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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th 갭이어족 Gapper 김민우
갭이어 기간 : 2015년 5월 ~ 2016년 5월 (12개월)
53개국 145개의 도시 세계일주 갭이어
현재 대한민국은,
한 해 중고등학생 학업 중단 6만 명, 꿈이 없어 그냥 노는 20대 34만 6천명, 취업 후 1년 내 이직율 40%대 돌입, 대학생의 75%는 대학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직장인의 80% 이상이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라고 말하지만 현실적인 방법과 도움이 없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한민국에도 '갭이어'를 들여오고자 합니다.
'갭이어(Gapyear)'란 학업과 일을 병행하거나 잠시 멈추고 봉사, 여행, 인턴, 교육, 창업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시간으로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권장 되고 있는 문화입니다.
# 어렸을 적부터 꿈꿔 온 나의 꿈을 이루기로 결심하다
신문배달, 피자배달, 패밀리레스토랑 서빙, 정수기팔이 등 저는 어릴적부터 닥치는 대로 일만 하며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면서도 제 가슴속 한구석에는 늘 ‘세계일주’에 대한 막연한 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 등 여러가지 할 수 없는 이유들을 저 스스로 늘어놓으며 그 꿈을 가슴 속 한켠에만 묻어두고 있었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고 20대 후반에 접어들어서야 저는 드디어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나중에 나이를 먹어 많은 돈을 많이 벌게 된다한들 여행을 할 때 지금의 젊음으로 쓸 수 있는 100만원이 노년에 쓸 10억보다도 훨씬 더 가치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20대 후반에 제가 갑자기 세계일주를 가겠다고 하니 가족들과 주위사람들은 스펙을 쌓고, 한참 돈을 모으고, 미래를 위해서 일개미처럼 살아도 모자란 판국에 뭐하는거냐며, 그리고 태어난 곳에서 쭈욱 살아와서 해외경험이 없는 저에게 세계가 얼마나 위험한데 무모하게 뭘 할려고하냐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저를 말렸지만 저는 제 소신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어렸을 적 부터 꿈꿔왔던 저의 꿈을 이루고 싶어서, 인생을 살면서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결단을 내리고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생각이 많아질수록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저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지만 일단 비행기 표 먼저 끊었습니다.
저는 1년간 지구의 6대륙을 여행하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행에는 당연히 비용이 필요하더라구요. 저는 회사에서 일을 하며 지게차도 운전하고 갖가지 일들을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습니다. 어느 정도 돈을 모았다고 생각해서 여행에 쓸 수 있는 돈을 계산해보니 아껴써도 6개월을 넘기기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돈 때문에 세계일주를 포기하고 싶진 않아서 무료로 숙박을 제공받을 수 있는 카우치 서핑이나 히치하이킹 등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정규직으로 일하던 회사에서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쉬운일은 아니었지만 제 선택이었기에 그렇게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큰두려움이나 불안함은 없었습니다. 불안함보다도 아... 이제 떠나게 될 나의 세계일주 생각에 너무나도 두근대서 심장이 뛰어 잠 못 이룬적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막상 세계일주를 떠나려고 하니 낯선땅, 이를테면 인도나 아프리카, 치안이 안좋은 남미 등을 여행할 때 불미스러운 일이 있지않을까 하는 걱정도 마음 한켠에는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 1년 간의 세계일주, 청춘이기에 계속 할 수 있었던 무모한 도전들
그리고 시작된 세계 일주. 1년 간의 세계일주를 하면서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떠나지 않았다면 결코 경험해보지 못했을 수많은 경험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동네 뒷산을 오르는 것조차도 힘들어하던 제가 7박8일에 걸쳐 히말라야의 ABC에 올랐으며, 서울-부산가는 5시간의 버스시간이 너무 길어서 사람이 못할짓이다라고 말하던 제가 남미에서 100시간이 넘게 버스를 탔습니다.
여행 전에는 히치하이킹이 뭔지도 몰랐고 위험한 일은 구지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던 제가 유럽의 북한으로 불리우는 알바니아에서 한밤중에 차를 세워 몬테네그로로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제가 가장 걱정을 많이 했던 아프리카와 인도, 남미에서도 저의 무모한 도전은 계속 되었습니다.
