝났어요.
2600m의 고지대에 위치한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의 첫 날, 깨질 듯한 두통을 느끼며 고산병을 처음 알았으며 바다 색이 일곱 빛깔이라는 산안드레스 섬에서는 캐리비안 바다를 만날 수 있었어요.
▲산안드레스
예전에는 마피아들이 많아 그들이 지어 놓은 높은 빌딩으로 가득 찬 신도시 메데진은 자연과 만난 ‘청담동’ 같은 느낌이 들어그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고, 산 속에 야자수가 솟아 있는 코코라 계곡이 있는 살렌토에서는 콜롬비아의 커피의 시큼함을 맛보았어요. 살사 축제가 열렸던 깔리에서는 살사 수업도 받으며 남미 사람들의 춤에 대한 열정을 느꼈어요.
▲깔리 축제
적도와 위도가 모두 0도인 세상의 중심,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를 거쳐 과학 교과서에서만 보던 갈라파고스 섬에 가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며 만난 망치상어 떼의 웅장함은 잊을 수가 없고요.
30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도착한 페루 와라즈에서 해발고도 4600m의 69호수를 만난 순간 에메랄드 빛 호수와 설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에 눈물을 흘렸어요.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던 리마의 바다, 두말할 필요 없이 웅장하고 신비로운 마추픽추, 동유럽이 느껴졌던 쿠스코 역시 참 좋았어요.
또다시 야간 버스를 타고 볼리비아로 넘어가 처음 맞은 곳은 세상에서 제일 큰 호수인 티티카카 호수를 볼 수 있는 코파카바나였어요. 코파카바나에서 한번 더 배를 타고 들어가야 갈 수 있는 태양의 섬에서 콘센트도, 와이파이도 없는 밤을 보내고 간 곳은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 라파즈에서는 전통 축제인 Alasitas가 열려 미니어쳐 차, 집, 돈 등을 불에 태우고 있었어요.수크레는 미식의 도시라는 명성답게 맛집이 가득했고요, 우유니에서는 소금사막에서의 일출과 일몰을 한껏 느꼈어요.
▲우유니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에서는 은하수 가득한 밤하늘을 보며 와인을 마셨고, 산티아고에서는 대학가의 젊음을 맛보았으며 활화산이 있는 아름다운 휴양 도시 푸콘에서는 호수에서의 ‘해수욕’을 즐겼어요. 파타고니아 지역인 토레스델파이네에서는 트래킹을 하느라 10kg의 배낭을 메고 3박 4일동안 하루 8시간 이상을 걸어야만 했지만 자연의 웅장함에 또 한번 무릎 꿇었지요.
바릴로체에서 맛본 초콜렛은 달콤했으며, 엘칼라파테 페리토모레노 빙하 위에서 점심식사를 할 때엔 빙하수를 떠서 마셨어요. 엘찬텐에서는 날씨가 좋지 않아 텐트 안에서 오들오들 떨며 잠을 겨우 청했던 기억이 있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탱고 음악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어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혼자 여행을 갔지만 함께 해준 길동무들 덕분에 더 행복할 수 있었어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우리만의 특별한 산행
▲토레스델파이네
칠레 토레스델파이네에서 3박4일간의 트래킹을 했는데 마지막 날, 아름답기로 소문난 ‘또레스 삼봉’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4시에 일어나 랜턴에 의지한 채로 산행을 시작했어요. 그곳까지 가려면 2시간 30분이 걸리는데 마지막 1시간은 굉장히 가파른 길이에요.
전날 눈이 와 바닥은 질퍽했지만 눈이 그쳐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곧 그치길 바라며 계속 걸었지만 눈은 점점 많이 왔고 절반 정도 가자 폭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눈이 내렸어요. 돌산에 눈이 내려 미끄러워 발 디딤 하나 하나에 신경을 써 가며 위로 계속 올라갔어요.
춥고 힘들고 배도 고팠지만 포기하기는 싫어 계속 올라가 도착한 그 곳은 어두운 눈 세상. 눈이 너무 많이 내려 하늘은 흐리고 일출은 전혀 볼 수 없었으며 사진으로 봤던 아름다운 삼봉의 풍경은 전혀 볼 수 없었어요. 눈을 막아줄 수 있는 커다란 바위 밑에 앉아 조금 기다려 보았지만 눈은 점점 더 많이 오기만 했어요.
결국 단념하고 하산하는데 그새 쌓인 눈 때문에 내려가는 길이 더 험난했어요. 그런데 그 상황이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하고 폭설을 맞으면서 걷고 있는 제 모습이요. 힘들고 속상하긴 했지만 새하얀 눈세상을 보면서 꽤 즐거웠어요.
아마 그 산행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본 풍경도 아름다웠지만 내가 봤던 눈에 뒤덮인 설산의 풍경을 온전히 느낀 사람은 굉장히 드물 거에요. 그리고 그 고된 산행을 함께 했던 동행들과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우리의 특별한 추억이 될 수 있겠죠.
#잃었던 것을 찾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우유니
자신감과 용기를 회복할 수 있었어요. 여행을 혼자 다니려면 이 두 가지가 굉장히 중요한데, 이 것들 없이는 혼자를 즐길 수도, 여행을 끝까지 해낼 수도 없기 때문이에요. 현실에 안주해서 살며 희미해져 간 스스로를 찾게 된 기분도 들어요.
그리고 좀더 넓은 시야에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요. 직업 특성상 다른 직업군과 접촉할 일이 적어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게 되는데, 저 먼 땅 남미에서 만난 수많은 한국인, 외국인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며 지금까지의 좁은 생각을 넓힐 수 있었어요. 덕분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설정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현재 복직하여 같은 일을 하지만, 이번에 느끼고 생각한 것을 토대로 천천히 다른 일을 준비하려 해요.
#남미여행을 위한 TIP
▲산안드레스에서
남미여행을 간다면 스페인어는 꼭 공부하고 가세요. 여행의 질과 깊이가 달라집니다.
단 한달 만이라도 공부하고 가세요. 여행의 질이 달라지거든요.
#갭이어를 계획하고 있는 대한민국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
▲와라즈 69호수
망설임이 있다면 5년후 내가 어떤 선택을 더 후회할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인생은 선택이며 그 선택에 따른 기회비용은 항상 발생하게 마련이에요. 무엇이 본인의 인생을 더 채워줄 수 있는 선택인지는 본인이 결정하면 됩니다. 갭이어를 갖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겨진다면 그렇게 선택하면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갭이어를 갖기로 결심했다면 조금 더 열심히 준비하고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시간낭비는 하지 마세요.
물론 쉬는 것에 최선을 다해도 되고, 먹는 것에 최선을 다해도 됩니다. 다만 평소보다 본인의 마음에 더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과 더 소통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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