실제로 여행 중 소매치기는 수시로 만났으며, 총을 든 강도를 만나본 적도 있고, 마약에 취해 괜히 저에게 시비를 걸어 저를 끌고갈려는 사람도 만나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물론 무섭고 두려웠지요. 지금도 가끔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다 여행의 한조각 추억으로 남게 되더라구요. 여행 중 태블릿과 핸드폰 2대, 지갑, 옷가지 등을 도둑맞았지만 여행이 끝난 후 저는 이런 것들과는 바꿀 수 없는 추진력과 담대함, 내가 어딜가서도 못할 것은 없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시 누군가 제게 잃어버린 모든 것을 돌려줄테니 너의 경험을 나에게 달라라고 말한다면 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내가 잃어버린 것의 10배, 아니 100배를 준다고 해도 절대바꾸지 않겠다'라고. 떠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고 만나지 못했을 수 많은 경험과 사람들이 제 마음속과 머릿속에 너무나도 큰 추억으로 남아있으며, 이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오직 저만의 경험이니까요.
걱정과 불안은 잠시입니다. 이렇게 될까봐 혹은 저렇게 될까봐 미리 걱정하고 겁을 먹어서 도전하지 않고 나아가지 않는다면 늘 그 자리에 머물거나 오히려 정신적으로 약해지고 퇴보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여행을 떠나기 전보다 여행을 하고 나서 건강이 좀 더 안좋아졌습니다.
적은 돈으로 다닌 여행이었기에 노숙도 많이하고 먹는 것도 제대로 먹지 못했으니깐요. 베드버그에 물려 몸에 흉이졌고 면역력도 떨어졌습니다. 필리핀에서는 현지 친구들과 함께 친구들이 소개해준 바닷가에 같이 놀러갔던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서 해파리에 쏘여 다음날 얼굴이 비정상적으로 부어서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따가운 통증까지 수반되고, 피부트러블까지 심해진 상태로 약 2주간 낫질 않아서 이 당시 대인기피증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이 때 같이있던 친구가 '너는 이제 결혼하긴 글렀다'고 농담반 걱정반으로 말할정도였으니깐요.
하지만 이 기억조차도 지금의 제겐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길이 있듯이 이 이후에 피부가 다시 자리를 잡더군요. 떨어진 면역력도 한국에서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것이고 마음 먹고 다시 열심히 운동하면 훨씬 더 좋아질 수 있기 때문이죠. 다만 여행을 막 끝낸 직 후 몸이 안좋아졌음에도 제가 행복하고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이 경험이 정신적으로 저를 더 성장시켰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격상 철저하게 준비를 못해 여행 중 아무 정보도 없이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비행기표나 버스티켓만 끊은 채 여행지에 들어가기가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여행이었기에 더 다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땐 내일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뭘하겠구나, 그리고 회사식단을 보면 아 내일은 흰쌀밥에 장조림과 김치찌개가 메뉴구나라고 먹을 음식까지도 예상할 수 있었던 일상에서 내일은 누굴 만날지 또 어디로 가게 될지 그리고 어떤 에피소드를 겪을지 쉽게 예상 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삶을 매일 살 수 있었습니다. '대박이야 야, 나 어제 영화같은 일 겪었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매일매일이 영화와 같았죠.
외국인 앞에만 서면 영어 울렁증을 호소하던 저는 여행하면서 돈을 아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외국인 친구네서 잘 수 있는 카우치서핑을 애용해야만 했습니다.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하기도 했으며, 어설픈 실력이지만 현지 여행사나 현지 기관의 홍보 동영상을 만들어주고 소정의 금액을 받기도 했으며, 여행 중 갖고 있는 것들을 다른 여행객들과 물물교환을 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제 물건을 현지인들에게 팔면서 제 여행경비를 충당해 나갔습니다. 아마 이렇게 낯선땅에서 수 없이 많은 도전들을 하며 악착같이 살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제가 청춘이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 네팔 지진, 내 인생을 바꿔 놓은 잊지못할 사건
그렇게 세계일주를 하며 갭이어를 보내던 중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을 잊지 못할 장면을 맞닿드리게 됩니다. 네팔의 지진으로 인해 제자들을 잃은 선생님이 네팔로 가는 비행기안에서 울먹거리며 지진으로 인해 제자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나마 남아있는 아이들도 학교가 무너져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며 네팔을 위해 힘써달라는 말.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프면서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 후로 네팔은 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죠.
세계 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말해달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하지않고 네팔의 한가족을 도왔던 경험을 말할 것입니다. 네팔 카트만두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을 당시 새벽부터 해가지는 밤까지 매일을 벽돌을 나르고 지진의 폐허를 치우던 한가족을 보게되었습니다. 특히 5 살배기 어린 꼬마아이가 하루종일 매일 같이 벽돌을 나르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습니다.
그 즉시 저는 앞뒤가리지 않고 인터넷에 이 가족을 돕기위한 글을 올렸고,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후원을 해주셔서 람푸맛씨 가족의 아들과 딸인 로젠과 레쓰마가 2년간 학교를 다닐 수 있게 지원을 해주었으며, 람푸맛씨의 대가족이 한동안 걱정없이 끼니를 떼울 수 있게 쌀과 기름, 깨끗한 물을 제공해줄 수 있었습니다.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묵묵히 일하던 람푸맛씨, 맨발로 폐허를 밟고다니던 그가 안쓰러워 신발을 사드렸습니다. 그가 갑자기 멍하니 저를 쳐다보더군요. 그리고 그가 제게 한말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벽돌을 나르던 소년 로젠이 생애 처음 교복을 입고 환하게 미소짓던 웃음을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이 아이가 제게 보여줬던 그 미소를 본 그 순간이 갭이어를 보내는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누나 레쓰마는 학교에 다니게 된 뒤 수개월뒤에 연락이 닿았는데 반에서 2등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의 작은행동이 분명 뭔가를 일으켰고 보람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네팔의 참혹한 실상을 알리고 네팔에 도움이 되기 위한 동영상을 찍기 위해 전세계의 1,5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설득하고 그들의 모습을 동영상에 담았습니다. 공중을 나는 비행기안에서 승무원과 승객들을 설득해 촬영을 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또 누군가는 대단하다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 평범한 아니 어쩌면 평범한 사람보다도 평범했던 사람인 제가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갭이어를 선택하지 않았고 그저 한국 인천의 조그만한 동네에서 계속해서 살았다면 아마 제 인생에서 이런 기억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저를 여행을 떠나기 바로 직전 선택의 기로에 다시 데려놓는다면 저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다시 비행기표를 선택할 것입니다.
# 세계일주는 끝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갭이어
세계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전 아직도 제 갭이어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네팔을 계속해서 돕고자 합니다. 물론 이것은 누군가 제게 시킨것도 아니고, 해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닙니다. 제가 원해서, 제가 그들을 좋아하고, 아이들을 돕고 싶어서 선택한 일입니다.
작년 8월 작은 기부금을 모으는 일로 두명의 아이와 하나의 가족을 도왔다면 이번에는 더 많은 아이들과 사람들을 위해서 움직여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금년 초 시작한 네팔 프로젝트 기부금 목표액을 다 채울 수 있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잘난것없는 김민우라는 사람을 믿고 용돈을 받는 학생부터 아내분 몰래 모아둔 비상금을 기부금으로 주시기도 하고, 너무나도 갖고 싶었던 옷을 살기 위해 조금씩 모았던 돈을 기부해주신 여자 분까지 한 분 한 분 너무나 많은 분들이 감사하게도 도와주셨습니다.
그들이 전해준 따뜻한 마음을 고스란히 옮겨 따뜻한 손길을 원하는 네팔 사람들에게 전해주고싶습니다. 제 인생에서 이제 막 시작단계를 지나고 있는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이 시기, 이 갭이어의 기간을 더욱 아름다운 기억으로 꾹꾹 담아내고자 합니다.
# 대한민국 우물 안 개구리, 우물 밖으로 나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전 보통 사람보다도 더 평범한 인생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인천의 조그만한 동네에서 태어나 여태껏 평생을 이곳에서만 우물안의 개구리 아니, 그 우물안의 또 다른 우물안에 살던 개구리와 같은 삶을 보내고 있었죠. 하지만 어릴 적 꿈이었던 세계일주의 꿈을 어릴 적 꿈으로만 남겨놓지 않았고 결단을 내리고 우물밖으로 나갔습니다. 좁은 우물 안이 세상의 전부 인 줄 알고 매일 똑같은 생활을 하다가 우물 밖으로 나와 세계를 누비고 온몸으로 뒹구니 자연스럽게 수많은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되었죠.
항상 수동적으로 살던 삶, '고등학교는 이곳으로 가야돼', '네가 하고싶은 일이 대학을 안가도 되는일이라도 대학은 가는게 좋아. 안가면 무시당해', '옷은 저렇게 입으면 간지가 안나', '헤어스타일이 이게뭐니'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주위 사람들의 말에 이끌려 수동적으로 살던 삶에서 제 인생의 주체가 제가 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기준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기준에 맞추어 살다보니 예전에는 '실패하면 어쩌지, 안되면 어떡하지, 누군가 나를 안좋게 보면 어떡하지' 등의 고민으로 가득했다면 요즘에는 '실패? 그저 과정일 뿐이야. 날 안좋게 본다고? 날 좋게 보는 사람도 분명히 있어. 여행 중 발품을 조금 더 팔면 더 좋은 길, 더 멋진 여행지를 발견할 수 있듯 이 도전 역시 실패하는건 단지 한가지의 길을 발견한 행위이고, 이 도전과 실패로 인해 나는 더 좋은 길을 발견해서 내 자신이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될거야' 라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사고가 더욱 많이 생겼습니다.
또한, 어떡하지 할까 말까를 100번은 고민하고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면 이제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단지 3~4번의 고민만으로 결정을 내릴 만큼 결단력이 더 좋아졌습니다. 다른 사람 한명 한명 눈치보며 살정도로 우리 인생이 여유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더군다나 소중한 청춘의 시간은 점점 매일 하루씩 줄어들고 있죠.
그러나 아무 계획없이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무작정 시작하는 건 권하지 않습니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선 발디딤을 더 힘차게 해야 하죠. 갭이어 기간을 염두에 두고 있는 청춘이 있다면 자신이 무엇을 할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미리 생각 혹은 글로 적어보길 바라요.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한 건 아니에요. 다만 수동적으로 누군가 시키는 삶이 아니라 본인이 주체가 돼서 사는 기간인 만큼 본인을 긴장시킬 수 있는 스스로의 목표와 계획이 필요합니다.
이런말 들어보셨을거예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목표를 글로 적었을때가 적지 않았을 때보다 이룰 확률이 10배 이상 높아진다.’ 글로 적고 생각을 계속 해보세요. 갭이어 기간은 다시 말하지만 단순히 막 사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복잡하게 살 필요도 전혀 없는 시간입니다. 다만 본인이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 시간 이후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을 꿈꾸는지 계속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생각으로 그 기록으로 인해 더 성장한 더 의젓한 본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으리라 저는 확신하니까요.
'아프니깐 청춘이다' 라는 말을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픈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도전하니깐 청춘이다’입니다. 유년시절을 보내면 모두가 청춘이 됩니다. 인생의 가장 활력이 넘치는 때죠. 이렇게 가장 활력이 넘치는 청춘의 시기에 한 번쯤은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능동적인 삶을 살아봐야하지 않을까요?
도전에는 2가지 종류의 도전이 있다고 합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스쳐간 도전과 그 누구도 시도하지않은 도전이. 그 어떤 종류의 도전도 좋습니다. 실패해도 좋습니다. 아니 실패라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정입니다. 에디슨이 전구를 일컬을 때 1만번의 실패가 아니라 1만번의 불이 안들어오게 하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말한 것처럼 여러분의 도전은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우리 청춘은 지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더 적극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도전을 하지않고 제자리에 머무른다면 가슴뛰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가슴뛰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그대에겐 더 이상의 가슴뛰는 삶은 없습니다. 도전하지 않고 새로운걸 시도하지 않으면서 단순히 머릿속으로만 변하고 싶어, 가슴뛰는 삶을 살고 싶어, 라고 말하는건 다이빙대회에서 뛰어내리지도 않았으면서 금메달을 받길 원하는 것과 같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진짜 내가 원하는 나의 심장박동소리를 듣고 싶다면 우선 거창한 도전이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걸 권하고 싶습니다.
티비나 책을 통해 남이 하는 도전을 보며 부러워만 하지 말고, 숨 한 번 크게 들이 마쉬고 다이빙대에 올라가보세요. 그리고 걱정하지 말고 뛰어 내리세요. 당신이 선택한 새로운 도전과 새로운 시도의 종류에 따라 그대의 다이빙대의 높이가 10미터가 될 수도 있고, 5미터가 될 수도 있고, 3미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높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이 ‘뛰어 내린 것’만이 중요합니다.
아래는 물입니다. 겁이 나고 주저할 수 있지만 우선 뛰어보세요. 물 주위에는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친구들과 동료들 그리고 여러분이 위험에 처하면 언제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인생의 한순간쯤은 정말 본인이 원하는 하고싶었던 삶을 살아보시길 바랍니다.
도전하세요. 다이빙대에 오르세요. 뛰어내릴 때 포즈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대가 가령 어설픈 포즈로 뛰어 내렸다고 할지라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프로 다이빙선수가 멋진 포즈로 단숨에 뛰어 내린 것보다 머뭇거리고 떨려했지만 용기내서 세상밖으로 뛰어내린 그대의 다이빙에 더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우선 뛰어내리세요. 과감해지세요. 우물밖으로 나오세요. 그렇게되면 새로운 세상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결정을 내리고 결단을 내리세요. 그리고 행동하세요. 생각한 것을 글로 적고 글로 적은 걸 몸으로 이행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수 개월이 지나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세요. 분명 변화한 본인의 모습을 보면서 미소짓게 되실겁니다. 청춘 김민우가 청춘인 그대의 도전을 마음속 깊이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100인의 갭이어족 갭퍼>
'100인의 갭이어족 갭퍼'는 TV 속, 혹은 책 속에 존재하는 멘토가 아닌 나보다 조금 먼저 그리고 나보다 조금 더 큰 용기를 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고 비슷한 고민을 했던 100인의 이야기가 여러분 인생에 찾아온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00인의 갭이어족 갭퍼 추천 및 제보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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